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철규 칼럼

부동산 PF 구조조정, 미루면 크게 터진다

2023-12-06 11:36:04 게재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 경제학

국내외 각 기관에서 한국경제의 내년을 전망하는 보고서들을 내놓고 있지만 설득력을 갖춘 전망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각종 경제지표가 혼조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반도체 수출이 16개월 만에 증가세를 보이고, 전체 수출도 10월부터 13개월 만에 증가세로 돌아서 11월에도 증가세가 유지된다는 것은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계청의 '10월 산업활동 동향'은 여전히 한국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날 조짐을 보여주지 못했다. 9월에 반짝 개선되었던 산업생산 소비 설비투자 지표가 10월 들어 모두 하락했다. 반도체 생산도 11.4% 감소해 9월의 12.8% 증가를 되돌려 놓았다.

정부의 낙관론은 이미 힘을 잃었고 이제 본격적인 경기침체가 올 것이라는 비관론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한국은행 총재는 내년에는 "취약계층, 빚을 많이 낸 사람, 소득이 낮은 사람들이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아 낙관론에 찬물을 끼얹었다.

내년의 경기상황에 대한 비관론의 중심에는 임박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시장의 위기를 경고하는 신호들이 자리잡고 있다. 금융시장 위기의 발화점을 꼽으라면 여기다.

'강남 청담동마저' 무너지는 PF시장

지난달 18일 서울 강남 청담동의 프리마호텔을 공동주택(아파트)과 오피스텔로 개발하는 '르피에드 청담' 개발사업이 브릿지론(토지구입을 위한 1차 대출)의 만기연장에 실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시장 관련자들 대부분은 "터질 것이 결국 터지나"라는 반응들을 보였을 것이다.

이후 지난 4월 정부가 주도해서 만든 '금융권 PF 대주단 협약'을 동원한 만기연장 재검토 소식이 전해지면서 또 한번 고비를 넘길 수 있을 것 같다는 분위기가 마련되기는 했다. 채권액 기준으로 1/3 이상(38%, 1800억원)을 선순위 대출한 새마을금고가 만기연장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새마을금고가 입장을 선회해 브릿지론 만기를 내년 5월까지로 연장하기로 했다. 새마을금고는 사업 시행사인 미래인이 제시한 이자 일부 상환과 신속한 서울시 인허가 진행 등의 조건을 받아들여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어쨌건 새마을금고가 애초 해당 부동산 프로젝트 사업의 사업성을 부정적으로 본 것은 합리적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주거용보다는 비주거용 부동산, 서울보다는 지방의 부동산 시장을 중심으로 스멀스멀 쌓여가던 불안감은 이 한건으로 '강남 청담동마저'라는 충격을 줬다. 만약 브릿지론 만기연장이 되지 않았다면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충격을 능가했을 가능성이 컸다.

금융당국이 지원해서 부동산 PF 만기연장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더 큰 문제가 남는다. 악성 부실을 쌓아나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에 대한 위기대응책이기 때문에 이미 당국은 위기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니 채권자들이 우물쭈물 만기연장에 따라가는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가능할지 알 수 없다. 조만간 고금리가 해소되고 부동산시장 상황이 좋아지리라는 낙관적 기대가 실현되기를 바랄 뿐인데, 합리적 근거가 없는 베팅에 불과하다.

이제 지난 시기의 극한적인 저금리 시대가 다시 돌아오리라고 합리적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한국은행 총재가 PF문제에 대해 "질서있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것은 금융당국의 맹목적 연장책에 에둘러 불만을 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9월 26일 발표된 '주택공급활성화 방안'의 핵심은 부동산 PF 관련 대책이라고 할 수 있다. PF 대출 보증규모와 보증한도를 상향조정하고, 계속할 수 있는 사업은 최대한 살리되 그렇지 못한 곳은 정리하겠다는 'PF 재구조화'가 언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건설사(시공사)의 '책임준공'이나 '보증'이라는 기형적 PF 구조를 손보겠다는 계획은 없었다. PF는 담보대출이나 신용대출과는 엄연히 다른데 한국 PF 구조는 이것들이 혼재되어 있다. 'PF 구조조정'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이유다.

건설업체 폐업건수 급증도 불안한 신호

부동산 금융의 또 다른 경고등은 급증하는 건설업체 폐업건수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올해 들어 11월 말까지 폐업신고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5% 이상 증가했다. PF 대출시장의 경색이 건설업체 폐업의 한 요인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당국과 언론, 그리고 시장 관계자들이 가계부채 문제에만 주목하고 있는 사이에 기업부채의 증가도 기록적이다. IMF 통계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대비 173%를 넘겼다. 문제는 그 증가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가 가운데 가장 크다는 점이다. 이러다 걷잡을 수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금융시장의 위기요인들이 터질까 우려된다.

한국의 부동산 금융, 이와 연결된 가계부채, 기업부채는 통제가능한가? 혹시라도 무턱대고 총선 때까지 미루어두자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정말 큰일이다.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