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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화되는 농촌, 주목받는 갈등관리

2023-10-05 12:01:32 게재
하동현 전북대 행정학과 교수, 공공갈등과 지역혁신연구소 소장

#1. 사업이 본래의 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되고 있다. 공동시설물을 사유화해 전용한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었는지도 불명확하다. 사업으로 얻은 이익을 좀 더 지역에 환원해야 한다.

#2. 상당수 지역민들이 사업 진행에 동참했다. 초기 목표로 했던 사업 추진에 어려운 부분도 있어 총회 등 정당한 주민 동의 절차를 거쳐 사업을 변경했다. 우리는 지역의 이익환원에도 열중하고 있다. 일부 주민들의 지나친 텃세로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두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이 현장은 바로 모 농촌마을이다. 약 80여가구 100여명의 주민들이 사는 곳으로 65세 이상 인구가 50% 이상인 초고령화 마을, 이른바 지방소멸 위험지역이다.

얼핏 생각하기에 농촌마을은 동질적인 공동체로 생각하기 쉽다. 과연 그러할까? 현재 우리나라 농촌의 구성원은 매우 이질화되고 있다. 일평생 살아왔던 원주민들도 있지만 젊은 시절 떠났다가 귀향하는 리턴족들도 늘어났다. 도시를 벗어나 주거 농업 제조업 등 각양각색의 목적으로 문을 두드리는 귀촌인들도 보인다. 청년부터 중장년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최근에는 결혼이나 구직으로 건너온 다문화 이주민들도 눈에 띈다. 거주하지 않지만 유권자인 주민도 있고, 거주하지만 등록되지 않은 생활인구 류도 등장했다.

다중적이고 복합적 성격의 농촌 갈등

흔히 농촌의 갈등구조를 원주민 대 귀촌인들 간의 이원적 충돌로 바라본다. 그러나 실상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위 사례의 경우 운영법인과 이에 비판적인 마을회 중심의 일부 주민들이 대립하는 구도다. 운영법인은 정부 보조금을 획득해 지역공모사업을 전개한다. 사업방식에 비판적인 그룹은 대체로 고향으로 돌아온 귀촌인들이다. 운영법인에 우호적인 주민그룹도 있는데 사업을 함께 기획했거나 동참하는 일부 원주민들이다. 물론 상황을 관망하는 주민들이 다수다.

농촌에서의 갈등은 다중적이고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다. 주요 쟁점은 마을발전기금, 임대료, 이익환원 등을 둘러싼 이해관계의 충돌이다. 동시에 근저에는 관계갈등이 흐른다. 좁은 공간에서 밀접한 관계를 가져왔던 이들 간에 빚어진 오해와 불신이다. 두가지 성격이 혼재되면서 갈등으로 전환되는데 그 비중과 강도가 단계별로 다르게 진행될 수 있다.

심각한 갈등으로 증폭될 때까지는 완화되거나 해결될 수 있는 기회들이 존재한다. 그것을 놓치게 되면서 갈등이 격화되고 미궁에 빠져들게 된다. 논의할 쟁점을 도출하지 못하거나, 입장변화를 인지하지 못해 상대에 대한 불신을 더욱 키우거나, 고조된 감정으로 표현이 과격해지고 이것이 상대를 자극하거나, 제3자의 미숙한 개입으로 대립 강도를 높이거나 하는 상황이 연출된다. 이를 예방하거나 조정하는 것이 갈등관리의 출발점이다.

갈등당사자들은 상이한 인식체계로 사안을 바라본다. 당사자들이 상대방을 인정하고 협의하면서 해결하는 역량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촉진자·조정자가 필요하게 된다. 농촌마을은 대체로 연령대가 높고 소통 기술에 익숙하지 않거나 소통 자체에 적극적이지 않은 경향이 있다. 그런 만큼 행정의 대응능력과 지원체계가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일부 지자체들은 갈등관리시스템을 조직 내부에 구축해 체계적인 갈등예방과 조정, 그리고 대응 역량의 제고에 힘써 왔다. 갈등진단으로 추진사업의 갈등 잠재성을 파악하고 대응계획을 수립했다. 갈등이 발생했을 때 외부와 연계해 맞춤형 갈등조정에 착수하는 조직적인 대응체계다.

지방소멸대응 예산이 갈등 부추길 수도

지금까지 농촌의 갈등문제는 갈등관리 측면에서 관심도가 낮았다. 대규모 비선호시설 공공시설의 설치나 이전 등이 주 대상이었고 최근에는 태양광 해상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관련 갈등이 상위 목록을 차지하고 있다. 살펴보았듯이 농촌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복잡하고 복합적이며 공동체를 파괴시킬 수 있는 위험성이 잠재되어 있다.

앞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지방소멸대응기금 등 농어촌살리기를 위한 상당한 예산이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예산이 오히려 지역의 갈등을 부추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갈등관리의 본질인 사전예방의 방편을 마련해 두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