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측정과정 빠진 설익은 서울편입론

2023-11-08 11:01:29 게재
오스트리아 출생의 미국인 작가이자 경영 컨설턴트, 경영학의 창시자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측정할 수 없다면 관리할 수 없다(If you can't measure it, you can't manage it)"라는 말을 남겼다. 무언가를 관리하고 개선하려면 정확한 측정이 우선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최근 서울시 및 정부가 자주 벌이는 각종 전수조사는 일종의 측정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빈대 발생에 대한 서울시의 대대적 전수조사도 그 일환이다. 빈대가 어디서 얼마나 발생했는지 측정할 수 있어야 대책과 소요예산 가용인원 등의 추산이 가능하다.

숫자뿐 아니다. 안전분야에서도 측정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지난해 10.29 이태원참사가 대표적이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던 핼러윈축제 군중밀집이 측정되지 않았다. 측정해야 할 사람들은 자리를 비웠고 측정의 최일선인 지자체 상황실은 외부 용역업체에 맡겨졌으며 측정도구인 CCTV는 엉뚱한 곳을 비췄다. 측정의 실패는 출동과 비상대응을 골든타임에서 멀어지게 했고 그 결과 서울 한복판에서 백수십명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사각지대 발굴도 측정의 영역이다. 관악구 산길에서 출근하던 초등학교 선생님이 무차별 범죄에 노출돼 잔인한 구타와 성폭행을 당하는 동안 이를 감시할 측정의 역할은 작동하지 않았다.

김포시에서 출발한 서울편입론이 정치권은 물론 전국을 달구고 있다. 제대로 된 근거도, 편입에 따른 주민 의견도 묻지 않았다. 그냥 '묻지마 편입' 요구다. 오세훈 시장은 김포시장에 이어 구리시장과도 면담이 예정돼 있다. 이러다 인접 12개 도시 시장이 모두 오 시장을 찾아올지 모른다. 설익은 편입론에 이은 논란들이 뒤늦게 봇물을 이룰 것이다.

다행히 오 시장은 총선 이후까지 내다보고 긴 호흡으로 문제를 살펴보자고 했다. 여당 차기 대선주자인 오 시장 입장에서 당론을 외면할 순 없을 터다. 오 시장은 김포시와 서울시의 공동연구반 구성, 앞으로 있을 추가 편입시도에 대비해 서울시 자체 TF를 만들겠다고도 했다.

편입론도 측정이 필수다. 김포시와 서울시, 수도권엔 각각 어떤 영향이 있는지, 국가경쟁력과 국토균형발전 차원에서 짚어볼 대목은 없는지 면밀한 '측정'이 필요하다. 같은 여당 안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측정되지 않은 편입론은 관리될 수 없고 관리되지 않으면 후유증과 함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국민의힘 한 수도권 당협위원장의 "여당 소속 지자체장들의 강한 발언 수위를 보고 깜짝 놀랐다. 레임덕 전조가 아닌가 싶을 정도"라는 귀엣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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