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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중국 반도체 굴기 제재 전략을 바꿨나

2023-11-17 12:15:27 게재
안유화 중국증권행정연구원 원장, 미국 어바인대(UI) 교수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중국 투자 규제 유예를 무기한 연장하면서 양쯔메모리(YMTC)와 같은 중국 기업의 투자 의지가 꺾이게 됐다는 외국언론 분석이 많이 나오고 있다. YMTC는 낸드플래시 핵심 기술인 3D낸드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 경쟁사를 빠르게 따라잡고 있는 중국 대표 반도체기업이다. 미국의 대중국 수출규제가 본격화되기 전 사들인 반도체장비를 활용 대규모 시설 투자를 벌이며 글로벌 시장점유율을 높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에 메모리반도체 시설 투자 확대가 어려워진다면 이 전략을 현실로 옮기는 일은 더 쉬워질 수 있다.

미국이 동맹국을 앞세워 중국에 대한 전면 봉쇄정책을 실시하면서 중국 내 공급은 어려워졌다. 이는 중국 내 70%의 수입 시장이 그냥 공급 공백이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국의 대중국 견제는 외국기업이 독점하고 있던 중국내 반도체 수입시장을 두손으로 중국 국내기업에 양도한 셈이다.

이런 시장기회를 엿본 중국 자본들은 막대한 투자를 단행했다. 그런데 이번 미국의 대중견제 정책이 변하면서 그동안 방대한 투자를 진행한 중국 반도체 기업들에게는 큰 어려움이 닥친 셈이다. 아직도 손익분기점에 달하지 못해 적자에 처한 상황에서 미국의 덤핑정책은 바로 이들의 국산화전략에 차질이 발생하게 한 것이다.

TSMC 저가공세, 중국내 가격전쟁 시작

또한 미국의 중국 억제전략은 차별적으로 진행되는데 삼성과 SK하이닉스 등의 중국 투자확대에 대해서는 무기한 연장해주었지만 TSMC는 1년 기간만 연장해 주었다. 이유는 중국의 메모리산업은 기술적으로 이미 많이 올라온 상태이고 단지 생산량이 부족할 뿐이다. 현재 이미 10만개 생산량이 가능하고 2년 이후면 25만개에 달하는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주요기업인 장강메모리와 창신메모리의 생산량은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많은 중국기업이 국산화에 성공하려고 하지만 부족한 생산량으로는 중국내 시장수요를 만족시킬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삼성과 SK하이닉스가 지금의 불경기에서 오히려 투자확대를 단행해 물량공세를 들이댄다면 반도체가 이미 생산과잉이 된 상황에서 가격으로 승부를 보게 되면 중국기업들은 대처하기가 힘들어진다.

TSMC도 1년만 연장되었지만 미국이 언제든지 무기한 연장해 줄 수 있는 상황이다. 5nm, 3nm 등과 같은 첨단칩 수요보다 사실 시장성이 있고 수익성이 높은 것은 28nm와 같은 대중화된 제품들이다. 스마트폰과 AI 이외 대부분 영역에서 중저사양으로도 충분하다. 중국 본토기업의 국산화 굴기는 이미 대중화된 수익성이 높은 시장부터 공략하는 것이었다. 만약 TSMC가 중저사양의 모델로 물량공세를 펼친다면 중국 국산기업들에게 큰 타격을 주게 된다. 현재 규모가 가장 큰 중국 국내기업 SMIC는 2022년 기준 영업매출이 TSMC의 1/10밖에 안된다. 2등인 화훙은 더 열악한 상황이다. 지금 대만기업에 비해 중국기업의 자본과 기술은 모두 열세에 처해있다. 중국 국경절이 지나자 TSMC는 12-28nm의 가격을 10% 떨어뜨렸는데 이는 이미 반도체 가격전쟁이 시작되었음을 말한다. TSMC는 일정물량 이상을 주문하면 할인된 가격으로 받을 수 있게 했다.

