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호 사무총장, 제2의 김은경 되나

2023-11-08 11:12:40 게재

전 정부 인사 '물갈이' 총대, 직권남용 피소 … 공수처 수사 본격화하자 감사원 조직적 대응

김진욱, 거듭된 출석 불응에 "법이 허용한 수단 사용" … 임기 2달 남겨 수사 한계 우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출석조사를 놓고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유 사무총장은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표적감사 의혹으로 고발을 당해 공수처 수사 대상에 올랐다. 유 사무총장이 공수처의 거듭된 출석요구에 불응하면서 강제수사 가능성까지 제기된 상황. 유 사무총장이 전정부 인사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실형을 선고받은 문재인정부 초대 환경부 장관 김은경 장관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 공수처에 고발│더불어민주당 '감사원 정치감사 대응TF' 최강욱(오른쪽부터), 박주민, 김승원 의원이 지난 7월 13일 정부과천청사 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을 고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8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는 유 사무총장에게 이번 주중 출석해 조사 받을 것을 통보했지만 유 사무총장은 응하지 않고 있다. 공수처가 유 사무총장에게 출석을 요구한 것은 이번이 다섯 번째다. 공수처는 지난달 16일과 24일, 31일, 그리고 이달 초 출석해 조사 받을 것을 통보했지만 유 사무총장은 국회 국정감사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 등을 이유로 출석하지 않았다.

앞서 더불어민주당과 전 전 위원장은 지난해 감사원이 전 전 위원장을 몰아내기 위해 '표적 감사'를 벌이고 있다며 최재해 감사원장과 함께 유 사무총장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박근혜정부에서 임명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의 명단을 만들어 사퇴를 종용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로 2018년 당시 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으로부터 고발당한 김 전 환경부 장관과 유사하다. 김 전 장관측은 '블랙리스트가 아닌 통상 업무의 일환으로 진행해 온 체크리스트'였고 '이전 정부에서도 관행적으로 이뤄져왔던 점' 등을 들어 무죄를 주장했지만 법원은 직권남용 혐의를 인정해 징역 2년을 확정 판결한 바 있다.

공수처가 지난 9월 감사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인데 이어 유 사무총장과 직원들을 상대로 소환조사에 나서는 등 수사를 본격화하자 감사원도 조직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이다.

감사원은 7일 유 사무총장측 변호인단의 입장이 담긴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감사원이 감사원법과 개원 이래 75년간의 운영 기조를 기반으로 정당하게 권익위 감사를 실시했다고 본다"며 "그러나 공수처는 기본적 사실관계를 일방에게만 확인하거나 감사원의 확립된 업무 관행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보이는 상황에서 조사하고 있다"고 공수처의 수사를 비판했다. 또 "공수처의 출석요구는 피의자들 및 변호인과 어떠한 협의를 거치지 않은 일방적인 통보"라며 공수처가 사건사무규칙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의 권위와 신뢰를 심히 훼손하며 정상적인 업무추진에도 큰 지장을 초래하고 있어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공수처는 감사원이야말로 일방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수사기관은 형법과 형사소송법에 따라 수사하는 것이지 감사원의 관행까지 고려하는 게 아니다"라며 "(출석 일정) 협의가 없었다는 것도 그 분들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고 말했다.

유 사무총장의 거듭된 소환 불응에 공수처는 강제수사 가능성까지 시사하고 나섰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같은 날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공수처가 다섯 번째 부른 유 사무총장이 이번에도 안 나오면 체포영장을 청구하겠느냐"는 민주당 조응천 의원 질의에 "법이 허용한 수단을 사용하겠다"며 적극적인 수사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그동안 공수처의 수사 속도를 보면 제대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실제 민주당이 감사원의 표적 감사 의혹을 고발한 것은 지난해 8월이었지만 공수처가 강제수사에 착수한 것은 1년이 지난 올해 9월에서였다. 게다가 김 처장의 임기는 내년 1월 20일까지로 불과 두달여밖에 남지 않았다.

이와 관련 김 처장은 예결위에서 "임기 만료 전 진상규명하고 떠날 것인가"라는 김회재 민주당 의원 질문에 "그럴 계획"이라고 답했다.

구본홍 김형선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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