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촛불의 기록을 담아야 하는 이유

2021-10-08 11:20:54 게재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16년 10월에 시작해서 다음해 3월까지 지속된 촛불집회에서 분노한 시민들은 매 주말마다 전국 곳곳의 광장에 모여 민주적 권력행사를 위반한 집권세력을 규탄했다. '이게 나라냐'라는 간명한 개탄은 30년 이전인 1987년 민주화를 위해 거리로 나섰던 시민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참여규모에서 본다면 촛불집회는 범국민적 정치참여였다. 30년 전에는 대학생들과 넥타이부대라는 젊은 직장인들이 참여한 민주화 요구인데 비해 촛불집회는 전 세대를 아우르는 비민주적 권력에 대한 저항이었다.

촛불광장이 이룬 정치변혁은 불과 5년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현재성을 상실해 가고 있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촛불로 가시화된 시민들의 권력견제 의지와 능력은 향후 정치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촛불집회 현장의 기록을 제대로 챙기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촛불집회 참여자들은 자신이 참여했던 개인적 경험을 기억하지만 지극히 주관적이다. 또한 촛불집회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개인의 기억은 파편적 수준에 머무른다.

예를 들어 참여자들 중에는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이들도 있고 탄핵 대신에 대통령의 즉시사퇴를 요구한 사람들도 있다. 대통령 거취에 대한 이 같은 요구들 가운데 어떠한 갈등과 설득이 있었는지 알기 위해서는 참여자 대상 설문자료가 요구된다.

또 다른 예로 촛불 참여자들 대부분이 이념적으로 진보적이라는 일각의 견해가 옳은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도 역시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문조사가 필요하다.

언제든지 전 국민대상 설문조사를 통해 촛불 참여 여부를 물은 후 참여자만을 선택하면 촛불집회 실제 참여자 조사와 유수한 수준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틀린 것이다.

첫째, 응답자들이 실제로 촛불집회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지 혹은 거짓 응답을 했는지 가려내기 쉽지 않다. 촛불집회의 가치를 볼 때 참여하지 않았던 응답자들 중 일부가 참여했다고 거짓응답 할 가능성이 상당하다.

둘째, 촛불집회 당시와 관련된 응답을 현재의 기억에 의존하면 응답내용이 오염될 가능성이 높다. 기억의 왜곡에 의한 것이던 혹은 현재의 관점에서 재해석에 의한 것이던 당시 현장조사에서는 우려할 필요가 없는 오차들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결국 촛불집회 참여자들에 대한 자료는 현장에서 참여자들을 조사한 자료가 가장 가치가 높다.

촛불 참여자 조사에서 그 당시 현장 설문조사에 못지않게 의미 있는 것이 참여응답자들에 대한 추적조사다.

역사적 자료로서 촛불집회 현장조사의 가치도 높지만 촛불집회의 역사적 의미는 박물관의 유품처럼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촛불집회는 대통령 탄핵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그 이후 정치운영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즉 촛불집회 과정에서 미래적 요구가 차기 정권에 의해 수용되는 정도에 따라 참여자들은 촛불집회에 대한 가치를 평가한다. 촛불 이후 정부가 이전 정부보다 더 민주적이지 못하다면 촛불참여의 역사적 의미는 축소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참여자들 대상의 현장조사, 1년차 조사, 3년차 조사 그리고 이번 5년차 추적조사는 누적자료로서 그 가치가 상당하다. 참여자의 촛불집회 관련 의식변화를 응답자 개인수준에서 분석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같은 시기에 일반국민조사를 동시에 실시함으로써 촛불참여자와 비참여자 두 집단의 촛불집회에 대한 인식을 비교할 수 있는 귀중한 정보를 축적하게 된다.

촛불집회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향상시켰다. 촛불집회가 한국정치사에 큰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라면 그 가치에 상응하게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포괄적인 정보가 수집되어야 한다.

사적인 보상이 없음에도 매 집회마다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의 참여동기와 그들이 부여하는 촛불집회의 의미를 파악하려면 대표성 있는 규모의 참여자 조사가 필요하다.

더욱이 촛불집회 가치가 역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 정치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면 시간과 정치권의 변화에 따라 촛불집회에 대한 인식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아야 한다.

이러한 목표를 설정했다면 5년전 집회에 참여했던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시민들의 의견 변화를 추적하여 조사한 자료군이 반드시 필요하다.

요약하면 패널조사 기법으로 촛불 참여자들과 일반국민의 촛불집회에 대한 인식을 지속적으로 조사하는 작업은 촛불을 과거에 묶어두지 않고 현재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 고된 작업의 결과물 중 일부가 내일신문 창간 28주년에 맞추어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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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