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실전편 4

"탄소감축 이행 시대, 정확한 데이터가 경쟁력"

2023-06-12 00:00:01 게재

감축 목표 공감대 형성하는 토대 마련, 실현 가능성 높여야 … 미래 불확실성 줄이는 일이 과학의 역할

인터뷰 - 정은해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장

"세계은행그룹의 첫번째 투자 철학이 '기후'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올해 7월 1일부터 국가 단위로 투자하는 공적 펀드의 경우 100% 파리협정의 가치와 맞는 곳에만 신규투자를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죠. 세계은행그룹 산하의 국제투자보증기구(MIGA)도 7월 1일부터 85%, 내년 7월 1일부터는 100% 신규투자사업을 파리협정 목표와 연계할 예정입니다. 이는 전세계가 더 적극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이행 단계에 들어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어요. 탄소 감축 이행 시대에서 가장 기본은 데이터입니다."

정은해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장은 2050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투명한 데이터 구축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내년부터 우리나라를 비롯한 파리협정 당사국들은 2년마다 '격년 투명성 보고서'(Biennial Transparency Report, BTR)를 제출해야 한다. BTR을 통해 제출된 정보는 '기술 전문가 검토' 과정을 거쳐 검증되고 해당 국가가 개선해야 할 사항 등에 대한 권고가 이뤄진다. 또한 '촉진적 다자 고려'(FMCP)를 통해 BTR 공개 검토가 진행된다.

정은해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장│△국립환경과학원 기후대기연구부장(2021년) △환경부 지속가능전략담당관, 녹색전환정책과장(2020년) △유엔 지속가능발전센터 선임개발관리전문가(2016년) △환경부 기후변화협력과장(2015년) △대통령비서실 기후환경비서관실 행정관(2013년)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국제통상금융관리 박사(2022년) △미국 예일대 환경대학원 자연보전정책 석사(2004년) △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 석사(1996년) △서울대 생물교육과 학사(1994년) 사진 이의종


정 센터장은 "파리협정 당사국들이 정한 형식이 있기 때문에 국가별 온실가스 감축 관련 데이터들은 정교해져야 한다"며 "결국 핵심은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였는지 투명하게 보여주는 숫자인 만큼 우리나라가 손해를 보지 않도록 보다 정교한 감축 관련 데이터와 고품질의 온실가스 인벤토리를 구축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 센터장과의 인터뷰는 2일 충북 오송역 인근에 있는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에서 이뤄졌다.

데이터에 따라 결과 달라, 전문성 높일 터

"우리 기관은 온실가스 관련 데이터랩이자 다양한 데이터들을 분석하고 검증하는 싱크탱크입니다. 국가온실가스 통계를 작성하기 위한 기본적인 데이터 입력값이 약 33만개 이상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작업이에요. 게다가 가공통계다 보니 해당 숫자의 의미를 분석하는 일뿐만 아니라 6개 부처 11개 기관들이 작성한 모든 부문의 통계 구축이 잘 되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그만큼 전문성이 필요하죠."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는 매년 국가온실가스 배출량을 산정하고 분석 검증하는 기관이다. 5년마다 국가 온실가스 통계 총괄관리 계획을 수립하는 등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였다. 나아가 배출권거래제 활성화를 위해 국제 탄소시장 간 협력 방안 마련 등 다양한 기능을 한다. 2050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주춧돌과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파리협정이 발효되면서 5년마다 국제적으로 얼마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노력했는지 이행점검을 하게 되면서 주기적으로 예측 가능한 시간표가 생겼어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 수소 부분이 앞으로 얼마나 비중이 커져야 하는지 등을 전문가들이 먼저 큰 체계를 잡아야 실현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죠.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와의 거버넌스를 통해서 정권에 관계없이 전문가들이 이행점검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잘 정착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2035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는 2025년까지 발표하면 되기 때문에 아직 시간이 있어요. 이번에는 처음 기초 데이터를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범부처 간에 협의를 통해서 숫자들에 대한 공감대를 충분히 형성해 실현 가능성을 높여야 합니다."

정 센터장은 "분석에 들어가는 초기 데이터 질이 높아야 결과물도 좋아진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각 분야에 산재된 데이터들이 잘 공유될 수 있도록 프레임을 제대로 짜는 작업을 강화할 계획이다.

초기에는 온실가스 감축 여력이 적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감축 가능성이 높아지는 핵심 기후기술들의 적용 가능성이나 소요비용, 시기별 감축잠재량 등을 제대로 분석할 수 있도록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가 역할을 하는 게 목표다.

