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35개 중 14개 남았다 - 중국의 '차보즈 기술' 돌파

2023-07-27 11:43:15 게재
최필수 세종대 부교수 국제학부

차보즈(卡脖子), '목을 조르다'는 뜻의 중국어다. '차보즈 기술'이란 그 말에서 쉽게 유추할 수 있듯이 중국의 발전을 억누르고 있는 기술이란 뜻이다.

지난 4월 중국과학원은 차보즈 기술 리스트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여러 분야에 걸친 35개의 기술이 등장한다. 기술을 규정하는 개념의 층차는 다양할 수 있다. 편의상 그 층차를 상중하(上中下) 3단계로 나눠보자. 예를 들면 '전기차 기술'이라고 하면 상위개념, '이차전지 제조 기술'이라고 하면 중위개념, '배터리 모듈 패키징 기술'이라고 하면 하위개념이다. 이번에 발표된 차보즈 기술들은 대체로 중위개념에 해당한다. 더 포괄적일 수도 있고 더 세부적일 수도 있는데, 그 중간 수준에서 지칭한 기술들이란 뜻이다.

이렇게 중위개념으로 설정한 35개의 항목은 외국이 중국에게 개방하지 않은 것들이다. 기업들이 상업적으로 자기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중국에게 제공하지 않은 결과일 수도 있고, 누군가가 정치적 결단을 통해 제도적으로 보이콧한 결과일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 중국은 돈을 주고 그 기술을 구매 혹은 사용하면 된다. 실제로 그렇게 해왔고 외국기업들은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자기 기술을 중국에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게 무슨 기술이건 그것이 구현됐을 때 가장 큰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공간이 중국이었기 때문이다.

인구규모와 구매력에 있어 중국은 명실공히 세계 최대 시장이다. 자기 기술을 적절히 지키고 개방하면서 중국시장에 접근하는 것, 그것이 글로벌 기업들의 공통된 행태였다. 이 행태를 통해 중국과 외국기업은 이윤의 열매를 공유해왔다.

미국의 기술 보이콧이 중국에 던진 충격

문제는 후자다. 최근 몇년 사이에 주로 미국에 의해 구현된 기술 보이콧은 중국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다. 아무리 돈을 주고 시장으로 유혹해도, 적으로 규정하고 보이콧하겠다는 데는 당할 도리가 없다.

사실 정치적 보이콧이 있기 전부터 중국은 자주창신(自主創新)이라는 구호 아래 기술적 독립을 추구했었다. 그때는 "16개 대형과제(2006년)" "7대 전략적 신흥산업(2010년)" "국가중점연구개발계획 중점 프로젝트(2015년)"와 같은 이름으로 상위 층차의 기술들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를 테면 '집적회로 반도체' '차세대 정보기술' 같은 식이다.

그런데 최근 중국이 규정한 차보즈 기술에서는 이제 그런 여유와 야심을 찾아보기 힘들다. 차보즈 35개 기술에 대한 성취는 달성하지 못하면 안되는 절박한 것들이다. 그래서 한층 더 구체적인 중위 수준의 목표가 설정됐고, 그 성취를 위해서 전방위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35개 중에서 2022년 말 현재 21개가 해결됐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해결된 것들 중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칩 생산기술'이다. 비교적 포괄적인 상위 층차로 설정돼 있어서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긴 어렵지만 반도체 칩을 생산하는데 필요했던 어떤 기술을 확보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러한 포괄적인 기술 설정과 그 성취를 곧이곧대로 이해하면 안된다. 반도체 제조의 핵심 단계인 광각기와 포토레지스트가 미해결 기술이라고 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보이콧하고 있는 이 기술들이 확보되지 않은 이상, 중국은 완전한 '칩 생산기술'을 보유했다고 할 수 없다.

중국이 아직 미해결됐다고 밝힌 14개 기술은 △광각기 △포토레지스트 △iCLIP(의약품 개발에 쓰이는 핵심기술) △첨단 전기 콘덴스 전기저항 △핵심산업용 소프트웨어 △로봇 핵심 알고리즘 △밀링 커터 △항공기 설계 소프트웨어 △항공기 엔진실 △항공 적합성 기준 및 해당 기술 △에폭시 수지 △의료 영상설비 소자·부품 △고강도 스테인레스강 △주사 전자현미경 등이다.

리스트 공개 자체가 일정한 성과 반영한 듯

그렇다면 14개 미해결 기술은 언제쯤 성취될까? 이에 대해서 중국과학원은 명확한 시간표를 제시하고 있지 않다. 2015년 '중국제조2025'를 발표하면서 명확한 시간표를 제시했다가 제재의 역풍을 맞은 경험 때문일지 아니면 정말로 시간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리스트 자체가 관리되고 있으며, 그것이 대중에게 공개된 것으로 보아 일정한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35개 중에서 14개 남았다는 중국의 선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이유다.

최필수 세종대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