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실전편 10

기후불안 파고들며 세력 키우는 '극우 포퓰리즘'

2023-08-28 11:43:12 게재

새로운 '정치적 인식 공동체'의 등장? 과학은 과학으로 입증 … 탄소중립이라는 큰 시대적 흐름은 변하지 않아

기후재난이 일상이 된 시대다. 폭염 홍수 태풍 가뭄 등 빈번해진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이를 위해선 사회적 탄소 가격을 제대로 산정하고 그에 따른 책임 분담을 해야 한다. 나아가 탄소감축을 위한 각종 정책들이 집행되면서 행여 예상치 못한 부분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보다 폭넓게 정책 연계성을 살펴봐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이다. 또한 불확실성이 클 수록 두려움도 커지는 게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기후불안을 파고들며 기후위기 부정론을 내세우지만, 기후변화는 과학의 한 영역이다. 기후변화가 인간의 인위적인 활동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과학적 증거가 있다면 논문 등을 통해 검증을 받으면 된다. 불필요한 논쟁을 벌이는 동안에도 인류 생존을 위해 준비할 시간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스웨덴 환경운동가인 그레타 툰베리(사진 맨 앞줄 왼쪽)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기후 변화를 '너무 극단적으로' 부정해 준 덕분에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환경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사진은 그레타 툰베리와 우간다 운동가 페이션스 나부칼루가 지난 6월 12일 독일의 포스트방크(Postbank)가 동아프리카 송유관 건설 프로젝트(EACOP)에 자금을 조달하는 것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는 장면. 사진 EPA·연합뉴스 제공


최근 세계 각국에서 잇달아 발생되는 이상기후로 기후위기에 대한 사람들의 경각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기후위기는 취약계층에게 더욱 가혹하다. 전세계를 강타한 기록적인 폭염은 단순히 기온 상승의 문제가 아니다. 에어컨은커녕 당장 선풍기 1대 확보하기 힘든 에너지취약계층들에게는 생명을 위협하는 재앙이 될 수 있다. 기후정의 실현과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각종 정책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그리고 빠르게 성과를 내야 하는 시기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정책이 서민들에게 부담을 준다는 논리로 대중을 사로잡으려는 극우 성향의 정당들이 등장하고 있다.

23일 프랑스의 한 기후변화 관련 전문가는 "최근 유럽의 환경단체들은 극우정당들이 기후환경 문제에 대해 논쟁적인 발언을 하는 등 기후위기를 자신들의 의제로 만드는 분위기에 대해 큰 걱정을 하고 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유럽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선도 주자 역할을 자처해왔다. 각종 기후리더십을 발휘하며 재생에너지 확대 등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을 독려했지만 최근에는 일부 다른 모습들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출현하고 있어 우려를 낳는다.

'농민-시민운동당' 지도자 카롤리너 판 데르 플라스가 3월 15일 네덜란드 지방 의회 선거 투표 뒤 선거 저녁 행사에서 결과를 확인하면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 ANP·AFP·연합뉴스 제공


◆기후변화엔 동의해도 에너지정책은 정반대? = 24일 이태동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는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잘 팔리는 상품이나 서비스 외에 '가치'적인 요소들을 권위 있게 배분하는 것"이라며 "여기서 권위는 리더십이 어떠한 비전을 가지느냐에 따라 정해지고 이에 따라 조직과 예산이 사용된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 과정에서 기후변화 주류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자연히 대응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며 "기후변화에 대한 리더십은 관심의 정도가 얼마나 크고 적은지 정도의 차이지만, 에너지 정책에 들어가면 기후변화에 동의해도 완전히 상반된 입장을 보이기도 하는 게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거대 담론에는 동의해도 세부 이행을 위한 각론에서는 첨예한 입장 차가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산업혁명 시기에 구축된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 체계를 온실가스가 뿜어져 나오지 않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 당연히 체제 전환에 따른 고통은 클 수밖에 없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치적 인식 공동체'의 합리적인 결단이 중요하다.

