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30% 수율에도 반도체굴기 진전

2023-12-01 11:11:47 게재

스마트폰칩 이어 AI칩 개발도 박차 … FT "중국 넘어 글로벌시장도 겨냥"

2020년 말 미국의 대대적인 제재로 중국 기술기업 화웨이는 사실상 스마트폰 사업을 접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올해 8월 7나노미터(nm) 크기 '기린9000S칩'을 탑재한 최신형 스마트폰을 출시하며 부활을 알렸다. 반면 미국정부는 화웨이의 기술발전에 경악했다.

화웨이와 중신궈지(SMIC)가 달성한 7나노미터 반도체는 애플 아이폰 XS의 핵심인 'A12칩'과 테슬라 반자율주행을 지원하는 '도조D1칩' 등에 쓰이는 첨단칩이다. 애플과 테슬라는 TSMC의 7nm 공정으로 이를 생산했다.

30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SMIC는 N+2(2세대 7나노 공정)을 통해 기린9000S칩을 생산했다. TSMC와 삼성전자는 극자외선(EUV) 리소그래피 장비를 사용해 칩을 생산한 반면, SMIC는 그보다 효율성이 낮은 심자외선(DUV) 장비를 사용했다.


SMIC의 기술개발 경로를 잘 아는 한 반도체 전문가는 FT에 "처음에는 예산 한계 때문에 DUV장비를 사용했다"며 "EUV는 매우 비싸다. SMIC의 첨단공정은 TSMC보다 수세대 뒤처져 있어 고객과 수익이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리소그래피 장비 제조업체인 ASML에 따르면, DUV 장비에서 7nm를 달성하는 데엔 34단계의 리소그래피가 필요한 반면 EUV에서는 9단계에 불과하다. 생산단계가 추가되면 더 많은 칩이 버려지기 때문에 비용은 높아지고 수율(투입수 대비 양품수)은 낮아진다. 예산상 편의로 DUV장비를 통한 작업이 시작됐지만, 2019년 SMIC가 ASML에 주문한 EUV 장비가 미국의 통제로 거부된 이후 이 과정은 필수가 됐다.

SMIC의 공급업체와 가까운 소식통에 따르면 SMIC는 기존 공장의 장비와 미국 제재 이전에 확보한 장비를 긁어모아 7nm 생산라인을 계속 가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불가능한 건 물론이고 유지보수를 수행할 엔지니어도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SMIC는 7nm 생산시설을 계속 가동하는 데 필요한 예비부품과 기술 서비스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는 미국정부에 큰 충격을 안겼다.

SMIC와 가까운 업계 관계자들은 일부 장비가 수출규제를 우회해 입수됐을 가능성을 인정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반도체장비 제조업체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는 현재 이와 관련한 수출규제 위반 가능성에 대해 조사를 받고 있다.

칩 제조업체는 일반적으로 칩 설계회사와 협력해 새로운 시설에서 장비와 제조 공정을 테스트한다. 예를 들어 TSMC는 3nm 공정라인에서 생산되는 칩을 놓고 애플과 협력하게 된다. SMIC의 업그레이드된 7nm 생산 라인에서는 화웨이가 애플 역할을 맡았다. SMIC 시설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화웨이 엔지니어들은 SMIC 상하이공장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고 말했다.

SMIC는 또 해외에도 도움을 요청했다. 수출통제로 미국인은 중국의 첨단 칩 제조업체에서 일할 수 없다. SMIC에 정통한 2명의 엔지니어에 따르면 대만과 일본 한국 독일 전문가들이 생산성 향상을 위해 고용됐다고 한다.

다음 단계는 인공지능 칩

기린9000S의 생산수율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 화웨이와 SMIC는 이를 함구하고 있다. 기린9000S 초기생산에 관여했던 한 사람은 "기린9000S가 대량생산 직전 단계에서 약 30% 이상의 수율을 달성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어려운 조건에서 긍정적인 수치"라면서도 "모바일칩 제조의 이상적인 기준인 90% 수율의 생산라인과 비교하면 비용이 최소 2배 이상 증가한다"고 덧붙였다.

