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의 나라 캐나다, 이민 확대로 '몸살'

2023-12-04 11:24:33 게재

베이비부머 은퇴 메우려 최근 3년 130여만명 받아들여

주택가격 폭등에 실업률 상승… 연방정부 지지율 추락

김용호 언론인, 캐나다 토론토 거주

캐나다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인구의 23%가 이민자 출신이다. 이민자 비율은 G7 국가 중 가장 높다. 캐나다정부는 지난해 영주권자 43만1645명을 받아들여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5년에는 이민자수를 50만명으로 늘릴 방침이다.

캐나다는 이민정책을 국가경제 발전의 주요 원동력으로 정했다. 저스틴 트뤼도 총리가 이끄는 연방 자유당정부는 "100만명의 노동력 부족을 겪고 있는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더 적극적인 이민자 유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금융업체 '데자르뎅'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캐나다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며 "일할 수 있는 인력 대비 64세 이상 주민의 비율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신규 이민자를 더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2040년까지 생산가능인구가 매년 2.2%씩 증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캐나다 인구는 연평균 2.9%가량 증가했는데 증가분의 98%가 이민자에서 비롯됐다. 이민자의 약 66%는 25~54세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하면서 캐나다의 노동가능 인구비율은 감소세인데, 50년 전 7명이었던 노인 1인당 부양 근로자수는 현재 약 3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캐나다정부가 이민정책을 중요시하는 이유다.

실제 인구증가는 세수확대로 이어져 노동인력 고령화로 인한 의료비용 부담을 부분적으로 덜어주는 효과를 가져 오고 있다. 투자전문사 'TD 서큐러티스'의 한 경제전문가는 "지난 10년간 캐나다에 이민자가 대거 유입되면서 미국과 거의 비슷한 연 2%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경제성장 견인차, 하지만 큰 부작용도

캐나다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넓은 국토면적으로 자랑한다. 하지만 인구는 지난 7월 4000만명을 갓 넘었다. 이런 면에서 이민을 통해 몸집을 불리려는 시도는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그러나 연방정부의 이민정책은 주택문제와 의료난 등 각종 부작용을 낳았다.

특히 주택문제는 집권당인 자유당의 지지율을 바닥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지난 10월 기준 캐나다의 월평균 주택임대료는 2149달러(약 210만원)로 최고치를 찍었다.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온타리오주의 월세는 평균 2486달러(240만원)로 나타났다.

캐나다 주요 시중은행인 토론토도미니언(TD)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인구증가에다 건설경기 위축까지 맞물리면서 2023~2025년 사이 캐나다의 주택시장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것으로 전망됐다. 매매와 월세시장을 모두 포함해 21만5000가구가 부족할 것이란 전망이다. 보고서는 현재 상황에서 이민자 증가세가 더 가팔라지면 주택부족은 두배 더 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면서 월세뿐만 아니라 주택 매매가격도 치솟고 있다. 인구 증가에다 0%대의 저금리가 2~3년 지속되는 바람에 주택시장이 열기를 뿜었던 것이다. 토론토에서 집을 사려면 연간 가계소득이 22만6000달러(2억2000만원) 이상이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토론토지역부동산위원회(Toronto Regional Real Estate Board)에 따르면 최근 주택매물이 쌓이면서 거래가 주춤하지만 2013년과 비교했을 때 평균 매매가격은 80~120% 뛰었다. 50만달러(5억) 안팎이던 단독주택이 대부분 120만달러 (10억원)를 훌쩍 넘는다.

캐나다가 직면한 위협은 주택문제뿐만이 아니다. 이민을 통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연방정부의 의지와는 달리 실업률은 서서히 악화하고 있다. 10월 캐나다 노동시장은 1년여 만에 가장 낮은 일자리 증가율을 기록했고, 실업률은 21개월 만에 최고치로 올랐다. 일자리는 1만7500개 추가되는 데 그쳤는데 실업률은 9월보다 0.2%p 상승한 5.7%로 조사됐다. 지난해 1월 이후 약 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의 실업률이다. 일자리가 다소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이 오른 것은 10월 캐나다 인구가 약 5만8000명 증가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잡힐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8%로 집계돼 8월 4%보다 0.2%p 하락했지만 캐나다중앙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치가 2%라는 것을 고려하면 아직 심각한 수준이다. 티프 매클럼 중앙은행 총재는 "이민자 증가는 물가상승을 초래했고 이를 억제하기 위해 금리인상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캐나다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접어들고 있다고 경고한다. 최근까지 중앙은행 부총재를 역임한 폴 보드리 박사는 "현재 국내 경제성장은 매우 느리다. 1인당 비율로 보면 실제로는 뒷걸음질을 하고 있다"면서 "물가상승률이 3.5% 또는 4% 정도에서 계속 머문다면 국내 경제는 앞으로 정말 어려운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앙은행은 최근 정책보고서를 통해 올해와 2024년 성장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으며, 각 연도 성장률은 1.2%와 0.9%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민생 팽개쳤나" 연방정부 비판 목소리

