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새 고향은 한국

"뻐꾸기 둥지 위를 날아간 새는 없다"

2021-06-21 11:26:54 게재

탁란 성공률은 10% 불과 … 큰 몸통에 짧은 다리, 알품기 불가능한 신체구조 탓

"제비는 고향이 어디야?" 이렇게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강남에서 온 거 아냐?" 이렇게 대답한다. 틀렸다. 제비는 우리나라가 고향이다. 봄에 우리나라에 와서 여름까지 두번 번식한다. 두번째 번식 때는 첫번째 번식 때 태어난 새끼(언니 오빠)들이 동생들을 돌보기도 한다.
제비들은 우리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겨울에 추울 때 잠깐 강남에 가서 월동하고 온다. 고향은 '태어나서 자란 곳'이니 여름철새의 고향은 우리나라다.
뻐꾸기는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대표적인 종이다. '얌체짓'으로 보이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신체구조 때문에 어려운 탁란을 선택해서 진화해왔다. 뻐꾸기 탁란의 자세한 과정을 살펴본다.
여름철새들은 가을이 되면 멀리 동남아, 인도까지 가서 겨울을 나고 봄이면 다시 한국으로 이동한다. 대부분 몸집은 크지 않지만 먼 바다를 건너는 장거리 비행에 단련돼 체력이 강하다. 특히 번식철에는 새끼들을 보호하는 본능이 강하다. 독수리나 매, 올빼미 등 맹금류를 괴롭히는 까마귀 까치들에게도 절대 지지 않는다.
여름철새들의 고향, 우리나라도 기후변화가 심하다. 기후변화가 여름철새들의 번식에 미치는 영향도 두루 살펴본다.

거의 다 자라서 둥지 밖으로 나온 뻐꾸기 새끼에게 버찌로 보이는 나무열매를 먹이는 '동박새'. 나무열매를 먹이는 것은 새끼들도 쉽게 얻을 수 있는 먹이를 알려주기 위해서다. 동박새 탁란은 매우 희귀한 사례로 주목된다. 사진 조용철 환경부 정책홍보팀 경력관


"붉은머리오목눈이나 딱새를 관찰해보면 알을 품다가 40~50분에 한번씩 4~5분 정도 둥지를 비우는 특성이 있다."

권오준 생태작가의 말이다. 권 작가는"이런 새들의 동태를 모두 모니터링하고 있는 뻐꾸기가 그 잠깐 사이에 탁란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한다.

뻐꾸기 탁란 행동은 BCE(before the Common Era)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의 기록에서부터 나타난다. 그는 '둥지도 안 틀고 품지도 않는데 새끼를 길러낸다. 어린 새가 태어나면 다른 새끼들을 내던진다'고 정확하게 설명한다. 18CE(Common Era) 유럽 사람들은 뻐꾸기 탁란을 신비화시켜 '뻐꾸기가 오면 둥지 주인(새)은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기록하기도 했다.

붉은머리오목눈이 어미새가 알을 품고 있는데 그 아래에서 뻐꾸기 새끼가 다른 알을 밀어내는 장면. 자기가 낳아서 품던 알이 둥지 밖으로 떨어지는데도 어미새는 그냥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다. 사진 조용철 환경부 정책홍보팀 경력관


뻐꾸기 탁란을 가장 정확하게 규정한 사람은 찰스 다윈이다. 다윈은 1859년 '종의 기원'에서 '기생행동이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한 행동'이라고 명백하게 정의했다.

탁란의 형태는 매우 다양해서 새들은 물론 '감돌고기' '가는돌고기' 같은 어류에서도 나타나고 '뻐꾸기꿀벌' 같은 곤충들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새들의 탁란은 '종내 탁란'(같은 종류의 새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탁란)이 먼저 진화했는데, '흰뺨검둥오리' '원앙' '검은머리물떼새'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새들은 산란기 때 알을 품고 있는 남의 둥지에 엉덩이를 들이밀고 자기 알을 낳는 특이한 습성을 보인다.

뻐꾸기 탁란이 조금 늦은 붉은머리오목눈이 둥지. 커다란 몸집의 뻐꾸기 새끼와 작은 몸집의 붉은머리오목눈이 새끼가 동시에 부화했다. 사진 조용철 환경부 정책홍보팀 경력관


왜 그럴까? 그러고 나서는 자기 둥지에 알을 낳고 품는다. 이런 탁란 행동은 일종의 '보험들기'라고 볼 수 있다. 자기가 품던 둥지가 깨지더라도 후손을 남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종간 탁란'(다른 종류의 새들 사이에서 발생)은 전세계 조류의 1% 정도, 약 100종에서 관찰된다. 특히 뻐꾸기가 대표적인 것은 139종 두견이과 조류의 약 40%가 탁란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뻐꾸기들은 90%가 '붉은머리오목눈이' 둥지에 탁란을 한다. 붉은머리오목눈이는 평균 4~6개의 알을 낳고 부화기간은 12~14일 정도여서 뻐꾸기가 탁란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특성을 갖고 있다.

