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사태 이후 회계개혁 점검 | ④ 표준감사시간제

"감사시간 기계적으로 얽매이기 보다, 회사·감사인 합의 우선"

2021-05-14 12:55:30 게재

감사품질 확보하는 데 중요 … 코로나로 기업 온라인 부문 급성장, 감사시간 산정에도 영향

인터뷰 | 오기원 삼일회계법인 감사부문 대표

대우조선 분식회계 사태 이후 대대적인 회계제도 개혁으로 도입된 표준감사시간제도는 기업들의 부실감사를 막기 위해 일정시간 이상 감사를 받도록 한 조치다. 코로나19 사태로 기업들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감사시간도 영향을 받고 있다. 감사 현장에서는 표준감사시간을 벤치마크 삼아 기업의 현실을 반영한 실질적인 감사시간이 정해지고 있다.

기업들은 표준감사시간 도입에 따른 감사비용 증가에 반발하고 있지만 감사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 시간 이상의 감사시간 투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대 경영학 석사 △삼일회계법인 품질관리실장(전) △금융감독원 회계심의위원회 위원(전) △한국공인회계사회 회계감사기준위원회 위원(현) △삼일회계법인 감사부문 대표(현). 사진 이의종 리포터

14일 오기원 삼일회계법인 감사부문 대표는 내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회계법인과 회계사들에 따라 감사 투입 시간과 감사조서의 완성도에 차이가 생길 수 있는 게 현실"이라며 "표준감사시간제도는 이를 규율하는 기준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도로공사를 할 때 필요한 자재와 규모에 따라 예산이 정해지는데 예산 자체가 감소하면 투입 원자재가 줄어들고 날림공사가 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다.

회계법인의 감사 방법론과 감사 프로세스, 투입되는 회계사들의 숙련도 등이 달라 실제 감사를 위해 투입되는 시간에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표준감사시간은 부실감사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오 대표는 "다만 같은 회사라도 중요한 변화 등 상황에 따라 감사에 소요되는 시간이 해마다 다를 수 있다. 즉 예기치 못한 사태로 인해 감사시간이 크게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 있다"며 "표준감사시간에 기계적으로 얽매이는 것보다는 감사에 필요한 시간을 정하는데 회사와 감사인의 합의가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현장감사 이후 토론·리뷰에 상당시간 투입 = 오 대표는 "표준감사시간은 감사 품질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기준선이며, 기업의 개별 상황을 고려한 가감요소에 따라 변동되는 것이 가능하도록 현장에서 적절히 적용돼야한다"며 "회계사들이 제일 전문가인 것은 맞지만 회사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협의해서 감사에 필요한 시간을 정하기 위한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더구나 코로나19로 기업 경영에 변동성이 커졌다. 전자상거래 분야 매출이 확대되면서 온라인 사업영역이 커진 기업들이 증가했다. 그동안 온라인 비중이 적어서 감사시간을 많이 투입하지 않았던 회사들의 상황이 급변한 것이다. 오 대표는 "온라인 매출이 10~20배 증가한 회사들이 생기면서 IT감사가 굉장히 중요히 졌다"며 "영업성과는 좋지만 결산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회사 입장에서는 큰 위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의 경우 자금을 유치해서 기업의 규모가 1년 사이에 10배 이상 커지는 경우도 생기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표준감사시간이 아니라 개별적인 접근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게 오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감사 전에 미리 예측 가능한 것이 있지만 예측치 못한 사안이 발생하면 감사시간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회사와의 조율이 필요하다"며 "상장회사의 경우 1년에 최소 2번, 많으면 4~6번 가량 의사소통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기업의 자산손상 문제도 골치 거리다. 기업들이 투자를 많이 했지만 매출이 늘지 않으면서 자산이 마치 쓸모없는 돌덩이처럼 변해버린 경우들도 생기고 있다.

오 대표는 "감사가 일사천리로 끝나면 문제가 없지만, 회계기준에 맞게 처리가 됐는지 현장 감사 이후에도 2중 3중으로 검토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사내 토론까지 벌어진다"며 "그런 시간들이 감사시간에 포함되지만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술 발전과 회계감사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감사시간 증가, 기업들의 오해 = 표준감사시간제 도입에 따른 기업들의 불만에 대해 오 대표는 "감사인 지정제와 내부회계관리 감사 도입 등 다른 회계개혁 제도와 맞물려 전체적으로 감사시간이 증가했는데 모두 표준감사시간제 때문으로 오해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시행되면서 6년간 회계법인을 자율적으로 선택한 기업들은 금융당국으로부터 3년간 감사인을 지정받아야 한다. 감사인과 회계법인의 유착을 끊기 위한 조치다.

오 대표는 "기존 고객들은 감사시간의 편차가 적지만 감사인 지정으로 새롭게 외부감사를 맡게 된 기업들은 처음 감사를 진행하는 것이라서 아무래도 감사시간이 많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기업의 내부회계관리에 대한 감사제도가 시행됐다. 기존 재무제표 감사에 추가해 진행되는 사안이지만 제도들이 동시에 시행되면서 기업들이 체감하는 감사시간은 크게 늘었고, 표준감사시간에 대한 반발로 이어졌다.

