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모호한 미국, 강경한 이스라엘

2023-10-23 10:53:07 게재

블링컨 "하마스와 공존불가" … 인질 석방 노력 계속, 확전은 부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의 무력 충돌이 격화하는 가운데 미국의 태도가 잡 미묘하다. 표면적으로는 이스라엘의 무리한 공격이나 대응을 우려하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뜯어말리는 분위기는 아니다. 하마스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과 공격은 묵인하는 대신 중동전역으로 전선이 확대되는 것은 막겠다는 태도로 읽힌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22일(현지시간) 발언은 이런 기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1일 가자지구 칸 유니스에서 한 팔레스타인 소녀가 이스라엘 공습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한 남성이 어린아이를 안고 나오자 안타까워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블링컨 장관은 이날 NBC 방송에 출연해 "이스라엘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으며, 어떤 나라도 그 같은 상태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하마스가 가자를 통치하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동시에 이스라엘은 가자를 스스로 통치할 의향도 전혀 없다"며 "그들은 어떤 조건도 없이 수십 년 전에 가자에서 나왔다"고 덧붙였다.

블링컨 장관은 그러면서 "다만 이스라엘은 끔찍한 테러 공격을 당한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라며 "그런 차원에서 하마스가 이 같은 공격을 자행하지 않으면서 이스라엘의 통치로 돌아가지도 않는 해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란의 개입 가능성에 대해서는 "우려하고 있다"며 "이란의 대리인들의 공격에 의해 갈등이 격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우리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필요하다면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헤즈볼라와 이란에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 확전 자제를 촉구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라고 덧붙였다.

왜 임시 휴전을 제안하지 않느냐는 질문엔 "이스라엘은 그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분명히 하기 위해 모든 일을 해야 한다"며 "현 상태를 동결하면 똑같은 일이 미래에 되풀이될 수 있으며, 어느 나라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현재 하마스의 공격 이후 실종 상태인 10명의 미국인 가운데 인질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엔 "알 수 없다"며 "상당수가 인질일 것으로 보지만, 정확한 상황을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추가 인질 석방과 인도적 지원에 따른 시간을 벌기 위해 이스라엘 지상군의 가자 진입을 만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CNN은 이날 복수의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 정부가 인질 협상에서 진전을 이유로 이스라엘 정부에 지상군 투입 연기를 압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통화에서 구호 물품을 실은 차량이 가자지구에 들어간 것을 환영했으며, 두 정상은 가자지구에 중요한 지원이 계속될 것이라는 입장을 확인했다고 백악관이 밝혔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하마스에 인질로 잡혀있던 미국인 2명 석방과 관련한 이스라엘의 지원에 감사를 표했다. 앞서 하마스는 지난 20일 인도주의적 이유를 들어 미국인 모녀 2명을 석방했다.

현재 카타르가 중재 중인 인질 협상에서 하마스는 가자 지구에 대한 충분한 인도주의적 지원과 인질 석방을 위한 임시 휴전을 요청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가자지구 인도주의 위기는 국제사회의 큰 관심이 쏠려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지상군의 무리한 투입은 미국에게도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전날 기자들과 만나 지상군 투입 연기와 관련 "이스라엘과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질 석방과 인도주의 위기를 외면하지는 않겠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미국은 언제까지나 이스라엘을 만류할 수는 없다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

블링컨 장관은 "이스라엘은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뿐 아니라 의무가 있다"며 "우리는 그들의 결정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우리는 모든 인질의 석방을 위해 매 순간 노력하고 있지만, 이는 이스라엘이 결정할 문제"라며 "우리는 최선의 조언을 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스라엘을 지지 방문한 린지 그레이엄 등 상원의원 10명은 텔아비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란을 향해 헤즈볼라의 이스라엘 공격을 부추기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레이엄 의원은 "우리가 관심을 갖기 때문에 상원(100명)의 10%가 이스라엘에 온 것"이라며 "내가 더 큰 비행기가 있었다면 상원 전체를 데려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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