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반지하대책, 목표·방식 모두 바꿔야

2023-11-14 10:34:18 게재

불편하지만 현 거주 만족 90% 달해

연세대 연구팀 주거실태 조사 결과

"차에서 내려 휠체어를 타고 집으로 바로 들어가려면 반지하만큼 편리한 구조가 없습니다. 침수는 걱정되지만 계속 반지하에 살 겁니다."


서울시 반지하 대책의 목표와 방식을 전면 재점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실제 거주자 목소리와 현장 상황을 반영, 전향적으로 정책을 전환하지 않으면 엉뚱한 목표를 붙잡고 실효성 없는 정책을 되풀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14일 내일신문 취재에 따르면 연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실내건축학과 연구팀은 약 1년에 걸쳐 서울 반지하 가구를 대상으로 주거실태 조사를 진행했다. 4500가구를 표본으로 추출했고 이 가운데 300여가구와는 심층면접까지 진행했다.

조사 결과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많은 차이가 발견됐다. 공공의 일반적 예측과 달리 현 주거환경에 만족하며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답변이 전 분야에 걸쳐 90%에 달했다. 이사를 가야 하지만 목돈이 없어서 가지 못한다는 응답도 10%가 되지 않았다. 침수나 부족한 채광, 습기 등으로 인한 일부 건강 문제가 우려된다는 답변이 있었지만 현 거주지를 포기하고 이사를 갈 정도는 아니었다.

서울시는 현 반지하 거주자들에게 월 20만원의 임대료를 지원하거나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주시키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번 조사에서도 여건이 된다면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할 의향이 있다는 답변이 76%로 높게 나왔다. 하지만 조건이 까다로웠다.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희망하는 이유를 물어보니 '현 거주지보다 주거비 저렴(57.4%)' '오래 거주할 수 있다는 안정성(55.3%)' '현재 반지하보다 향상된 시설(45.9%)' 등이 우선 꼽혔다. 이 같은 응답에 대해 연구팀은 사실상 이주 의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판단했다. 현 거주지보다 저렴한 임대료나 향상된 시설은 공공지원만으로는 실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주 가능 지역과 범위을 묻는 질문에도 비슷한 답변이 이어진다. 현재 거주하는 구의 주변까지 가능하다'는 답변이 42.3%, 현재 거주하는 구와 무관하게 서울이면 가능하다는 답이 35.3%에 달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 근처 아니면 서울을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다.

연구팀 관계자는 "직장이나 자녀 학교 등 자신의 생활 반경을 감안할 때 현 거주지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며 "더 좋은 곳에 가면 좋지만 가장 현실적인 선택을 한건데 무조건 이사하라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대상 좁히고 지원 집중해야 = 반지하 대책의 대상을 좁히고 이들에게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8일 서울시 주거포럼에 참가한 한 관계자는 "반지하 22만호를 모두 없앤다는 접근법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과도하고 비현실적인 목표를 바꾸고 실제 침수 우려가 있는 가구나 장애인·거동 불편자 등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정책 전환이 요구된다"면서 "실제 본인이 원하거나 이주가 시급한 가구는 전체 반지하 가구의 10%가 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과도한 목표가 역량을 분산시켜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필요한 지원이 늦춰지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라며 "이는 결국 정책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라도 정책 전환을 선언하고 반지하 해법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반지하 대책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22만호 퇴출'을 전제로 한 목표 달성률 부족, 이를 위한 매입 실적 부족 등 관련 지표가 오세훈 시장에게 계속 꼬리표처럼 따라 다닐 것"이라며 "한번 꺼낸 발언을 수정하기 어렵겠지만 문제 있는 정책설계를 신속히 포기하고 새로운 해법으로 나아가는 것도 용기있는 정치인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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