오 대표는 "감사인이 바뀐 기업들은 감사시간이 증가된 것을 섭섭해 하지만 어떤 분은 '이 정도 감사시간으로 우리 회사를 다 감사할 수 있느냐, 시간을 더 써달라'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기업의 감사위원분들과 협의를 하다보면 건전한 토의의 장이 되고 있다"며 "실질적인 감사계획과 목적 적합한 회계감사를 위해서 여러 당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계기가 된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의미에서 표준감사시간제가 긍정적으로 정착되고 있다"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디지털 기술 접목 '100시간 걸리던 일이 1시간으로' =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감사현장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표준감사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기술 발전과 더불어 유연성 있는 접근도 필요해졌다.

오 대표는 "감사 과정에 자동화가 접목되면서 사람이 100시간에 걸려 할 일을 기계가 1시간 만에 하는 해결하고 있다"며 "기술 발전으로 표준감사시간보다 적게 감사시간이 투입될 수도 있는데 규정을 일률적으로 적용해 의무를 위반했다고 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기업의 매출채권에 표시된 회사가 폐업한 회사인지 정상 기업인지 확인하기 위해 국세청에 일일이 조회하고 출력하는 과정이 수작업으로 진행됐다면 지금은 프로그래밍을 통해 자동화됐기 때문에 감사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오 대표는 "회계법인들이 투자를 많이 해서 감사시간을 줄이면 기업들의 감사비용이 줄어들기 때문에 혜택을 주는 것"이라며 "혁신을 통해 사회 전체적으로 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되지만 현행 규정을 적용하면 회계법인은 감사보수도 줄고 표준감사시간도 준수하지 않았다고 제재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감사보고서에 감사시간을 표기하는 공간이 있지만 기술투자로 인한 감사시간 단축 등을 쓸 자리는 없다"며 "회계 환경이 좀 더 성숙해지면 기술투자 시간들을 다 환산해 새로운 부가가치로 전환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회계법인들은 기술투자를 많이 할 수 있는 유인이 되고 회사는 감사비용을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생겨서 사회 전체에 기여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성 강한 특공대 운영, 감사효율 높여 = 삼일회계법인은 감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특공대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회계사 개개인이 전문성을 갖고 있지만 각자 많이 다뤄보지 않은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복잡한 구조를 가진 채권에 대한 가치를 평가할 때, 채권 분석을 자주해 본 회계사와 그렇지 않은 회계사 간에 투입되는 시간의 차이가 발생한다.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회계사들은 문제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회계사들의 경우 감사실패의 위험성이 높아질 수 있다.

오 대표는 "기업 감사를 진행하다가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가 나오면 해당 분야에 특화된 회계사들로 구성된 별도의 팀이 투입되기 때문에 감사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며 "다른 회계법인과는 차별화된 점"이라고 말했다. 별동대 성격의 전문팀은 경력 5~10년 가량 된 회계사들로 구성돼 있으며 기업의 △채권채무평가 △스톡옵션 △종업원 급여 △법인세 등의 분야에 특화된 업무를 맡고 하고 있다. 삼일회계법인은 전문분야를 계속 확대해나간다는 계획이다.

오 대표는 "회계사들이 감사에 투입하는 시간보다 새롭게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는지 공부를 많이 하고 훈련도 해서 고객에게 도움이 돼야 한다"며 "감사인들은 실력을 갖추고 독립성을 지키면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와 감사인이 적대적인 관계가 되면 사회적인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서로 너무 유착이 돼도 마찬가지"라며 "회계감사의 독립성을 지킨다고 사사건건 서로 대척점에 설 것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가면서 회계투명성을 높이는 게 자본시장과 투자자를 보호하고, 결국에는 경영자도 보호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표준감사시간제도 3년마다 타당성 검토


표준감사시간은 감사인이 회계감사기준을 충실히 준수하고 적정한 감사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투입해야 하는 감사시간을 말한다. 2018년 외부감사법 전면 개정에 따라 도입됐다. 외부감사법 16조의2 제1항은 한국공인회계사회(한공회)가 표준감사시간을 정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2019년 2월 한공회는 기업의 자산규모에 따라 적용대상을 11개 그룹으로 세분화하는 등 표준감사시간을 확정해 발표했다. 급격한 감사시간 상승을 막기 위해 표준감사시간이 직전년도 감사시간보다 30%(다만, 자산규모 2조원 이상은 50%) 이상 상승하는 경우 30%(자산규모 2조원 이상은 50%)를 초과하지 않도록 상승률 상한제를 도입했다. 외부감사법에 따라 한공회는 3년마다 감사환경 변화 등을 고려해 표준감사시간의 타당성 여부를 검토, 이를 반영하고 그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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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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