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창간28 | 'K-금융 길을 묻다'-(2) 심화된 불균형

'오징어게임'으로 드러난 한국 부채 위기·불평등 '민낯'

2021-10-14 10:55:55 게재

가계부채 급증 → 소비위축 → 성장잠재력 약화

K자형 회복 … 대외 돌발 리스크 사전 대응 필요

전 세계적으로 유동성 긴축이 시작됐다. 코로나19 이후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막대한 유동성이 풀리면서 각국의 부채가 급증하고 자산가격이 급등했다. 경기는 어느 정도 회복했지만 물가가 빠른 속도로 치솟으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을 시작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경기가 둔화되면 급격히 상승했던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가치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금융시장의 불안이 커지면서 자본시장의 위험이 신용시장으로 전이될 수 있는 등 이른바 '퍼펙트스톰'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전 세계적 열풍이 불고 있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배경에는 한국 경제의 불평등이 있다. 빚더미에 앉은 자영업자, 일 하고 싶어도 취업을 할 수 없는 청년들과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중·장년층 등 절박한 처지에 내몰린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통해 소득 불균형 심화, 집값 폭등, 높은 가계부채 등 오늘날 한국 사회의 경제적 위기 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현실은 오징어 게임보다 더 맵고 비참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저소득층의 수입은 줄고 빚은 늘어만 가는데 반해 고소득층은 완화된 금융정책 덕에 부를 더 거머지면서 소득 불평등·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13일 오후 '무주택자 공동행동(공동행동)'은 "서민들은 오징어 게임보다 잔혹한 삶을 살고 있다"며 폭등한 집값·전세값에 분노하는 촛불집회를 가졌다.


◆자산 불평등 악화 = 14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계층별 성장과 고용, 소득, 실물과 금융 등 경제상황 전반에 불평등은 더욱 악화됐다. 특히 주택, 부동산, 금융자산의 불평등 수준이 높아졌다. 코로나가 본격화한 지난해 1분기 시장소득 기준 5분위 배율은 9.82배에 달했다. 2019년 1분기 7.78배보다 26.2% 증가했다. 지난해 2분기 8.86배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31.8% 커졌고, 3분기엔 9.32배(17.1%), 4분기엔 8.29배(2.6%)를 기록한 뒤, 올해 1분기 다시 9.79배로 상승했다. 이는 한국사회 상위 20%의 자산 규모가 하위 20%보다 10배 가까이 많다는 얘기다.

올해 2분기에도 양극화는 여전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소득 상위 20%는 하위 20%보다 6배(5.59)에 가까운 소득을 올렸다. 임금격차는 지난해 2분기 5.03배보다 0.56배p 늘었다.

불평등 수준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계속 상승 중이다. 특히 소득 지니계수보다 실물자산과 금융자산의 지니계수가 더 높아 주택, 부동산, 금융자산 등의 불평등 수준이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최근 자산 불평등 수준을 보면 시장소득 지니계수는 0.404, 경상소득은 0.358, 처분가능소득은 0.346인데 반해 금융자산의 지니계수는 0.603, 실물자산의 지니계수는 0.617로 불평등 수준이 높은 수준이다. 특히 실물자산 중 부동산자산의 지니계수는 0.636으로 소득자산 지니계수보다 훨씬 높다.

김성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모든 자산 유형의 불평등 수준이 소득 불평등에 비해 높다"며 "특히 부동산, 그중에서도 실제 거주하는 주택자산의 불평등 수준이 높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위원은 "불평등은 저성장을 유발하고 민주주의를 저해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누리는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며 "우리 사회에 내재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소득 이외 자산, 특히 주택자산을 고려한 다차원적인 접근과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높은 가계부채, 경제 성장 약화 =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증한 가계부채는 소비위축을 불러오고 이는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가계부채 확대가 지속되는 가운데 주택가격의 높은 상승이 이어지면서 금융불균형이 심화되는 등 중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잠재 취약성이 높은 수준이다. 부채 증가를 통해 늘어난 가계 유동성은 부동산, 주식 등 자산시장으로 대거 유입되고, 소비증가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실물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매우 적다.

가계부채 증가는 중기적으로 소비 위축요인으로 작용하는데, 소비성향 감소 등 민간소비의 둔화가 이미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가계부채 누증에 따른 민간소비 약화가 지속될 경우, 대내외 충격에 대한 취약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총수요의 둔화로 향후 성장잠재력이 낮아질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2022년 민간소비는 증가세가 소폭 둔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출 및 설비투자 증가세가 둔화되고 노동시장 및 가계 소득 개선세가 지연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가계부채 증가세가 지속되고 시장금리 상승으로 인한 원리금 상환 부담 확대되면서 민간소비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코로나19 재확산의 영향으로 가계의 소득여건 개선이 제약되는 가운데 대출금리 상승 압력이 커지면서 취약부문을 중심으로 가계의 채무상환부담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도 확대됐다. 빚을 내 투자한 고소득층보다 취약층의 부담은 상대적으로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한진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빚을 내 투자하는데 쓴 고소득층이나 대기업은 금리 인상 부담이 거의 없는 반면, 저소득층과 중소기업·영세 자영업자 부담은 크게 늘어날 수 있어 금리인상 이후 'K자형 회복세'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리 정상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취약부문의 어려움이 완화될 수 있도록 금융 및 재정 정책면에서 선별적 지원 방안을 강화할 필요가 제기된다. 취약차주는 변동금리대출 비중(76.0%, 비취약차주 71.4%)이 높은 데다 차주 신용위험을 반영한 가산금리가 동반 상승하면서 대출금리는 큰 폭의 상승이 예상된다.

정화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금리인상에 따른 채무상환부담 증가가 부실 확대로 이어지지 않도록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며 "취약부문에 대한 선별적인 재정지원을 강화해 신용위험이 경제 전반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대응해야한다"고 말했다.

이한진 연구위원은 "가계부채 급증과 함께 부동산 가격 또한 급등하면서 경제적 약자들의 절망감이 커졌다"며 "향후 금융 정책 방향은 수요 규제는 물론 공급 요인을 적극적으로 통제하고. 가계나 기업의 원활한 경제활동 지원을 위한 대출은 적극적으로 지원하되 재산 증식을 위한 대출은 강력하게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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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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