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조성일 르네방재정책연구원장

"행정·사법·입법부 모두 제 역할 못해 국민 불안"

2023-10-27 11:16:21 게재

예측·수사·입법 모두 부실

사회재난수습 매뉴얼 필요

"행정은 재난대비에 실패했고 사법부는 수사와 사법처리를 미적댔고 국회는 법개정 골든타임을 정쟁 때문에 허비했습니다. 입법 사법 행정 모두가 제 역할을 못하니 국민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성일(사진) 르네방재정책연구원장은 "책임소재 규명, 제대로 된 대책과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이 만들어지지 않으니 재난대응이 진일보하지 못하고 눈 앞에 발생한 재난 막기에 급급한 악순환이 반복된다"면서 "그 사이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가 이뤄지고 상처 치유는 미뤄지며 또다른 재난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제 역할을 못했다. 올해 초 수십페이지에 달하는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을 내놨지만 현장 적용은 요원하다. 이를 실행할 법개정 사항들은 정쟁에 휘말린 국회에서 멈춰있다. 대표적 사례가 신설하기로 했던 '신종재난 위험요소 발굴센터'다. 종합대책에서 제일 앞에 내세운 '새로운 유형의 재난 대비'에 기여할 것이란 기대를 모았지만 논의조차 안되고 있다.

조 원장은 정부가 내놓은 종합대책 가운데 해외 사례 발굴·대비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태원참사 1년전 이스라엘에선 성지순례 도중 좁은 산길에서 수백명이 압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를 유심히 관찰했다면 우리도 이태원참사 대비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조 원장에 따르면 지난 9월 영국에선 2학기 개학을 앞두고 100여개 학교가 폐쇄되는 일이 생겼다. 학교 건축에 쓰인 자재(RAAC. 경량 콘크리트) 문제가 생겨 붕괴 위험이 있다는 긴급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조 원장은 "비록 국내에선 관련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ALC 라는 같은 종류의 경량콘크리트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국내 상황은 어떤지 들여다봐야 하는데 정부 어느 기관에서도 이 같은 위험 사례를 점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 원장은 사회적 재난을 수습하고 치유하는 일련의 절차를 매뉴얼화하는 문제도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개인이 사망하면 절차에 따라 장례를 치르고 빈소를 차려 조의를 전하는 것처럼 재난을 당한 이들과 유가족에 대한 처우 및 국민들의 위로 방법 등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재난 수습이 정쟁으로 비화하고 유가족들이 특정 정치세력과 결탁했다고 매도되는 등 2차 가해를 받는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는 게 조 원장 제안이다. 재난은 피해자와 유가족은 물론 국민들에게도 상처를 남긴다. 매뉴얼화된 사회적 재난 수습 절차는 국민적 위로와 치유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조 원장은 "놀러갔다 사고 난 애들을 국가가 왜 돌보냐는 조롱이 나오는 데는 제대로 된 사고 수습과 진심어린 사과, 피해자 보호에 소극적이었던 국가와 지자체에도 책임이 있다"며 "놀러갔던 잠을 자던 길을 걷던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국민들은 안전한 일상을 보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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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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