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남식의 중동 톺아보기

가자사태 이후, 더 불확실한 미래

2023-11-30 11:50:29 게재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전략지역 연구부장

인질 교환과 함께 다행히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교전이 잠시 중단됐다. 그러나 가자지구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애초부터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하마스는 호락호락 물러날 기세가 아니다. 10월 7일 공격은 기존의 공격 유형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정보탐지망을 무력화시킬 만큼 치밀하게 준비했고, 대면살상에 인질나포까지 벌인 초유의 도발이었다. 그렇다면 다음 수순, 즉 이스라엘의 가공할 만한 보복 공격과 지상군 투입까지 염두에 두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하마스의 로켓 공격에 익숙했고 이에 대해 비대칭적 응징을 관례화 해 온 이스라엘 입장에서도 이번 미증유의 도발을 이전처럼 대응할 수는 없다. 단순히 압도적 무력을 과시하며 폭격을 통해 보복한다고 해도 불충분하다고 판단한다. 이참에 가자지구에 똬리를 튼 하마스를 완전히 발본색원하지 않고서는 답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기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국가안보 실패 책임뿐만 아니라 무능력과 대안부재의 상황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이 상황이 어떻게 종결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일단 지상군 투입 시가전으로 가자지구를 평정하고 하마스를 무력화하기란 무척 어렵다. 건물 밀집도가 높고 이미 폭격으로 거리에 장애물이 즐비한 상황에서 장갑차나 전차 진입도 쉽지 않다. 보병 병력이 투입돼야 하나 이는 하마스의 저격에 노출될 가능성을 높인다. 무엇보다 하마스는 지난 16년간 가자지구를 통제하며 모든 지형지물에 익숙하다. 적진 안에서 제한된 환경으로 싸워야 하는 이스라엘은 상당한 병력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에서 시가전을 말리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타냐후정부는 가자지구 하마스 거점 궤멸을 다짐한다.

확실한 대안 보이지 않는 가자지구

더 불확실한 것은 가자지구의 미래다. 어떤 형태로든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궤멸시킨다고 하자. 그 이후 가자지구가 어떻게 될까. 230만명 주민을 누가 통치할 것인가. 첫째 대안은 하마스가 사라진 가자 주민들의 자치다. 그러나 만만치 않다. 전체 가자인구의 절반 이상이 18세 미만의 미성년자다. 거의 대부분은 지금까지 가자지구를 벗어나 본 적이 없고 하마스 통치만 경험했다. 갑자기 새로운 정치 대안세력이 등장할 수 있을까. 대안이 등장한다고 해도 하마스의 영향권 하에 있는 유권자들에 의해 제2, 제3의 유사 하마스가 나타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둘째 대안은 서안지구를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가자지구까지 통합 관리하는 방안이다. 논리적으로 가장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대안으로 제시된다. 사실상 '두 국가 해법'에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영토가 서안지구 및 가자지구 중심이었기에 방향성도 맞다. 다만 기존의 가자지구 주민들이 이질적인 서안지구 출신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통치를 수용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가자지구 주민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대해 불편한 감정이 있다. 자신들은 하마스의 통제 속에서 16년 동안 봉쇄당하며 감옥 생활 같은 삶을 살아가는 동안 서안지구는 이스라엘과 경제적 유대관계 속에서 호의호식 해왔다고 믿는다.

결국 서안지구 출신의 뛰어난 지도자가 가자지구에 나타나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는 한 불안정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중론이다. 이 점에서 비관적이다. 서안지구에도 리더십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불만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의 강경파는 마지막 대안으로 아예 가자지구의 해체를 주장하기도 한다. 가자지구 출신들은 이미 이스라엘에 극도의 불만과 반감을 갖고 있기에 더 이상 잠재적 팔레스타인 영토로 놓아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마스의 이번 도발에서 드러났듯 가자지구는 게토화된 상태로 오랫동안 반이스라엘 사상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왔다는 인식에 기반한다. 군사작전을 통해 하마스를 토벌하고 가자는 아예 이스라엘이 접수해 영토화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230만명이나 되는 가자주민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인근 이집트 등 아랍에서 수용해야 한다는 방안도 검토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집트나 요르단 등 인근 아랍국가에서는 어불성설이라며 즉각 부정했다.

