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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단체의 이상한 침묵

2023-09-15 11:54:49 게재
양영유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언론인

대한민국 '교육의 여름'은 뜨거웠다. 교권을 둘러싼 이슈가 봇물처럼 터졌고 선생님들은 폭염에 거리로 나왔다.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질 때마다 국민의 마음은 타들어갔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이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가을의 초입이다. 선선한 공기가 가열됐던 이마를 식혀준다. 교권 문제도 이제 차분히 생각해볼 때다. 교권 4법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본질적인 문제는 여전하다. 타율과 감성보다는 이성이 필요하다.

학부모들의 외침, 교육현장에 죽비 돼

'2023년판 교권 사태'에서 주목할 대목은 학부모단체다. 우리 곁에는 수많은 학부모단체가 있다. 전국단위 지역단위 보수성격 진보 성격 등 다양하다. 학부모단체는 그동안 교육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정부와 교육청, 학교를 향해 죽비를 내리쳤다. 학부모단체의 죽비는 정부 정책이나 교육현장에 약이 됐다.

#1. 2023년 9월 4일 서이초 교사의 49재 날. 교사들은 차분했고 교육부는 강경대응에서 한발 물러섰다. '공교육 멈춤의 날'을 둘러싼 논란은 잠시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이날까지 학부모단체들은 양분됐다. '공교육 멈춤의 날' 지지 단체와 '공교육은 절대 멈춰선 안된다'는 반대 단체가 대립했다. 관련 법 제·개정을 놓고도 속도전과 조절론이 맞선다. 하지만 교권보호 외침의 데시벨은 이상하리만큼 크지가 않다.

#2. 2020년 10월 30일 정부 서울청사 앞. 학부모단체가 '서울대는 당장 대국민 사기극을 멈추고 수능 100% 정시 확대하라'는 현수막을 들고 기자회견을 했다. 서울대가 2023학년도 정시모집에서 학교생활기록부 내용을 반영하는 '교과평가'를 도입한다고 발표하자 단체들이 나섰다. 당시 교육부는 수시 불공정 논란이 일자 서울대 등 16개 대학에 정시 40% 확대를 압박했다. 그러자 서울대는 '교과평가'를 끼워 넣어 우회적으로 저항했고 이에 학부모단체가 발끈한 것이다.

#3. 2020년 2월 17일 세종시 교육부 청사 앞. 학부모단체 회원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사회주의 교육 STOP'이라는 문구가 쓰인 푯말을 들었다. 학부모들은 "학생 교과서 내용이 지나치게 편향돼 있다"며 시정을 촉구했다.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비판이나 불균형 역사관이 아이들 교과서에 실렸다고 항의했다.

#4. 2019년 9월 17일 서울시교육청. 조희연 교육감이 자사고 폐지 공론화를 제안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자사고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조 교육감이 반발이 거세지자 공론화 카드를 꺼내들어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이었다. 학부모단체들은 "자사고 폐지를 관철하려는 꼼수와 편법에 불과하다"며 거칠게 항의했다.

교권침해에 대한 학부모단체의 자성은 없나

이 4가지 사례는 학부모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교육에 관심을 보이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일화다. 학부모들은 입시는 물론 교원정년단축 교원평가 학생인권조례 역사교과서 자사고 등 다양한 이슈에 목소리를 높였다. 진보와 보수 단체의 입장이 엇갈려 대립하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교육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목소리였다. 학부모의 외침은 정부의 교육 독주에 제동을 걸었고 교육발전의 소중한 자산이 됐다.

그런데 여름을 달궜던 교권 문제에 대한 학부모단체의 행보는 다른 때와는 다르다. 물론 일부 단체가 성명을 내기는 했어도 원론적인 주장일 뿐 통렬한 징비록은 보이지 않는다.

교권침해는 요인이 복합적이지만 기본적으로는 교사에 대한 학부모의 '마음 실종'이 가장 큰 원인이다. 교권침해의 당사자는 대부분 학부모다. 개인의 일탈로 넘길 일이 아니다. "'내 아이 먼저' 이기주의, 학교는 졸업장을 따는 장소, 입시준비는 학원에서"라는 유령이 학부모 마음속에 도사리니 선생님을 가볍게 여기는 게 아닐까. 학원강사가 제 자식 공부 안 한다고 혼내면 고마워하고, 교사가 혼내면 항의하는 세태가 정상일까.

교권보호는 법과 규정보다 학부모 마음이 더 중요하다. 제 자식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데 남의 자식을 가르치는 일은 얼마나 힘들지를 숙고해봐야 한다. 학부모 한명 한명이 가입해 학부모단체가 생긴 것인데 단체의 침묵이 너무 오래 간다. 침묵은 금이 아니다. 침묵은 비겁하다. 학부모단체들은 스스로 죽비를 내리쳐야 한다. '마음 실종'에 대한 자성의 성명을 내고 선생님들을 다독여야 한다. 그래야 교권보호를 위한 새 출발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