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천 칼럼

행정망 재난과 후속 사고로 읽는 디지털 국격 실추

2023-11-28 12:04:13 게재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요즘 데이터가 중요한 자산이라고 하여 행정안전부 산하에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라는 이름도 생소한 곳에서 국가 데이터 전체를 관리한다고 한다. 그러나 국내 데이터 인프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17일부터 국가행정전산망이 마비되는 사태가 돌연 발생했다. 행정망과 연계돼 있어 이 사태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조달청 근로공단 조폐공사, 심지어 사이버경찰청까지 시스템이 연이어 장애를 일으켰다. 모두 행정망 개인정보 서버가 잘 돌아가야만 각기 돌아갈 수 있는 주종관계다. 그런 만큼 정부 해명과는 달리 동일한 맥락의 사고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행정망이 일종의 형님으로서 연계돼 있는 다른 모든 종속적 시스템을 구동시키는 주 전원 스위치 역할을 하고 있는 까닭이다.

음식으로 말하면 국가망에서 가장 기초 식재료는 두말할 나위없이 데이터다. 모든 컴퓨터 시스템을 작동시키기 위한 토대 먹이인 까닭이다. 컴퓨터 명령도 데이터라는 먹이 없이는 어떠한 결과도 낼 수 없다. 컴퓨터에서는 데이터가 뿌리 중의 뿌리다. 데이터가 제2의 석유라는 말이 이래서 가능하다.

기존 수작업 업무는 40년 전부터 전산화돼 왔다. 따라서 정보시스템 장애 시 업무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 무재해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기술의 장애는 불가피하다는 생각이 사실상 지배적이다. 정보시스템 운영주체에 대한 비난은 그래서 단순 화풀이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기술은 정확한 것이고 따라서 거의 완벽한 시스템 구축이 가능하다고 본다. 컴퓨터가 애초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컴퓨터로 처리했더니 답(데이터)이 틀리면서도 늦게 나와 오히려 불안감이 증가했다고 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런 안정성을 보장하는 확실한 길은 정교한 데이터맵을 갖추는 것이다. 데이터맵 설계 능력이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는 뜻이다.

행정망 마비, 데이터설계 문제일 가능성

그러면 정부에 이런 데이터맵이 존재할까. 물론 있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정교한'이란 수식어가 붙으면 달라질 수 있다. 있되 정교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난개발로 시스템이 통합적이지 못하고 볼썽사납게 누더기처럼 돼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연결돼 있을지라도 단 하나의 맵으로 모든 데이터가 한곳에 명료하게 나타날 정도로 통합적이지 못하면 미로처럼 꼬일 수밖에 없다. 다른 건 꼬여도 쉽게 풀 수 있지만 평소 매뉴얼 문서화에 게으른 우리 사회문화에서 데이터가 꼬이면 난리가 날 수밖에 없다.

'데이터맵' 갖추기를 등한시하는 게 우리의 취약지대다. 데이터맵이란 전국도로교통지도에 해당하는 것이다. 기계가 할 수 없는 영역으로 사람 손을 필히 거쳐야 하는 부분이다. 그게 없이는 고장 원인 규명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번 행정망 마비 원인을 데이터 쪽에다 무게를 더 둘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건의 단서를 잡아내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할 통합데이터맵을 행안부가 전혀 갖고 있지 못한 까닭이다. 맵 같은 게 있다고 항변할 수 있으나 그 정체가 60년 전 구식 형태로 구성돼 있고 시스템 개발 당시 데이터 구성 과정을 지금 역추적할 방법도 없이 난개발됐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런 해명은 뻔뻔스러운 항변일 뿐이다.

데이터맵 문제인 경우 대략 2~3일 내로 역주행식 땜질 처방을 급조해서 일단 국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넘어가는 게 통상적이다. 일단 급한 불 끄고 보자는 식이다. 이번에도 그랬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행안부와 연계된 시스템들이 연이어 오작동을 보인 건 우연의 일치는 아니다. 모두 데이터 단에서 행정망에 긴밀하게 연결된 것들로 행정망이 켜지지 않으면 아예 작동 자체가 불가능한 행정망 의존적 시스템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것이 행정망 마비사태가 데이터설계 쪽에서 터졌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기재부 FIU 시스템 리모델링 참고 삼길

데이터 국격이 디지털 국격을 대변하는 시대다. 데이터 재난이 국가 사회 재난으로 분류돼야 하는 근거다. 행안부는 전문가에게 문제점 진단 및 개선을 맡겨 시스템 리모델링에 들어가야 한다. 전문가에게 맡겨 안 돌아가던 국가 시스템을 단 4개월 만에 완벽하게 고친 성공사례가 기재부 금융정보분석원(FIU)의 혐의거래색출시스템이다. 지난 20년 간 오류없이 잘 돌아간다. 행안부도 규모 면에서 기재부와 다르지 않다. 그렇게 진단 후 리모델링하면 된다. 행안부에서는 참고해야 할 것이다.

디지털 한국을 자랑하려고 주무부처 장관이 유럽 순방중이라는데 그 동네 가서는 우리 것을 자랑할 게 별로 없다. 유럽은 주민번호를 사용하지 않아 민원서류라는 용어 자체가 없으며 따라서 국민들에게 서류제출을 전혀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와는 완전히 딴 세상에 가서 자랑할 게 무엇인지 궁금하다.

문송천 카이스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