나머지 10%는 '딱새'나 '검은딱새', 제주도의 경우 '멧새'에 탁란을 한다. 나머지 두견이과 새들은 '벙어리뻐꾸기-되솔새' '검은등뻐꾸기-산솔새/되솔새' '두견이-휘파람새/섬휘파람새' '매사촌-큰유리새/쇠유리새/딱새' 탁란 사례가 많다.

◆남의 둥지에 태어난 새끼도 힘들어 = 남의 둥지에 알을 낳으니 얌체라고 하지만 뻐꾸기도 여간 힘들지 않다. 제일 먼저 현재 알을 낳고 있는 '붉은머리오목눈이' 둥지를 찾아야 한다. 집을 짓는다거나 이미 품고 있어도 안되고, 알을 낳기 시작해서 2~4개 있는 둥지가 성공 확률이 가장 높다.

남의 둥지에 알을 낳아야 하니 민첩해야 한다. 붉은머리오목눈이가 둥지를 비웠을 때, 얼른 자기 알 1개를 낳는다. 알을 낳은 후에는 붉은머리오목눈이 알 가운데 하나를 먹거나 버린다. 여기까지가 뻐꾸기 어미의 역할이다.

그 다음은 붉은머리오목눈이보다 며칠 먼저 태어난 뻐꾸기 새끼의 역할이다. 뻐꾸기 새끼는 먼저 남아있는 다른 알부터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 살아남기 위한 본능적 행동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처절하다.

눈도 못 뜨고 깃털 하나 없는 뻐꾸기 새끼가 다른 알들을 밀어내는 걸 보면 엄청나게 힘들게 노력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깊은 둥지에서 알을 밀어올려야 하니까 등판이 넓적하고 날개가 팔 역할을 한다. 그러다가 다 못 밀어내고 다른 알이 부화하면 태어난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내 떨어뜨려야 한다.

둥지 안에 혼자 남았다고 끝난 건 아니다. 부모보다 덩치가 더 커질 때까지 끊임없이 먹이를 먹어야 한다. 붉은머리오목눈이를 끝없이 협박(?)해서 먹이를 계속 가져오게 만들어야 가을에 동남아시아까지 혼자 날아갈 수 있다.

자기보다 큰 뻐꾸기 새끼를 키우느라 붉은머리오목눈이 어미새는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도 뻐꾸기 새끼는 배가 고프면 무척 시끄럽게 울어댄다. "먹이를 안 주면 계속 울어서 천적에게 들켜버릴 거야" 이런 협박을 하는 것이다.

새끼의 입 안이 빨간 것도 어미의 먹이공급 본능을 강하게 자극한다. 일본에서 뻐꾸기가 탁란하는 '개개비'의 경우 연못 속 비단잉어의 빨간 입을 보고 그 안에 나방을 물어주는 행동이 관찰되기도 했다.

◆'뻐꾸기 각인행동' 아직 관찰되지 않아 = 뻐꾸기 새끼가 다 커서 둥지를 떠날 때가 되면 원래 어미가 와서 "뻐꾹! 뻐꾹" 울음소리로 새끼에게 뻐꾸기라는 걸 알려주고 데려간다는 건 사실일까?

흔히 그렇다고 하고 이를 '각인행동'이라고 규정하지만, 실제 뻐꾸기 어미가 이소(둥지 떠나기)하는 자기 새끼를 데려가는 사례는 아직 관찰되지 않았다. 낳은 정은 몰라도 기른 정이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같은 탁란은 성공률이 10% 정도라고 한다.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첫 번식 때는 잘 속지만, 두번째 번식 이후엔 뻐꾸기 알과 자기 알을 구별해서 골라내기 때문이다.

뻐꾸기는 왜 스스로 둥지를 지어 알을 품는 쉬운 길을 외면하고 이처럼 어려운 탁란을 선택했을까?

뻐꾸기를 비롯한 두견이과 새들은 몸통은 큰데 다리가 짧아 알을 품기가 불가능한 신체구조를 갖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실패 확률이 높지만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탁란을 번식 방법으로 선택해 진화했다.

뻐꾸기는 둥지를 아예 만들지 않으니 '뻐꾸기 둥지 위를 날아간 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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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준기 기자 namu@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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