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제헌의원 조봉암이 제기한 헌법적 숙제들

2023-07-19 11:42:28 게재
신동호 현대사기록연구원 연구위원장

죽산 조봉암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눈길을 끈다. 국가보훈부가 그의 서훈을 검토할 것이라고 하고 인천시와 여야 정치권 등이 추모행사와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최근 출간된 평전 '자유인의 길'(이택선 지음)은 진보정치인이라는 특정 진영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한국 현대사를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죽산을 새롭게 조명한다.

한국 현대사 인물 중 최근에 이르러 죽산만큼 다양한 조명과 평가를 받는 이는 드물지 않을까 싶다. 2000년대에는 최초의 '평화통일론' 주창자로, 2010년대부터는 경제성장의 시작점이 된 '농지개혁'의 주역으로, 그리고 2020년대에 이르러서는 '계획경제론 진영'의 핵심 인물로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게 평전 저자의 분석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한국이 오늘날 정치적 경제적 선진화를 달성할 수 있게끔 한 국가 설계자의 일원으로 죽산을 평가했다.

국가 설계도라면 그 밑바탕은 헌법이다. 죽산은 제헌의원이자 헌법기초위원으로서 헌법 제정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헌법은 혁신적이고 진취적이며 현대적이고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자신의 헌법관을 매우 열정적으로 주장하고 관철하고자 했다.

그 결과 근로자의 이익균점권과 같은 노동 관련 조항과 농지개혁, 그리고 국가의 역할과 공공성을 중시하는 경제 관련 조항 등 혁신적인 요소들이 그를 비롯한 중도파의 노력으로 헌법에 녹아들 수 있었다. 좌파적으로 보이는 이런 헌법 규정들이 신생 취약국가를 공산주의적 계급혁명으로부터 보호했으며 자본주의 계획경제론과 자유경제론이 각축하고 경합하는 역동적인 한국 경제의 기본 구조를 정초했다는 게 죽산에 대한 최근 재평가의 큰 흐름이다.

'진보정치인'에서 '대한민국 설계자'로

그런데 국민의 기본권과 권력구조 부분에서는 죽산이 관철하지 못한 부분이 상당수 있었다. 그는 국회 발언을 통해 자신의 주장과 헌법 조문 뒤에 숨은 입법 취지를 기록으로 남겼다. 그 내용을 보면 그는 매우 현대적인 헌법사상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때 지적한 문제의 대부분이 75년이 지난 지금도 해소되지 않은 헌법적 미제로 남아 있다.

한 예로 국회 자문기구나 개헌특위 자료 등에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기본권 주체성 문제를 들 수 있다. 인간이 가지는 보편적 기본권을 '국민'에 한정한 것은 우리 헌법의 중대한 결함 중 하나다. 이를 '누구든지' 또는 '모든 사람'으로 바꿔야 한다고 보고서와 자료 등은 제안하고 있다. 일찍이 죽산은 '국민'을 '인민'으로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기본권 부분에서 현행 헌법은 75년 전 죽산이 제시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신체의 자유 조항의 사후영장청구제도는 지금도 남아 있고, 고문과 잔혹한 형벌 금지의 완전한 명문화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상의 자유 조항은 '해괴한 표현이고 무의미한 수사'라고 죽산이 공박한 '양심의 자유'로 지금도 통용되고 있다.

특히 죽산이 피를 토하듯이 주장한 것은 '제왕적 대통령'의 탄생과 독재의 출현을 가져올 권력구조에 대한 것이다. 정부 수립 후 39년간 3차례의 헌정중단과 독재, 1987년 체제 이후 지금까지 37년간의 정치파행을 키우게 될 씨앗을 죽산은 날카롭게 예지한 셈이다.

그는 '인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국권의 최고 기관이 돼야 함에도 대통령의 독재에 편의를 도모하는 법률을 제공하기 위해 모인 것처럼 취급되고 있음을 개탄했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구조에 대해 "우리들이 인민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마음대로 외벌할 수 있는 무서운 대통령을 만들어 세운다면 본의 아니게 인민의 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언제나 대통령은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고 여전히 국회는 '통법부'로 기능하는 지금의 정치구조 역시 죽산이 던진 헌법적 숙제를 우리가 75년 동안 풀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현실이다.

'제왕적 대통령'과 '통법부 국회' 예언

독립운동가, 공산주의자, 진보정치인, 사법살인의 희생자 등으로 일반에 알려진 죽산이 대한민국의 설계자로 재조명되는 것은 현실적 요구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죽산은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정치인이면서도 제도정치인으로서 매우 유능하고 현실적인 정치인상을 보여주었다. 국가를 설계하는 제헌의원으로서는 지나치다고 할 정도로 원칙을 고집했지만 제도정치인으로서 그는 대화와 설득, 타협으로 문제를 풀어나간 현실주의자였다. 지금의 정치권이 귀감으로 삼아야 할 죽산의 또 다른 면모다.

신동호 현대사기록연구원 연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