월세와 주택가격이 가파르게 오른 데다 경제마저 침체국면에 빠져들자 연방정부에 대한 비판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정부가 주택공급이나 물가불안 등 민생문제 해결에는 신경 쓰지 않고 이민자 확대에만 혈안이 돼 있다고 비판한다.

지난 9월 나노스리서치의 여론조사를 보면 '연방정부가 이민자 유치 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응답이 53%로 나타나, 지난해 40%보다 13%p 증가했다.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63%의 응답자들이 '이민 때문에 주택문제가 악화되고 있다'고 응답했다.

내셔널은행(National Bank)의 경제전문가는 "주택공급 문제가 해결되는 시점까지만이라도 이민자 확대 정책을 보류해야 한다"면서 "현재 국내 주택공급과 수요의 밸런스는 기록적인 수준으로 흐트러져 있다"고 지적했다.

인구 증가는 의료 수요도 늘린다. 캐나다 의료시스템은 가정의를 통해 가벼운 진료를 받거나 전문의 예약을 잡는 구조인데 의료인 수는 그대로지만 인구는 늘면서 의료 사각지대가 생기고 있다. 전문의를 만나는 일도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연방정부는 최근 수술실 적체와 응급실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10년간 약 2000억달러를 투입한다고 최근 밝혔으나 의료 현장에서는 "근무환경 개선이나 인력 확충 등의 계획이 부족하다. 이 정도 지원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고 우려한다.

트뤼도 연방총리의 지지율은 8년 만에 최저치로 추락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나노스리서치의 최근 조사를 보면 '총리로 적합한 인물이 누구냐'는 질문에 응답자 32%가 연방 보수당 대표인 피에르 포일리에브를 꼽았다. 트뤼도 현 총리 지지율은 23%에 그쳤다. 또 오늘 당장 투표한다면 야당인 보수당이 현재보다 77석을 더 얻어 204석으로 다수당을 차지하고, 여당인 자유당은 69석에 그쳐 87석을 잃어버릴 것이란 조사결과도 있다.

이민정책의 빛과 그림자

여론이 심상치않게 돌아가자 연방정부는 다급해졌다. 지난달 말 마크 밀러 연방 이민부장관은 "이민자 유치 목표를 다시 설정할 때 주택이나 의료, 인프라 등 중요한 서비스 부문을 함께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밀러 장관이 지난 8월 취임할 때 "이민자 확대 목표치를 낮출 계획이 없다"고 딱 잘라 말했던 것과 비교하면 확연한 변화다.

또한 자유당정부는 주택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유학생 유치에 상한선을 두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캐나다로 오는 유학생은 2012년 27만4000여명에서 10년 만인 2022년 80만7000명으로 약 3배 증가했다.

주택공급 확대 정책도 내놓았다.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경제부총리는 최근 "캐나다 전역에 3만채의 임대주택을 건설하기 위한 기금 150억달러를 저금리로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주택업계는 공급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350만채의 주택을 더 건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추세라면 사실상 불가능한 목표다.

온라인 매체 블룸버그캐나다는 최근 "이민자 증가는 노동력 공급을 늘리고 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창출되지 않는 한 노동시장을 약화시키는 결과는 낳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매체는 경제학자들과 인터뷰에서 "이민자 증가로 올해 국내인구 증가율이 3% 이상 될 것"이라며 "이는 지난 30년 동안 평균인 1%와 비교해 엄청나게 많은 수치"라고 강조했다.

인구와 고용의 증가는 경제 전반에 시너지 효과를 만드는 반면, 소비자 지출을 늘려 중앙은행의 물가상승 억제 노력을 갉아먹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맥길대 크리스 라간 교수는 "이민자 급증 현상은 경기과열에 더해 주택수요를 부추겨 집값 상승과 주거난을 불러오고 있으며, 대중교통 인프라와 의료서비스 비용 증가 등 다양한 측면에서 캐나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