정부, 사법부에 산재사고 처벌 강화 요청

2020-05-29 11:10:35 게재

'솜방망이 처벌' 논란 수용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노력에도 '후진국형 사고'가 끊이지 않자 정부가 사법부에 안전보건 조치를 위반한 사업주에 대한 실효적인 강력한 처벌을 요청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최근 사업주의 안전조치 의무를 규정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양형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대법원에 전달했다.

처참한 화재 현장│4월 29일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의 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개정 산안법은 안전보건 조치를 하지 않아 노동자를 숨지게 한 사업주에게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실제 법관이 형량을 정할 때 판단 기준으로 삼는 양형기준(41개)에서 산안법 위반 사건은 '과실치사상 범죄군'에 속해 특별한 가중·감경 사유가 없으면 일반 형사범죄인 '업무상 과실·중과실치사'(기본 8월~2년)보다 낮은 형량(6월~1년6월)을 정하도록 권고한다. 더욱이 사망 사건 이외의 산안법 위반 범죄는 별도의 양형기준 자체가 없다.

그동안 노동계는 재해로 인한 사망사고의 주요요인으로 '솜방망이 처벌'을 꼽았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이런 노동자들의 요구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아주대 산학협력단이 지난해 안전보건공단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산안법 위반 또는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죄(산재 사망·상해 혐의)로 공소가 제기돼 법원 판결을 받은 1714건 중 징역 또는 금고형을 받은 경우는 피고인 2932명 가운데 2.93%(86명)에 불과했다. 90.72%는 벌금형 및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다.

특히 1679명(57.26%)에 선고된 벌금형의 평균금액은 약 421만원(개인 기준)이었다. 예를 들어 6명이 숨진 2013년 여수 대림공장 폭발사고의 경우 대림산업이 받은 처벌은 벌금 500만원이다. 당시 대림산업 1년 매출액은 8조원이 넘었다. 40명이 사망한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고의 경우 벌금 2000만원이 선고됐다. 6명이 사망한 2017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크레인 사고 때는 크레인 신호수만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됐다.

특히 구의역 스크린도어에 끼여 사망한 김군 사건의 경우 법원은 2심에서 원청(서울메트로) 사장에게 벌금 1000만원을, 하청 사장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그리고 사회봉사 200시간을 명령했다. 또 하청업체 사장에 1000만원, 법인에 3000만원의 벌금을 선고한 것이 전부다.

해외의 경우 안전보건조치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에 대해 엄격하게 처벌한다. 영국에서는 산업재해 사망사고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Homicide Act 2007)이 2008년 4월 6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법은 기업이 행한 행위나 기업경영상 조직과 활동에 관한 위법 행위, 주의의무위반으로 발생한 행위가 사람을 사상케 하거나 사망에 이르게 하는 행위에 대하여 기업에게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이 법을 중대하게 위반할 경우 벌금 상한선이 없다. 의회 지침(Guidelines Council)에 의하면 벌금액을 기업의 1년 총 매출액의 2.5~10%내에서 부과한다. 미국의 경우 산업안전보건청(OHSA)이 불시점검을 벌여 위법사항이 드러나면 건당 2000만원 안팎의 제재금을 부과한다.

만약 이에 불복해 법원으로 가면 처벌이 더 가중된다. 법원은 산재에 대해 무거운 처벌을 내리는 게 관례다. 자칫하면 이중처벌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엔 원·하청이 따로 없다.

일본 건설업체의 경우 산재를 은폐하다 적발되면 무기한 지명정지 처분을 받는다. 지명정치 처분을 받으면 건설사의 생명줄과 같은 공공공사 입찰참가가 무기한 금지된다. 특히 해당 업체가 폐업 후 명의를 변경해 창업을 하거나 재취업하는 것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우리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도 관련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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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진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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