"전문가들은 온실가스 감축 시나리오가 현실에서는 계속 수정보완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해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예상치 못한 변수가 언제든지 생길 수 있어서죠.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변수를 고려한 시나리오 분석이 정말 중요해요. 향후 계획들의 불확실성을 감수하되, 그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게 과학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감축이행 등 한곳에서 보는 통합플랫폼

"지난 4월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이 수립됨에 따라 전국 243개 광역·기초 지방자치단체는 2025년 4월까지(광역은 2024년 4월까지) 지역의 탄소중립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매년 이행상황을 점검해야 합니다. 지역 통계는 엑셀 데이터만 약 3억개가 필요할 정도로 국가 단위 통계보다 더 세밀하고 복잡해요. 센터에서 지역별 특성을 반영하고 국가 통계와 정합성을 가질 수 있도록 교차 검토를 진행 중이죠. 쉽지 않지만 지역별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 및 이행대책 수립에 중요한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통계분석방법론을 고도화할 계획입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제11조에 따라 특별시장·광역시장·특별자치시장·도지사 및 특별자치도지사는 국가기본계획과 관할 구역의 지역적 특성 등을 고려해 10년을 계획기간으로 하는 시·도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시행해야 한다.

"우리나라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는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어요. 하지만 좀 더 강화된 온실가스 통계 품질 확보 정책을 마련해야죠. 이를 위해 종전 국내 온실가스 통계 산정체계 및 방법론을 '2006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국제지침 기준'으로 전환하기 위해 작업 중입니다. 내년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제출하는 온실가스 통계부터 개정 지침을 적용하도록 할 계획이에요."

정 센터장은 "각 분야에 흩어져 있는 온실가스 통계들을 한곳에 모아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방안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중앙부처와 지자체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제출·검증 통합 기능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 및 이행 결과 등 이행상황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 중이다.

단기간에 산업·민주화 이뤄, 기후도 선도

국내·외에서 기후 관련 업무를 10여년 넘게 해온 정 센터장은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를 국제 탄소정책과 시장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는 과학자 그룹으로 만드는 게 꿈이다. 물론 이 목표를 혼자만의 힘으로 이룰 수 없다는 걸 정 센터장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10여년 전과 달리 기후변화가 시대적 대세(특히 감축 분야)가 된 만큼 함께 힘을 모은다면 불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한 세대 만에 산업·민주화를 모두 이룬 대단한 국가입니다. 이 자신감을 가지고 함께 노력한다면 기후변화 대응 분야에서도 세계를 선도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기후변화 대응 노력이 국제적으로 충분히 알려지고 그 과정을 통해 국익이 반영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싶습니다."


[용어 설명]
■국제투자보증기구 = 세계은행이 제안한 해외투자 관련 위험을 담보하기 위한 국제보험기관이다. 약칭은 미가(MIGA)이며 다자간 투자보증기구라고도 불린다. 이전위험, 권리박탈위험, 계약위반위험, 전쟁 및 내란 위험 등 비상업적 위험을 보증하고 개발도상국에 대한 투자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자발적 탄소시장 = 개인 기업 정부 비영리단체 등 다양한 조직이 자발적으로 탄소감축 프로젝트에 참여해 탄소크레디트를 창출하고 거래하는 민간 탄소시장이다. 탄소크레디트는 온실가스의 배출 삭감 또는 흡수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생성되는 배출 삭감·흡수량을 가치화한 것이다. 탄소 상쇄에 이용하기 위해 거래되는 일종의 '상품'이라 볼 수 있다. 한 예로 산림 조성 사업에 투자하면 탄소 크레디트를 얻을 수 있다.
■온실가스 인벤토리 = 온실가스 배출원을 규명하고 각 배출원에 따른 배출량을 산정할 수 있도록 목록화한 통계 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국가 또는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파악한 뒤 국가는 적절한 감축량을 설정하고 기업은 감축 활동의 성과를 인정받거나 배출량을 검증받을 수 있다.
■파리협정 = 2020년 끝난 교토의정서 체제를 대체한다. 선진국의 선도적 역할이 강조되는 가운데 모든 국가가 전지구적인 기후변화 대응에 참여해야 한다. 국제사회 공동의 장기목표로 산업화(1850~1900년)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2℃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으로 하고 온도 상승을 1.5℃ 이하로 제한하기 위한 노력을 추구한다.
■가공 통계 = 조사 등을 통해 수집된 한 종류 이상의 투입자료(1차 통계와 외부자료)를 분류 집계 편집 추계 등의 방법으로 통계를 내는 것을 말한다. 1개 이상의 1차 통계자료를 이용해 수학·논리적으로 다양한 가공(계절조정 등) 절차를 통해 생산된 통계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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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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