이스라엘의 급선무는 서안지구 진화

이처럼 이번 가자사태는 군사작전의 향방뿐 아니라 그 이후의 미래도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다. 혹자는 확전을 이야기한다. 제3차 중동전쟁이 자칫 지역을 넘나드는 국제전쟁으로 비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없지 않다. 그러나 국가 단위의 행위자들 중 전면전을 원하는 나라는 없다. 러시아 이란 등 이번 가자사태 최대 수혜국들도 상황을 안정시키는 게 더 이익임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전면전 시나리오는 상대적으로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인다.

반면 지금 예상 가능한 확전 시나리오가 있다면 그 첫 발화지점은 서안지구가 될 것이다. 가자사태가 출구없이 악화될 경우 팔레스타인의 분노는 서안지구로 건너갈 가능성이 있다. 이미 시위로 인한 사상자가 발생했다. 전쟁의 불씨를 계속 살려 온통 불붙게 만들려는 하마스의 풀무질이 서안지구로 건너가 확산되는 것이다. 이 경우 이스라엘 남부(가자)와 중부(서안)가 전장이 된다. 가자지구의 참상도 비극적이지만 서안지구의 발화는 더 위험하다. 완전히 분리·포위된 공간인 가자와 달리 정착촌이 산재하고 그 안에 이스라엘 방위군(IDF)이 들어가 있는(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적진 안에 포진한) 서안지구의 충돌 접점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주민 대다수가 들고 일어나는 무장봉기(인티파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서안지구에서 만일 3차 인티파다가 일어날 경우, 더 나아가 하마스의 무장투쟁이 서안지구에서 전개될 경우엔 상황이 심각해진다. 북부 접경 지역, 즉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시리아의 이맘 후세인 여단이 전면전에 준하는 공격태세로 제대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 비록 국가 단위의 행위자가 아니라지만 이렇게 불이 번지면 충돌 강도는 거의 전면전에 준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북부·중부·남부전선에서 싸워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결국 미국 역시 어쩔 수 없이 군사 개입 가능성을 논의해야 할지 모른다.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정파 하마스와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나 이맘 후세인 여단은 자연스레 종파를 뛰어넘어 연대하고 있다. 이른바 반시온주의 연대다.

더 나아가 유대-기독교에 대한 단일대오 저항전선 구축이라는 선전선동을 시작하게 되면 큰일이다. 문명담론을 불쏘시개로 이슬람 전사들을 동원하게 되기 때문이다. 전세계 이슬람 극단주의의 외로운 늑대들을 자극하고 끌어들일 가능성이 있다. 이미 그들에게 하마스는 영웅이다. 그들은 하마스와 여타 무장단체가 이스라엘과 결연히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들도 투쟁에 동참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스라엘의 급선무는 가자에서의 하마스 영향력이나 분노의 불길이 서안지구로 넘어들어가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스라엘 내부 통제가 사실상 관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정부 내부 통제가 절실하다. 네타냐후 내각의 극우 강성인사들의 발언은 팔레스타인 주민들뿐만 아니라 국제사회를 들쑤시고 있다. 최근에는 가자지구 평정을 위해 전술핵을 사용할 수 있다는 각료의 발언까지 나왔다. 하마스와 적대적 공생관계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발언이다. 막아야 한다. 그리고 향후 가자지구 민간인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노력을 극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국제사회의 중재를 받아들여 휴전을 연장하면서 정치적인 이익을 확보해나가야 한다.

분노에 휩싸여 자위권으로만 대응하다가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감수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흥분을 원한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대응하는 것이 맞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