반도체 산업이 이미 생산과잉 된 상황에서 외국기업들이 브랜드를 앞세워 가격전쟁을 벌이게 되면 중국 본토기업들은 버티기 어렵다. 과거 중국 자동차 업체들은 글로벌 자동차제조업체들과 합자를 통한 자동차 기술 자립을 시도하였지만 결국 실패하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완전 개방된 중국 자동차시장에서 질 좋고 디자인 좋고 성능이 우수한 외국 자동차 브랜드를 중국인들이 선호하면서 중국 본토 자동차기업들에게는 아예 비비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외국 브랜드 기업들이 이미 가격과 기술로 중국 시장을 독점해버렸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완전 개방된 중국 자동차시장에서 중국 국산화업체들은 시도할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다. 반도체 산업도 마찬가지이다. 안정적이고 질 좋고 가성비가 좋은 외국기업이 물량공세로 중국시장에서 경쟁한다면 중국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고 나선 중국 국산화 기업들은 큰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만약 이 난관을 뚫지 못한다면 중국의 기술굴기는 기회가 없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기술돌파의 가장 큰 어려움이 기술의 난이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기술보다 더 핵심적인 것은 시장의 크기이다. 중국에 전기자동차시대가 도래하기 이전에 중국 자동차 시장은 외국기업들이 독점했다. 중국은 시장으로 기술을 바꾼다는 전략으로 외국기업에게 중국시장 진입을 완전개방했다. 중국인들은 기술적으로도 안정적이고 브랜드도 있고 가성비가 우수한 독일 일본 미국 및 한국 자동차를 우선으로 선택하면서 중국 국산차 기업들은 처음부터 기회를 얻을 수가 없었다. 다시 말해 중국 국산차 기업들이 고기술 장벽에 부딪히기 이전에 외국 자동차 브랜드가 이미 시장을 장악해버렸기 때문에 중국내 자본의 기술돌파를 위한 자본투입은 불가능했다. 중국 국산차 기업의 시장확대를 통한 기대수익 실현이 어렵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기자동차 시대에 진입하면서 중국 국산차 기업들은 날개를 붙인 것처럼 고속성장했고 지금은 중국이 세계 자동차 수출 1위 대국이 됐다. 세계 유수 자동차 브랜드 기업들이 전기자동차 시장에서 특별한 브랜드 및 기술 우위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중국자본들이 장기간 꾸준한 자본투자로 이 시장에서 기회를 잡고 수익을 실현할 수 있었다.

워렌버핏이 늘 간단하고 이해하기 쉬운 수익모델을 가진 기업을 선호하는 것은 바로 단순함에 모든 답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복잡한 기술보다 시장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메타버스 바람이 불다가 꺼진 것은 기술의 복잡성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올해 들어 AI 바람이 분 것은 기술이 간단해서가 아니라 챗GPT를 대표로 하는 AI기술의 응용시장이 메타버스의 시장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기술돌파 자체의 어려움은 기술의 난이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술로 인한 시장의 규모에 있다. 중국은 건국 이래 핵개발부터 시작해서 우주정복까지 국가의 자원을 집중해서 공략못한 것은 없었다. 반도체 굴기에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반도체 기술 자체보다도 그 기술이 받쳐주는 시장이 크냐 작냐이다.

트럼프, 중국 반도체 굴기의 1등공신

트럼프가 중국의 1등공신으로 불리우는 이유는 외자가 장악하던 중국내 반도체 시장을 국산제품이 대체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시장이 충분히 크면 자본의 방대한 투자가 들어올 것이며 아무리 3nm, 5nm 기술이라도 중국의 국가체제로 극복 못할 수 없다. 중국의 빅펀드 3기는 앞의 1기와 2기펀드보다 더 목적성 있게 투자되고 있다.

이번 미국정부의 전략변화로 다시 중국 반도체 시장에 가성비 외국 제품이 들어오게 되면 이제 막 투자를 확대한 중국 본토기업들은 기회를 잃게 된다. 중국시장에서 글로벌 톱 기업들과 가격과 물량으로 경쟁해야 하는데 아직 현실적으로 그 단계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도 중국의 반도체산업의 발전을 완전히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안다. 그들이 전략변경까지 하면서 이렇게 나오는 것은 단지 자신들의 재공업화(re-industrialization)를 위해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다. 삼성과 TSMC같은 기업들이 중국시장 덤핑공략으로 3~5년 동안 시간을 끌어준다면, 중국기업들은 가격전쟁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될 것이고, 결국 미국은 칼에 피를 묻히지 않고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된다.

안유화 중국증권행정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