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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도 '고르기' 수능, 아찔한 일 아닐까

2023-11-17 11:01:21 게재
양영유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언론인

이번 수능 날에도 예외가 없었다. 은행은 영업시간을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로 1시간씩 늦췄다. 관공서와 기업체는 직원의 출근시간을 오전 10시 이후로 조정했다. 영어 듣기 평가가 시행된 오후 1시 5분부터 오후 1시 40분까지 35분간 항공기 이착륙도 금지됐다. 지하철은 추가 배차됐고 비상수송차량이 투입됐다.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다. 예외 없는 일은 또 있다. 전국 50만 수험생의 고민이다. 의대를 희망하는 학생은 내년부터 의대 정원 확대가 기정사실화하자 재도전 여부를, 시험을 잘 보지 못한 학생은 재수 여부를 고민한다.

오지선다 수능에 청춘의 미래가 달려 있으니 고민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 대입은 초·중·고 교육의 블랙홀이다. 학생의 인·적성을 살리는 맞춤형 교육, 인공지능(AI) 시대의 디지털 활용 교육 같은 담론은 대입 앞에선 여지없이 움츠러든다. 30살 수능의 생명력은 끈질기다. 현재의 수능은 중3이 대입을 치르는 2027학년도까지 유지된다.

교육부가 예고했듯 현재 중2가 치를 2028학년도 수능(2027년 11월)부터 일부 바뀌기는 한다. 하지만 여전히 오지선다 수능일 뿐 미래 세대를 키울 혜안은 부족해 보인다.

초등생도 오지선다, EBS 수능은 코미디

어제 치른 수능과는 달리 4년 후에는 모든 수험생이 국어·영어·수학·사회탐구·과학탐구 5과목을 똑같이 풀어야 한다. 교사나 사회학자, 인공지능(AI)전문가나 의사를 꿈꾸는 학생의 구별이 없다. 고교학점제의 취지가 이상해지고 수능 '1점' 경쟁은 더 치열해지게 됐다. 게다가 EBS 교재 연계 정책도 유지된다. 수능 문항의 50%를 EBS 교재와 비슷하게 출제하는 기이한 방식이 AI시대에도 유지된다.

사교육비 폭등을 두려워한 교육부의 보신주의가 교육을 망친다. 요즘 학생들은 보고 듣는 것에 익숙한 '영상 세대'다. 스마트 폰과 컴퓨터에 능숙한 반면, 스스로 써보고 생각하는 능동적 학습은 부족하다. 그런 현실을 감안해 생각하게 하고 직접 써보고 도전하게 하는 교실 맞춤형 교육이 절실하다. 교실의 변화는 대입이 핵심이다. 그런데 EBS 교재와 연계한 고르기 수능에다 똑같은 시험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할 수 있을까. 4년 후에 수능을 치를 현재 중2인 2009년생은 44만4849명이다. 교육부의 '2028 대입 개편안'을 2033학년도까지 적용한다면, 현재 초등 4학년(2013년생, 43만6455명)도 '고르기'를 해야 한다. 10년 후까지 EBS 연계 50%의 오지선다 수능, 아찔하지 않은가. 대입은 민감한 교차방정식이다. 하나를 개선하면 다른 쪽에 변수가 생긴다.

사교육 '풍선효과'는 동전의 양면이다. 이리하든 저리하든 사교육은 살아남는다. 대입 흑역사가 숱하게 입증해 왔다. 게다가 내년에는 의대 정원 확대라는 메가톤급 변수가 있다.

사교육은 속으로 웃고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교육부 장관과 교육 관료는 소신을 발휘하지 못한다. 의대 문제나 수능 개편에 수동적으로 끌려 다닌다. 어제 치른 수능의 난이도와 킬러 문항 논란에 따라 목이 왔다 갔다 한다. AI시대 교육 대전환과 디지털 인재 100만 명 양성의 비전을 펼칠 겨를이 없다. 공직 세계의 비애다. 어제 치른 수능과 2028학년도 수능 개편 안은 묘한 대조를 이룬다.

현재의 수능을 바꾼다는 것은 현재의 수능이 모순이 많다는 의미다. 이리저리 뜯어고치면 낭패를 보는 건 결국 학생인데 누굴 위한 개편인지 여전히 의문이다.

교육부는 '미적분Ⅱ'와 '기하'를 평가하는 '심화수학' 신설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국가교육위원회에 검토를 요청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골치가 아픈 모양이다. 이처럼 수능 개편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교육부가 수능을 개편하면 대학은 입시요강에 손을 댈 것이다.

정부 포기한 입시방정식 대학자율로 풀어야

대학이 정신 차려야 한다. 글로벌 인재경쟁 시대, AI시대에 국내 대학의 위상은 계속 추락하는데 구태의연하게 입시요강을 비틀어서는 안 된다. 언제나 입시는 '공교육 파서블(possible)'이어야 한다. 고교 교사들과 대학 간의 소통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제는 대학이 나서야 한다. 대입 자율화를 위한 자성과 혜안이 절실하다. 교육부의 고르기 수능, EBS 교재 50% 연계 탓만 할 때가 아니다. '입시요강=공교육 파서블' 원칙으로 교육부가 포기한 대입 교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대학이 수험생에게 따듯한 난로가 돼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