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장 리포트

미국의 추수감사절, 칠면조에 숨겨진 사실들

2023-11-28 11:31:52 게재
김찬송 위스콘신대

한국의 대표적인 명절로 추석이 있다면 미국에는 추수감사절이 있다. 그리고 미국인들이 추수감사절 저녁식사를 위해 모였을 때 만찬의 주요리는 칠면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에서 칠면조를 빼고 추수감사절을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1년 중 11월 넷째주 목요일에 미 전역의 칠면조 소비량이 가장 높은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며, 최근 몇년 동안 칠면조 소비량은 더욱 증가하고 있다. 미국 칠면조 연맹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약 88%가 매년 추수감사절 칠면조를 소비한다고 하는데 이는 4600만마리 이상의 칠면조가 소비된다는 의미다.

또한 미국 농무부(USDA)는 2022년 미국이 50억파운드(약 22억6000만㎏) 이상의 칠면조 고기를 생산했으며 그중 48억파운드(약 21억7000만㎏) 이상이 국내에서 소비됐다고 밝혔다. 이는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과 관련 공급망 문제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발생한 칠면조 공급 부족에도 불구하고 달성한 수치다. 게다가 인플레이션에 공급 부족 문제까지 동반되면서 냉동 칠면조의 도매가격은 파운드당 평균 1.55달러로 올라 2021년에 비해 파운드당 32센트나 높았다.

미국 농무부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칠면조 가격은 생산량 증가로 인해 2022년보다 더 저렴할 것으로 본다. 물론 이후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식품 관련 전문가들은 대체로 칠면조 소비량 증가추세가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링컨이 추수감사절 주요리로 선정

그렇다면 칠면조는 언제부터 그리고 왜 지금까지 추수감사절의 대표 음식 재료가 됐을까. 칠면조가 미국 내에서 이렇게 인기를 끈 이유 중 하나는 북미 지역이 원산지인 새이기 때문이다. 화석으로 추정해보면 칠면조는 약 500만년 전부터 이미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들여놓기 수세기 전부터 멕시코 원주민들은 칠면조를 길들였고, 16세기 정착민들이 이 큰 새를 현재의 미국 영토로 데려온 것이 시초가 됐다. 또한 칠면조는 점차 유럽에서도 소비층이 확대돼 대서양 연안에 미국 최초의 정착촌이 세워졌을 때도 칠면조는 큰 인기를 끌었다.

지금은 미국 전역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야생 칠면조는 오랫동안 미국의 몇몇 지역에서만 발견됐다고 한다. 1940년대에는 개체수가 너무 적어 줄어드는 개체수를 늘리기 위해 새로운 개발지역에 칠면조를 도입해야만 했다.

사실 추수감사절을 공식적으로 기념하기 시작한 것은 1777년 미국 대륙의회에서 추수감사절을 공휴일로 선포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추수감사절이 다시 전국적인 공휴일로 선포된 것은 1863년 링컨 대통령 재임 시절이었다. 남북전쟁으로 국가가 분열된 상황에서, 추수감사절은 모든 미국 사람들이 감사할 것들을 상기하는 분위기로 이끄는 적절한 기회였다.

대통령 당선 직후 링컨은 비공식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였던 칠면조 구이를 추수감사절 만찬의 주 요리로 결정했다. 1864년 무렵에는 군인들이 어떤 전장에 있든 추수감사절을 기념할 수 있도록 미국 전역에서 칠면조 요리를 준비하기 시작했고, 칠면조를 모으는 거대한 프로젝트도 발족했다. 또한 링컨은 가장 운이 좋은 칠면조에게 대통령이 사면을 내리는 전통을 시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미국인들에게 추수감사절 저녁 만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모든 손님에게 충분한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며, 손님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충분한 고기가 있어야만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칠면조는 한마리로도 온가족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크기이므로, 닭 수십마리를 소비할 필요가 없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다른 가축들과 비교해보면 칠면조는 1년 중 하루를 위한 적절한 선택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닭의 경우 달걀이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한동안 먹을 식료품을 사러 마트에 갈 수 없던 시절, 미국인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식재료를 고민해야 했다. 추수감사절 식사가 끝난 후에도 수십마리의 닭은 오랫동안 달걀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유용했다.

