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 공수처, 구속영장 '4전4패'

2023-11-09 13:20:16 게재

10억대 뇌물 혐의 감사원 간부 '기각'

'김학의 봐주기 의혹' 수사팀 불기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10억원대 뇌물 수수 혐의를 받는 감사원 간부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20211월 공수처가 출범한 이후 네 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모두 법원에서 기각된 것.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봐주기 수사' 의혹으로 검찰 수사팀을 고발한 사건은 공소시효에 쫓겨 불기소 처분으로 결론이 났다. 내년 1월이면 공수처가 출범한 지 3년이 되지만 여전히 무기력한 모습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이민수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9일 건설업자로부터 공사를 수주하는 방식으로 10억원대 뇌물을 수수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를 받는 감사원 3급 과장 김 모씨에 대해 공수처가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부장판사는 "피의자의 지위, 관련 회사와의 관계, 공사도급 계약 체결 경위 등에 비춰볼 때 직무와 관련해 피의자의 개입으로 공사 계약이 체결됐다고 볼 만한 상당한 의심이 들기는 한다"면서도 "상당수의 공사 부분에 개입했음을 인정할 직접 증거가 충분히 확보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현출된 증거들에 대해서는 반대신문권의 보장이 필요하다고 보이는 점, 뇌물 액수 산정에 있어 사실 내지 법률적 측면에서 다툼의 여지가 있는 점, 피의자에게 반박자료 제출을 위한 충분한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며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이 사건은 감사원이 김씨를 감찰하는 과정에서 비위 정황을 포착, 지난 202110월 공수처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시작됐다. 수사의뢰를 받은 공수처는 지난해 2월 김씨를 정식 입건하고 두 차례에 걸쳐 감사원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를 진행해왔다. 공수처는 김씨가 지인 명의로 회사를 설립한 뒤 건설사들로부터 공사를 수주하는 방식으로 10억원대 뇌물을 받았다고 본다.
하지만 법원은 공수처의 수사가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다.
이로써 공수처가 출범한 이후 네 차례 청구한 구속영장은 모두 기각됐다.
공수처는 2021'고발사주' 의혹으로 손준성 검사장(당시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에 대해 두 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모두 기각돼 결국 불구속 기소했다. 올해 8월에는 수사 민원 해결을 대가로 수억원대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서울경찰청 소속 김 모 경무관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바 있다.
아직까지 공수처가 청구한 체포영장이 발부된 사례도 없다. 공수처는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표적감사 의혹과 관련해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네 차례나 출석요구에 불응했지만 체포영장을 청구하지 않은 채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
차규근 전 법무부 출입국관리본부장이 특수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한 감학의 전 차관 수사담당 전현직 검사 3명에 대해선 기소하지 못한 채 수사를 종결했다.
공수처는 공소시효를 이틀 앞둔 8일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검찰 수사기록 검토 결과 피의자들이 김 전 차관의 특가법 위반 혐의 사실을 명백히 인식하고도 의도적으로 직무를 유기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김 전 차관 수사 담당 전·현직 검사들에 대해 불기소 처분했다고 밝혔다.
앞서 김 전 차관은 2013년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된 직후 건설업자 윤중천씨로부터 별장에서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경찰은 수사를 진행해 일부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지만 당시 검찰 수사팀은 윤씨를 구속기소하면서도 김 전 차관에 대해선 무혐의 처분했다. 이후 검찰은 2019년 재수사를 통해 김 전 차관을 특가법상 뇌물 혐의 등으로 기소했지만 공소시효 만료 등의 이유로 김 전 차관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자 김 전 차관 재수사 과정에서 오히려 불법 출금금지 혐의로 기소된 차 전 본부장은 지난 7월 김 전 차관 사건의 1차 수사팀이 범죄사실을 알고도 무혐의 처분했다며 공수처에 고발했다.
공수처는 "2013년 수사 당시 상황과 2019년 재수사 당시 상황은 수사 착수배경, 수사의 주된 방향, 수사 여건, 수사 규모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피의자들이 김 전 차관의 뇌물, 윤중천의 알선수재 혐의를 명백히 인식해 수사를 개시할 수 있을 정도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고 불기소 처분 이유를 설명했다
공수처는 그러면서 공소시효 4개월 전 고발이 접수됐다는 시간적 한계에도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공수처가 공소시효에 쫓겨 실체를 충분히 규명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공수처가 7월 고발장을 접수한 후 기초수사를 거쳐 압수수색을 통해 서울중앙지검이 보관하던 약 10만 페이지(229) 분량의 수사기록을 확보한 것은 9월 중순에서였다. 입수기록을 검토·분석한 공수처는 지난달 중순 피의자들에게 출석을 요구했지만 2013년 당시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이었던 윤재필 변호사만 출석조사를 받았을 뿐 현직 검사 2명은 출석에 응하지 않았다. 공수처가 보낸 서면질의에도 답변하지 않았다.
공수처의 불기소 처분이 나오자 차 전 본부장은 자신의 SNS"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었으나 역시나 였다"며 공수처에 대한 실망감을 나타냈다.
차 전 본부장은 9일 오후 법원에 재정신청서를 낼 예정이다. 재정신청은 수사기관이 고소·고발 사건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렸을 때 법원에 그 처분의 타당성을 가려달라고 신청하는 제도다. 관할 고등법원이 재정신청을 인용하면 공수처는 공소를 제기해야 한다.
공수처 관계자는 감사원 간부 구속영장 기각과 관련해 "기각 사유를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사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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