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라질 위기에 놓인 장애 아동 성 인권 교육

2023-09-26 11:24:16 게재
이현숙 탁틴내일 상임대표

2011년 광주 인화학교 청각장애아동 성폭력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도가니'가 개봉되었다. 영화를 본 인화학교 졸업생들이 영화에 나온 장면을 실제로 본 적이 있다고 증언하면서 경찰 수사 과정에서 확인된 피해자만 최소 30명에 이르렀다. 가해자는 법인 이사장의 장남인 인화학교 교장을 포함하여 13명에 달했다.

'도가니'를 통해 청각장애아동에게 가해진 성폭력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고 여론은 가해자에 대한 엄벌과 재발방지 대책을 원했다. 당시 정부도 이에 부응하여 이른바 '도가니 대책'이라는 장애인 대상 성폭력 범죄 핵심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대책 중 하나가 '장애 아동·청소년 대상 성인권 교육'이다.

피해자를 지원하다보면 발달 장애나 경계선 지능인 아동이 성착취 피해를 입는 경우를 자주 접한다. 장애가 있으면 사람들과 교류하기 어렵고 동정의 대상이 아닌 동등한 사람으로 존중받은 경험이 적다. 장애인의 사랑을 금기시하는 사회분위기에서 연애를 하는 것도 어렵다. 외롭게 지내는 장애 아동은 상냥한 모습으로 접근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갖기 쉽고 경계심이 없이 성적학대에 길들여질 수도 있다. 피해라고 인지하지 못하고 가해자와 분리되길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이동하고 원하는 것을 표현하고 문화를 향유할 수 있으며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권리가 있다. 이러한 기본 권리를 실현하려면 권리가 무엇인지 알고 존엄성을 훼손하거나 권리를 침해하는 상황을 인지하고 그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래야만 가해자의 행위가 사랑인지 폭력인지 구분하고 성폭력 피해를 인지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더불어 타인의 표현을 이해하고 거절을 수용하고 멈추는 등 타인과 소통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장애아동·청소년 성인권 교육은 이러한 내용을 포괄적으로 담아 장애의 특성을 고려해 반복적으로 학습해 체득하는 것을 돕는 교육이다. 2012년 교육프로그램과 교재를 개발한 후 2013년에 전국 17개 시도광역시에서 교육을 시작했다. 교육 수요가 많아 지자체 차원에서라도 예산을 증액할 것인지 고민하는 등 2024년 사업을 계획하던 중 여성가족부는 '장애 아동·청소년 성인권 교육' 예산을 전액 삭감해 2024년부터는 사업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학교성인권과 장애아동·청소년 성인권 교육에 배정된 2023년 예산은 국고 기준 5억5600만원으로 전국 규모의 정부 사업으로는 예산이 많지 않다. 장애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적 착취와 학대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오히려 예산 증액이 필요한 상황이다.

여성가족부가 예산을 삭감한 이유는 보건복지부에서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유사성을 해소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장애아동청소년 성인권 교육 사업은 시각, 청각, 지체, 중복장애 외에도 경계선 지능을 지닌 미등록 장애인, 특수학급 대상 학생도 포함하고 있지만 보건복지부 사업은 발달장애 중심이라는 점에서 예산 삭감의 정당성을 찾기 어렵다.

적은 예산이지만 10년 넘게 진행된 성인권 교육을 통해 전문 인력이 성장했고 교육 내용도 발전했다. 지금까지의 성과를 바탕으로 장애 아동·청소년 교육의 질을 높이는데도 기여할 부분이 많기에 장애 아동·청소년 성인권 교육이 중단돼서는 안 된다.

장애 아동과 청소년이 다양한 장애 특성을 고려한 교육에 접근할 수 있도록 여성가족부는 장애 아동·청소년 성인권 교육 예산 삭감을 재고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