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보행안전법 적용 가능하다

2022-11-03 11:36:45 게재

국가의 안전한 보행환경 조성 의무 명시

법조계와 정치권 "국가 책임 물을 근거"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정부 책임론이 확산하는 가운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법에 명시된 국민의 안전한 보행권 확보 노력을 외면했다는 주장이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법조계와 정치권은 보행안전법이 향후 국가배상 책임을 묻는 소송에서 주요한 법률적 근거로 활용될 것으로 예상했다.

2일 법조계와 정치권은 이태원 참사를 국가와 지자체가 보행자 안전과 편의증진 등을 외면한 인재로 분석했다. 이 같은 분석은 '보행안전 및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보행안전법)을 근거로 했다.

지난 7월 시행된 보행안전법 제1조에 따르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보행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걸을 수 있는 쾌적한 보행환경을 조성해 각종 위험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해야 한다. 또 제4조(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에는 보행자가 쾌적한 보행환경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보행자길을 통행할 수 있도록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도록 정하고 있다. 법에서 말한 보행자길은 이태원 참사 현장인 골목길 등 불특정 다수의 보행자가 통행할 수 있는 장소를 포함한다. 설령 이태원 핼러윈 행사처럼 주최 측이 없어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안전한 보행권 확보를 위한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게 법적 의무다.

이에 따르면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다 했다"는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게 법조계 판단이다. 공익소송을 주로 다루는 신 모 변호사(52)는 "이태원 참사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안전한 보행권 확보라는 기본적 의무를 게을리해서 발생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제10조(보행환경개선사업의 시행) 1항 4에 따르면 보행자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보행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시설물 및 적치물 등을 정비해야 한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있었던 무허가 건축물이나 불법 증축된 공간 등을 정비해 안전한 보행권을 확보하는 게 필수인데도 해당 지자체들은 이런 노력을 게을리했다.

보행안전법 소관 부처는 행정안전부다. 서울시와 용산구도 이 법에 근거해 보행권 확보와 보행환경개선에 관한 기본 조례를 제정했다. 따라서 행정안전부와 서울시 등의 책임론이 불가피해 보인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형석 의원은 "법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현장처럼 보행자 통행이 많은 구역을 보행환경개선지구로 지정해야 한다"면서 "서울시가 이런 의무를 다했는지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법의 취지는 교통사고로부터 보행자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구체적으로 어떤 조항이 이번 사고와 관련해 적용 가능한지는 따져보겠다"고 말했다.

법조계는 참사 수습 이후 국가배상 소송의 주요한 법률적 근거를 보행안전법 등으로 보고 있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국가와 자치단체의 안일한 대처가 속속 드러나면서 국가배상소송이 예상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대한변호사협회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도 피해자 법률지원단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 용산구가 사고현장 불법 건축물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영조물(도로) 하자에 따른 손해배상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신 변호사는 "참사 수습 이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이 있을 경우 보행안전법 적용이 주요 쟁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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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국진 김신일 기자 kjb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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