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대책 부족한 '대심도 사업' 도마에

2023-10-24 10:50:44 게재

지하시설 급증, 새로운 재난 가능성

기존 재난대책으론 피해막기 어려워

지하 40m 이상 대심도에서 벌어지는 사고가 새로운 재난 유형으로 부상했다. 홍수 예방, 도로 지하화 등 도시 재구조화에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지만 뚜렷한 안전 계획이 수립돼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울시 부시장들이 23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위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2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각종 대심도 사업과 시설에 대한 재난 안전 문제가 떠올랐다. 대심도란 지표면에서 40m 이상 깊이에 있는 지하공간을 말한다. 상하수도 통신 전력 등 생활기반시설, 지하도 지하차도 지하철 등 교통 관련 시설들이 모두 대심도로 만들어질 수 있다.

문제는 화재 수해 등 사고가 대심도에서 발생했을 때다.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 김병기(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동작구 신안산선 대림삼거리역 공사를 예로 들었다. 해당역은 대심도 공법으로 건설될 예정이며 역사의 깊이가 60m에 달한다. 김 의원에 따르면 평소엔 엘리베이터가 주요 이동수단이지만 화재 시에는 작동이 중지돼 승객들이 계단으로 탈출해야 한다. 장애인과 노약자는 탈출할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

안전 설계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김 의원은 지적했다. 김 의원은 "대림삼거리역 설계도를 소방 관계자들과 분석했다"면서 "말도 안되는 설계도면이며 화재 시 소방인력 투입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의 설계도 분석에 따르면 해당역은 승강장에서 외부로 탈출 가능한 계단이 1개, 출입구가 2개 뿐이다. 사고가 나면 외부에서 안으로 진입하려는 소방대원과 탈출하려는 시민들의 동선이 겹친다. 좁은 계단(1.5m)으로 대원들과 시민들이 엉키면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대심도 시설에 대한 안전대책은 앞선 행정안전위원회 서울시 국감에서도 쟁점이 됐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오영환(민주당) 의원은 지난 16일 국감에서 홍수 대비에 취약한 대심도 시설 안전 문제를 집중 질의했다. 오 의원에 따르면 국내 호우 양상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고 있다. 예측범위를 벗어난 집중호우, 국지성 극한 호우 등 관측 이래 가장 많은 비가 최근 쏟아지고 있다.

1시간에 누적 강수량이 50㎜ 이상, 3시간 누적 강수량 90㎜ 이상인 때를 말하는 극한 호우 횟수도 2013년 48건 2021년 76건, 지난해 108건으로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올 여름 오송 지하차도 사고에서 확인했듯 지하도 관련 사고는 해마다 늘고 있다.

오 의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우리나라 지하차도 관련 사고는 279건의 침수로 17명이 사망하고 10명의 부상자와 차량 55대가 침수됐다. 지하차도와 지하도 지하터널은 갈수록 늘어난다. 이 또한 기존 시설들과 중복을 피하고 더 충분한 규모를 확보하기 위해 지하 깊숙히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내일신문 취재 결과 서울에는 총 163개의 지하차도가 있다. 정부와 서울시는 각종 도로와 시설을 지하화하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오 의원은 "현재 추진 중인 서울시 지하차도 중 영동대로 복합화능센터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등 대규모 시설들이 특히 우려된다"며 "시간당 처리 가능한 강우량인 방재성능목표를 극한 호우 양상, 유동 인구 등을 감안해 새롭게 설정하고 대심도 외에 고층건축물, 대규모 아파트 단지 건축시 빗물저류조 설치를 의무화 하는 등 차원을 달리한 재난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이제형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