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굴기인가 쇠퇴인가, 기로에 선 중국

2022-05-26 11:05:31 게재
이창열 한국통일외교협회 부회장, 중국사회과학원 경제학 박사

코로나 위기 속에서 홀로 선전하던 중국경제가 최근 구조적 침체조짐을 보인다. 리커창 총리가 양회에서 지적한 수요위축, 공급충격, 시장기대 약화의 악재에 제로코로나 정책의 타격이 더해지면서 4월 제조업 구매자관리지수(PMI)가 경기불황 기준인 50보다 낮은 47.4(미국 55.4)을 기록했다. 민간소비가 반영된 비제조업 PMI지수는 41.9(미국 57.1)까지 밀렸다. 금리와 지급준비율, 재정동원을 통한 연 5.5% 성장목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나, 중국경제가 굴기가 아닌 쇠퇴로 접어드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커졌다.

실제 중국경제의 장기전망은 낙관적이지 않다. 한국은 1994년 국민소득 1만달러 달성 이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도 10년 동안 평균 6% 성장했다. 그러나 중국은 2019년 국민소득 1만달러 달성 이후 5% 유지도 버거워한다. 당국의 공동부유 표방 후 기업의 투자의욕이 낮아졌다. 경제성장 기여도의 60%를 상회하는 소비도 불황과 실업증가, 제로코로나 정책으로 인한 단기위축에 인구감소와 고령사회 도래의 충격이 더해져 장기침체가 예상된다. 미중 디커플링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해외수요까지 위축돼 유일한 버팀목인 정부 주도 투자만으로는 견디기 힘든 상황이다.

중국이 유념해야 할 미국의 강점 5가지

중국경제의 미래를 예측할 때 유의할 점은 정보 부족으로 인한 착시현상이다. 국가주도 경제에 대한 고려없이 중국이 강점을 보이는 부분에 경사돼 바라보면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할 수 있다. 중국정부의 우선적 자원 배분으로 인공지능(AI) 전기차 배터리 우주항공 빅데이터 등에서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다. 세계 논문순위 1위 등 무형적 자산축적도 괄목할 수준이며, 희토류 등 자원강국이기도 하다.

반면 경제성장의 주력인 민생부문은 규제로 인한 투자환경 악화, 우수한 인적자원 부족, 민간소비여력 감소로 위축되고 있다. 공공사업의 주력인 지방정부도 과도한 인프라 투자로 인한 부채누적으로 투자여력이 고갈되고 있다.

중국의 경제굴기를 질적으로 평가하느냐 양적으로 비교하느냐의 측면도 있다. 14억명의 인구효과로 4% 성장만 지속해도 달성할 수 있는 세계 1위 경제규모만으로 미국과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고 볼 수 있을까. 대표적 친중인사인 싱가포르 전직 외교관 마부바니는 저서 '중국의 선택'에서 '시진핑 주석에게 보내는 가상의 편지' 형식으로 중국이 2049년 건국 100주년에 미국을 능가하기 위해 유념해야 할 미국의 강점 5가지를 거론했다.

△미국에서는 개인 위상이 높아지면 공격을 받는 중국과 달리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처럼 존경받는다. △미국은 민간기업이 외국 우수 인재를 흡수해 경제발전을 이끈다. △미국은 강력한 개인지도자가 아닌 삼권분립 같은 제도 중심으로 발전함으로써 세계의 신뢰를 받는다. △미국은 대학이 다양한 사상과 창조적 쇄신을 선도하고 있으며, 중국의 가장 창의적 시대였던 춘추전국시대를 연상시킨다. △미국은 서구문명권에 동맹이 있으나 중국은 문화대국임에도 동맹이 없다. 마부바니의 지적은 진정한 세계대국이 되기 위해 중국에 무엇이 필요한가를 엿볼 수 있게 했다.

중국 특유의 국가운영철학에서도 경제굴기 가능성을 내다볼 수 있다. 건륭제가 영국의 무역 요청에 대해 "중국에는 모든 것이 다 있어 무역이 필요가 없다"고 한 것처럼 여전히 '자급자족식 중앙집권왕조' 관념이 깔려 있다.

중국은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서구의 발전방식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왕치산 국가부주석은 사회주의 종말을 주장했던 후쿠야마 교수와의 2015년 대담에서 중국 특유의 역사적 경험에 기반한 통치방식이 굴기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과시하기도 했다. 미중 경제전쟁을 내수기반으로 극복한다는 2020년의 쌍순환 경제발전전략도 같은 사고의 발현으로 볼 수 있다.

개혁개방 후광 있을 때 국가전략 버전업해야

중국경제가 변곡점을 맞고 있는 지금, 중국이 굴기와 쇠퇴의 어느 길을 갈지는 여전히 안개속이다. 일반적으로 국가주도 경제는 한국 사례처럼 초기에는 뛰어난 자원동원역량으로 고도성장을 이루지만, 중진국 문턱에서 민간의 자율과 창의, 제도의 투명성과 개방성에 바탕한 성숙경제로 이행하지 않으면 중진국 함정에 빠지기 쉽다.

중국은 경제치적으로 공산당 통치의 정당성을 획득해야 하는 만큼, 개혁개방으로 이룬 경제적 성취의 후광이 소진되기 전에 지금까지의 국가운영전략을 버전업하는 새로운 선택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