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례 칼럼

부끄러운 정부의 문화예술·언론 예산 "칼질"

2023-11-15 11:43:46 게재
차미례 언론인·번역가

화끈하게 많이도 잘랐다. 윤석열정부의 문체부가 최근 제시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영화 독서 등 문화예술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해당 분야를 아예 없애거나 구석에 쳐박아 버리고 싶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영화발전기금 사업비를 대폭 축소하고 영화지원정책 예산을 올해 204억4900만원에서 내년엔 174억1100만원으로 줄였다. 독서 출판 관련 예산도 뭉청 사라졌다.

국민독서문화 증진 지원, 도서관정책 개발과 서비스환경 개선, 파주 출판단지 활성화, 지역서점과 지역출판산업 육성, 출판콘텐츠 국제교류지원 예산은 아예 전액 삭감되었다.

특히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 부문의 삭감에 시민사회단체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인문사회과학 출판인협회, 전국 동네책방네트워크, 한국서점조합연합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출판인회의 등 단체들이 반대하며 예산복구를 요구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어려움을 겪는 출판문화와 예술분야에 국가지원을 크게 늘려도 모자랄 판에 "그냥 죽어라"식의 예산 칼질이다. K컬처를 자랑하며 문화예술인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그 성과에 숟가락을 얹던 정부가 체면을 돌보지 않고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이유는 두 가지일 것이다.

그런 지시를 내린 사람이 "무식이 용감"하거나, 문화예술과 지식산업에 관한 비전 자체가 아예 없는 깡통이거나.

문화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 주 국회에 제출한 '문체부 예산안 시민의견서'에서 정부가 문화정책의 철학과 방향성을 갖고 있지 않다고 지적하고 문화의 효능과 사회적 창의성은 무시한 채 산술적인 경제효과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화·출판 분야 지원예산 대폭삭감

지난해 윤석열정부를 풍자한 학생공모작 수상작품 '윤석열차'를 전시해 정부 경고를 받았던 한국영상진흥원도 내년도 예산이 절반쯤 깎였고 수출작품 번역지원, 해외전시 관련 국고보조금은 전액 삭감되었다. "윤석열차"논란 때문에 예산을 깎았다고 단정할 수는없지만 삭감에 대한 타당한 근거나 객관적 자료가 제시된 게 없어 '어떤 분'의 불쾌감의 뒤끝 작열로만 보인다.

내년도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지원 예산도 82%나 대거 삭감되어 연합뉴스는 50억원으로 아프리카 중동 특파원 운영비와 영어권 이외의 외국어 뉴스 서비스에만 충당해야 한다. 정부가 그동안 공적 역할 수행비용 보전 명목으로 지원하던 예산이 내년에는 올해 278억6000만원에서 82%나 삭감한 50억원으로 줄어든 것이다.

이 통신사의 공적 기능은 외국어뉴스, 해외뉴스, 남북한 및 재외동포뉴스 지역뉴스 재난 보도 등인데 정부가 외국어뉴스와 해외뉴스 중 일부 예산만 남기고 모두 삭감한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처럼 예산을 없앤 것은 "연합뉴스가 공적 기능을 근본적으로 수행할지 의문을 제기하는 삭감안"(성기홍 사장)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부는 이같은 대규모 삭감을 일방적으로 결정했고 설명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예산에 맞춰 구조조정과 사업운용방침을 재편해야하고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여서 공적 기능과 인력감축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우려되고 있다.

그러나 사측은 현재 상황에서 앞으로 영업이익을 염두에 둔 운영방식을 채택하거나 국가기간뉴스통신사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문제 삼아 예산복원 노력을 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밝혔다.

가장 문제가 심각한 것은 윤정부가 임명한 사실상 현 2명의 위원장 만으로 모든 심의가 결정되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이다, 2008년 이 기구가 설립될 때 정부가 방송내용을 심의하면 '국가검열'이 되므로 심의기구를 민간기구로 했지만 이젠 의미가 없어졌다.

대통령이 3인을 추천하고 국회 여야 당이 3대 3명을 추천하는 조직상 정부여당 추천위원들 6명이 제재 수위를 한껏 높여 징계와 과징금 부과를 남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기간통신 연합뉴스도 82% 잘라

과거 수년간 방통위 특위위원과 분과위원장을 맡은 적이 있는 필자는 시청자가 어떤 방송 프로그램에 불만을 전화로 제기하기만 하면 심의대상이 되는 구조상 장시간에 걸쳐 산적한 엄청난 안건을 처리하며 그 비효율성을 실감한 적이 있다.

특히 지금은 윤석열정부 요구에 따라 방통위가 대통령실이 말하는"가짜 뉴스"대응의 전위대 역할로 사실상 정부 검열기관의 기능을 하고있다는 게 외국 언론에 까지 보도되었다.(뉴욕타임스)

마침 신임 KBS사장이 취임 즉시 주요 뉴스앵커들의 교체, 시사프로그램 퇴출 등을 급속히 진행하면서 한국의 언론상황은 더욱 더 국제적 관심의 표적이 되고 있다.

민주화의 자산으로 힘들게 얻어낸 한국의 언론 자유가 이렇게 유린되거나 의심받는 건 국가적 퇴행이며, 언론인들에게도 창피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차미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