업계 전문가들은 중국정부가 그에 따른 비용을 보전해준 것으로 보고 있다. 화웨이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중국정부로부터 65억5000만위안(9억4800만달러)을 지원받았다. 전년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SMIC의 경우 지난 3년 동안 68억8000만위안의 국가보조금을 받았다. 대주주인 중국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의 추가지원도 받았다. 중국 반도체산업 전문가인 더글러스 풀러는 "중국정부가 막대한 비용을 투입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기린9000S는 중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덕분에 화웨이는 그동안 잃어버린 시장점유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업계 전문가들은 기린칩으로 구동되는 스마트폰의 생산량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하이퉁인터내셔널증권의 애널리스트 제프 푸는 "2024년 말까지 기린 기반 스마트폰이 최대 7000만대 생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SMIC와 화웨이의 야심은 스마트폰을 넘어선다. 인공지능(AI) 시스템용 칩 생산량을 늘리려는 계획을 세웠다. 텐센트와 알리바바 같은 중국 인터넷대기업은 고성능칩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중국 현지에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화웨이는 자사의 어센드(Ascend) AI 칩이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를 대체할 수 있는 잠재적 대안으로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성능 격차는 상당하다. 2020년 5월 미국의 제재가 도입되기 전까지 화웨이는 TSMC를 통해 만든 어센드 AI 칩을 판매했다. 현재는 SMIC를 통해 새로 설계한 데이터센터 칩 제품라인을 부활시켰다고 한다.

화웨이와 가까운 소식통들에 따르면 중국 인터넷대기업인 텐센트와 바이두, 메이퇀은 소규모 시험용으로 화웨이 어센드910b칩을 구매했다. SMIC는 선주문된 7nm 화웨이칩 생산능력을 확장하는 한편, 더 진보한 5nm 공정노드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년 어센드910b칩 생산목표는 20만개 이상으로 올해 대비 2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관건은 화웨이와 SMIC가 데이터센터 칩 제조공정에서 발생할 여러가지 주요 과제를 극복할 수 있느냐다. 그래야 엔비디아의 시장점유율을 잠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AI칩은 스마트폰 프로세서보다 크기가 크기 때문에 생산오류로 인한 결함 발생 가능성이 더 높다. 생산측면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화웨이 어센드910b 칩의 수율은 2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생산된 칩 5개 중 4개가 결함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일본 네덜란드의 규제로 SMIC의 생산확대 능력은 3년 전보다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SMIC가 첨단칩과 구형칩 생산 모두에 사용하는 ASML의 가장 진보된 DUV장비가 네덜란드와 미국의 수출통제 대상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SMIC의 장비확보 규모에 대해선 분석이 엇갈린다. SMIC 공급업체들은 미국이 수출통제를 강화하기 전 ASML로부터 첨단 DUV장비를 사들였기 때문에 향후 수년 동안 생산 및 기술개발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이곳에 있는 장비 대부분은 SMIC가 2020년 비축한 미국 및 일본 제품들"이라고 말했다.

반면 업계 전문가와 분석가들은 SMIC가 첨단칩을 개발·제조하기 전 장비 유지보수 및 자재공급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본다. 중국 반도체 관련 독립컨설턴트인 레슬리 우는 "일부 기계부품의 비축량은 2~3년 내 소진될 수 있다. 중국기업의 대체품이 없는 데다 암시장을 통한 구매 가능성도 높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정부의 전폭적 지지

화웨이와 SMIC는 중국정부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다. 중국 반도체산업정책을 담당하는 한 정부 관계자는 "현재 목표는 그 어떤 비용을 들여서라도 최첨단 칩 생산라인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2014년 중국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 설립을 시작으로 반도체산업을 육성했다. 이 펀드는 지난 10년 동안 470억달러를 모았다. 추가로 410억달러를 더 쌓을 계획이다. 리서치기업 JW인사이츠가 중국 25개 성과 지방정부 투자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중국정부는 2021~2022년 반도체부문에 2908억달러를 투자했다. 이 가운데 1/3은 반도체장비 및 재료에 투입됐다.

화웨이의 장기적인 야망은 중국시장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린9000S칩의 별칭인 '샬롯(Charlotte)'은 상징적이다. 화웨이 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샬롯은 개인이 아니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도시 이름을 땄다. 현재 개발중인 다른 모바일반도체도 내부적으로 미국 도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화웨이 한 직원은 "미국 도시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언젠가 글로벌 공급망에서 우리의 자리를 되찾고자 하는 열망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FT는 "외국기술 의존에서 벗어나려는 중국의 야망은 화웨이와 SMIC 어깨에 달렸다"며 "기린9000S칩의 성공적 출시는 중국 반도체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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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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