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불복 트럼프, 점점 더 고립

2020-11-09 11:05:08 게재

부시 전 대통령 등 공화당 내부서도 비판 … 가족들도 이견 드러내

아름다운 퇴장을 거부하고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점점 더 고립되고 있다. 가족들과 측근들 사이에서도 승복을 설득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공화당 내부에서도 무리한 버티기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여론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고, 불복하는 트럼프에 대한 조롱과 희화화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등돌린 공화당 인사들 = 일부 공화당 소속 인사들도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8일(현지시간) 미 언론에 따르면 밋 롬니 상원의원은 이날 CNN방송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에 출연해 광범위한 선거 부정행위와 유권자 사기가 벌어졌다는 트럼프 대통령 주장에 대해 "현 단계에선 그런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앙숙 관계인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패배를 인정하지 않은 것과 관련, "그(트럼프)가 밤에 조용히 가기를 기대하지 말라"며 "세계가 좀 더 우아한 출발을 지켜보는 것을 보고 싶지만 그건 그 사람의 본성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골프장 떠나면서 엄지척하는 트럼프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스털링에 있는 트럼프 내셔널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고 떠나면서 지지자들을 향해 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이곳 골프장에서 이틀째 골프를 즐겼다. 스털링 AP=연합뉴스


그는 또 대선과 함께 치른 의회 선거를 거론하면서 "많은 유권자가 공화당 후보에게 투표했지만, 대통령에게는 투표하지 않았다"면서 "한 사람에 대한 국민투표의 문제였다"고 말했다. 공화당은 잘 싸웠지만 대선 패배는 트럼프 대통령 개인에 대한 심판이었다는 의미다.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도 CNN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결국 옳은 일"을 하기 바란다며 패배를 인정할 것을 촉구했다.

호건 주지사는 "실수가 있다고 생각하면 법적 절차가 있지만, 선거를 뒤집을만한 건 없을 것"이라며 "좋든 싫든 이제 승자 뒤로 물러날 때"라고 말했다.

공화당 로이 블런트 상원의원은 ABC 방송의 '디스 위크'에 나와 부정 선거를 주장하는 트럼프 대통령 측이 부합하는 사실관계를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블런트 의원은 "대통령의 변호사들이 사실들을 제시해야할 때"라면서 "선거일 후 7∼10일 이내에 거의 모든 주가 검토를 거치는 동안 항상 약간의 변화가 있지만 큰 차이를 가져올 만큼 변화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이런 흐름에 동참했다. 공화당 소속인 부시 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대선은 공정했고 결과는 분명하다"고 밝히며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승리를 축하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정치적 차이는 있지만 나는 바이든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며 "(바이든은) 우리나라를 이끌고 통합할 기회를 얻었다"고 말했다.

또 "미국 국민은 이번 선거가 근본적으로 공정했으며 진실성은 유지될 것이고 그 결과는 분명하다는 점에 신뢰를 가질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재검표를 요구하고 법적 소송을 추진할 권리가 있다"며 "해결되지 않은 어떤 문제도 적절히 판단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일부 공화당 인사들은 트럼프를 옹호하고 있다.

케빈 매카시 하원 원내대표는 폭스뉴스에 출연, "우리가 필요한 건 모든 합법적 투표가 집계되고 모든 재검표가 완료되며 모든 법적 문제가 법원에서 심리되도록 하는 것"이라며 "그리고 나서 미국은 누가 이겼는지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팻 투미 상원의원도 CBS 방송의 '페이스 더 네이션'에 나와 "선거가 제대로 치러졌다는 확신을 갖기 위해 정확한 집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가족도 갈라놓은 대선 후유증 =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불복과 버티기에 대해 가장 가까운 가족들도 의견이 갈리고 있는 분위기다. 8일 CNN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나 트럼프 여사도 승복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NN은 멜라니아 여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선 패배 수용을 얘기하는 이들 중 한 명이라며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승복할 때가 왔다고 조언하는 내부그룹의 의견이 커지고 있으며, 멜라니아 여사도 여기에 합류했다"고 전했다.

CNN은 멜라니아 여사가 선거에 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비공개적으로는 자신의 의견을 제시해 왔다고 소식통을 인용했다.

앞서 CNN은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이 선거 결과 승복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과 접촉했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쿠슈너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결과 수용을 촉구해 왔다는 점을 다른 이들에게 언급해 왔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가 승리했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 낸 성명에서 "이번 선거가 전혀 끝나지 않았다"고 불복하며 소송전 의지를 밝혔다.

대통령의 차남 에릭(38)은 8일 트위터에 "(개표 기계) 소프트웨어는 지옥에서 왔다. 당장 모든 투표용지에 대한 수검표가 필요하다!"며 부친이 제기한 선거부정 의혹을 두둔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줄곧 비난해 온 친조카 메리는 7일 트위터에 샴페인을 든 채 활짝 웃는 자신의 사진을 올린 후 "미국을 위한 건배, 모두 고맙다"고 썼다. 이어 "모두 잘 자라. 우리는 마침내 해냈다. 존경스럽다"고 적은 뒤 '#바이든해리스2020' 해시태그까지 달았다.

메리는 지난 7월 저서를 통해 삼촌(트럼프)이 대리시험으로 명문 펜실베이니아대에 입학했다는 사실을 폭로했으며, 대선 과정에서도 줄곧 조 바이든 당선인을 지지했다.

◆트럼프는 슬픈 마초맨? = 트럼프의 버티기에 여론은 싸늘하다. 일부에서는 조롱도 서슴지 않고 있다. 미국 NBC 방송의 간판 코미디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가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조롱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SNL은 7일(현지시간) 방영분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과 트럼프 대통령의 엇갈린 표정을 풍자했다.

바이든 당선인 역할을 맡은 인기 코미디언 짐 캐리는 "정말 고맙다. 우리가 해냈다"며 "좋은 일이 생긴 지 너무 오래됐기 때문에 솔직히 (대선 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캐리는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 역할을 연기한 할리우드 스타 알렉 볼드윈을 향해 "루저"(패배자)라고 놀렸다.

이에 볼드윈은 "오늘 밤 나의 승리 연설을 보러 와줘서 고맙다"며 "선거는 조작됐다. 내가 미국 대통령으로 재선됐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내가 정말 누구인지 여러분에게 상기시켜 드리겠다"며 무대 한쪽에 마련된 피아노 앞에 앉아 경쾌한 리듬의 팝송 '마초맨'(Macho Man)을 느리고 슬픈 노랫가락으로 바꿔 불렀다. 그러면서 "이것은 미국에 대한 작별 인사가 아니다. 법정에서 보자"며 대선 무효 소송을 제기한 트럼프 대통령을 풍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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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철 기자 · 한면택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