피터 M. 하스의 '인식공동체'(epistemic community·특정 분야 또는 이슈 영역 내에서 전문성과 역량을 인정받고 정책과 관련된 지시에 대한 권위 있는 주장을 하는 전문가들의 네트워크)와 달리 정치적 인식 공동체는 과학적 지식과 권력을 연결하는 특성이 있다. 때문에 기존과 다른 새로운 특성을 가진 정치적 인식 공동체의 출현은 국가 에너지 정책의 급진적인 변화를 일으킨다(책 '에너지 전환의 정치').

재생에너지와 탈원전 리더로 불리는 독일에서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 지지도가 높아지는 현상을 우려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내년 1월부터 독일에서는 사실상 신규 건축물에 가스보일러 설치가 금지된다. 대신 히트펌프 설치 비용 지원 등 보조금 정책을 내세웠지만 반감이 커지면서 녹색당을 비롯한 집권 연정에 대한 지지도가 다소 주춤하는 분위기다.

지난 3월 네덜란드에서는 신생정당 '농민-시민운동당(BBB)'이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두기도 했다. 질소 배출 감축을 위해 2030년까지 가축 수를 1/3로 줄이도록 하는 정부 정책에 대한 반발도 한 원인으로 주목된다.

환경단체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지난 3일 리시 수낵 영국 총리의 사저 지붕 위에 올라가 북해 유전 개발에 반대하는 뜻에서 검은색 천으로 건물 한 면을 가린 가운데 그의 새 정책에 항의하고 있다. 사진 그린피스 영국·AFP·연합뉴스 제공


영국 정부 역시 다소 쇠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업들에게 북해 석유·가스 시추를 추가로 허용할 방침이다. 또한 배출권거래제(ETS) 대상자들에게 배출허용량을 추가적으로 할당 했다. 덩달아 영국 배출권 가격은 유럽연합(EU)에 비해 훨씬 저렴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ETS는 온실가스 배출자가 배출량에 비례해 가격을 지불하도록 하는 제도다. 기업(할당업체)마다 감축 목표량이 있고 목표량만큼 감축하지 못하면 배출권을 구매해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권 구매비용이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하면 탄소집약적 물품의 생산비용과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고 자연히 시장에서 퇴출된다. 때문에 에너지가격이 제대로 반영된 배출권 가격 조성은 제도 성공을 위해 필수다.

◆반복되는 '기후부정론', 기후변화는 과학의 한 영역 =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들이 기후변화를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게 중론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우려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 한 사실로 과장되거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가짜가 아니다. 전세계 각 분야의 과학자들이 모여 수없이 많은 증거와 관찰을 통해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로 기후변화가 일어난다는 점은 이미 합의가 이뤄졌다.

국가녹색기술연구소의 '탄소중립 지역 혁신을 위한 기후기술 실증사업 기획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1979년은 국제적으로 기후변화에 관한 관심이 시작된 해다. 제1차 세계기후회의가 열리면서 기후변화가 인간 활동으로 발생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이 설립돼 보다 과학적으로 기후변화가 실재하는 문제이며 인간 활동의 결과라는 사실이 보고되기 시작했다.

요즘에야 기후변화가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영향임을 부정하는 이들이 드물지만, '기후변화는 인간이 초래한 게 아니라 자연적인 현상이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필요 없다' 등 기후부정론자들의 목소리는 2000년대 초에도 있었다. 비정부기후변화국제협의체(NIPCC)라는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의 모임도 이뤄졌다.

◆다른 증거 있다면 과학적 검증 절차 거치면 돼 = 하지만 과학적 사실은 토론이나 언론 인터뷰, 대중 간의 논쟁 등을 통해서 결정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기후위기가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 상승에 따른 결과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면 이는 동료 학자들의 엄격한 검증을 통해 과학적으로 입증을 하면 된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우리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 어떠한 방법을 택할지 등을 사회적 합의를 거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소리다.

25일 조홍식 외교부 기후환경대사는 "기후변화 부정 등의 움직임은 과거에도 있어왔고 앞으로도 크고 작은 반발은 계속될 것"이라며 "인간의 활동에서 재분배 현상은 언제든지 일어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과정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탄소중립이라는 메가트렌드는 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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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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