소는 밭에서 일하는 과정에서 필요하고 염소와 함께 우유와 유제품을 생산했다. 돼지고기는 당시에도 매우 흔한 식재료였으므로, 햄이나 베이컨은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한 만찬의 식재료로서 가치가 낮았다. 이 모든 요인이 칠면조가 추수감사절의 상징적인 음식으로 자리잡는 데 도움이 됐다.

꼬리요리 좋아하는 태평양 섬 지역

그런데 이러한 칠면조 요리 때문에 미국의 특정 지역에서는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하와이와 미국령의 태평양 섬 지역이다.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하와이 원주민과 태평양 섬 주민은 현재 미국에서 두번째로 빠르게 성장하는 소수민족으로, 2000년과 2010년 사이에 그 수가 40%나 증가했다. 단독 또는 다른 인종 및 민족과 결합해 현재 125만명이 넘는 미국인들이 이 그룹에 속해 있다.

그런데 이들은 다른 미국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칠면조 꼬리 부위를 가장 많이 먹는다. 사실 칠면조 꼬리는 정확히 따지자면 꼬리가 아니라 칠면조 몸통에 붙어 있는 분비샘의 일종이다. 그래서 칠면조가 스스로 먹이를 찾거나 깃털을 손질할 때 사용하는 기름으로 가득 차 있다.

칠면조 꼬리는 불과 1세기 전까지만 해도 태평양 섬 지역, 그중에서도 사모아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식재료였다. 미국인들은 대체로 살코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칠면조는 가슴살의 크기를 키우는 방식으로 사육됐고 꼬리는 미국인들이 꺼리는 부위로 남게 되었다.

1950년대 미국의 가금류 업계는 남은 칠면조 꼬리를 버리는 대신 새로운 시장을 찾아나섰다. 마침 동물성 단백질 공급이 부족한 태평양 섬 지역사회를 공략하기로 한 미국 가금류 회사들은 칠면조 꼬리, 닭 등뼈 등을 사모아의 식재료 시장으로 옮겨와 팔기 시작했다. 이 전략은 폐기물로 여기던 칠면조 꼬리를 단숨에 황금알로 바꾸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 이후로 미국 전역의 칠면조 꼬리 대부분은 태평양 섬 영토 지역에 선택적으로 판매됐다.

2007년까지 태평양 섬 주민들은 평균적으로 매년 44파운드(약 20㎏) 이상의 칠면조 꼬리를 소비했는데, 이는 아메리카 대륙에 거주하는 미국인의 1인당 연간 칠면조 소비량의 거의 3배에 달하는 양이다. 태평양 섬 지역 여행 책자를 보면, 칠면조 꼬리 요리를 대표 메뉴로 내세우는 음식점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칠면조 요리를 거의 그들의 전통요리 중 하나로 간주한다.

그런데 값이 싼 칠면조 꼬리는 영양가와는 거리가 멀다. 칠면조 꼬리는 지방과 콜레스테롤로 가득 차 있어 태평양 섬 주민들이 직면한 주요 건강 문제 중 하나인 비만을 유발하는 것이다. 아메리칸 사모아(태평양 섬 지역 중 하나)의 비만율은 무려 75%에 달한다. 2012년 미시간대학 사회연구소와 하버드대학 공중보건대학원에서 실시한 태평양 섬 주민 건강 연구에서 성인의 80% 이상이 과체중 또는 비만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역 주민들의 건강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사모아 지역 당국은 2007년 칠면조 꼬리 수입을 금지하며 강력한 조처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라 국가와 영토는 공중보건상의 이유가 입증되지 않는 한 상품 수입을 일방적으로 금지할 수 없었다. 결국 사모아는 전 국민의 건강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WTO 가입 조건으로 2013년에 수입 금지를 해제해야 했다.

식품산업의 성공과 부작용 보여준 사례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하나인 벤자민 프랭클린은 칠면조를 대머리독수리보다 훨씬 더 '존경할 만한 새'라고까지 언급한 적이 있다. 그만큼 칠면조는 가장 미국적인 새로 상징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칠면조가 미국인들이 선호하는 부위에 따라 글로벌 식품 시스템의 성공과 부작용을 동시에 보여주기도 한다.

김찬송 위스콘신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