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반지하대책, 목표·방식 모두 바꿔야
불편하지만 현 거주 만족 90% 달해
연세대 연구팀 주거실태 조사 결과
서울시 반지하 대책의 목표와 방식을 전면 재점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실제 거주자 목소리와 현장 상황을 반영, 전향적으로 정책을 전환하지 않으면 엉뚱한 목표를 붙잡고 실효성 없는 정책을 되풀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14일 내일신문 취재에 따르면 연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실내건축학과 연구팀은 약 1년에 걸쳐 서울 반지하 가구를 대상으로 주거실태 조사를 진행했다. 4500가구를 표본으로 추출했고 이 가운데 300여가구와는 심층면접까지 진행했다.
조사 결과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많은 차이가 발견됐다. 공공의 일반적 예측과 달리 현 주거환경에 만족하며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답변이 전 분야에 걸쳐 90%에 달했다. 이사를 가야 하지만 목돈이 없어서 가지 못한다는 응답도 10%가 되지 않았다. 침수나 부족한 채광, 습기 등으로 인한 일부 건강 문제가 우려된다는 답변이 있었지만 현 거주지를 포기하고 이사를 갈 정도는 아니었다.
서울시는 현 반지하 거주자들에게 월 20만원의 임대료를 지원하거나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주시키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번 조사에서도 여건이 된다면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할 의향이 있다는 답변이 76%로 높게 나왔다. 하지만 조건이 까다로웠다.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희망하는 이유를 물어보니 '현 거주지보다 주거비 저렴(57.4%)' '오래 거주할 수 있다는 안정성(55.3%)' '현재 반지하보다 향상된 시설(45.9%)' 등이 우선 꼽혔다. 이 같은 응답에 대해 연구팀은 사실상 이주 의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판단했다. 현 거주지보다 저렴한 임대료나 향상된 시설은 공공지원만으로는 실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주 가능 지역과 범위을 묻는 질문에도 비슷한 답변이 이어진다. 현재 거주하는 구의 주변까지 가능하다'는 답변이 42.3%, 현재 거주하는 구와 무관하게 서울이면 가능하다는 답이 35.3%에 달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 근처 아니면 서울을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다.
연구팀 관계자는 "직장이나 자녀 학교 등 자신의 생활 반경을 감안할 때 현 거주지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며 "더 좋은 곳에 가면 좋지만 가장 현실적인 선택을 한건데 무조건 이사하라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대상 좁히고 지원 집중해야 = 반지하 대책의 대상을 좁히고 이들에게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8일 서울시 주거포럼에 참가한 한 관계자는 "반지하 22만호를 모두 없앤다는 접근법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과도하고 비현실적인 목표를 바꾸고 실제 침수 우려가 있는 가구나 장애인·거동 불편자 등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정책 전환이 요구된다"면서 "실제 본인이 원하거나 이주가 시급한 가구는 전체 반지하 가구의 10%가 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과도한 목표가 역량을 분산시켜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필요한 지원이 늦춰지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라며 "이는 결국 정책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라도 정책 전환을 선언하고 반지하 해법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반지하 대책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22만호 퇴출'을 전제로 한 목표 달성률 부족, 이를 위한 매입 실적 부족 등 관련 지표가 오세훈 시장에게 계속 꼬리표처럼 따라 다닐 것"이라며 "한번 꺼낸 발언을 수정하기 어렵겠지만 문제 있는 정책설계를 신속히 포기하고 새로운 해법으로 나아가는 것도 용기있는 정치인의 모습"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