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전 칼럼

한국은 사라지고 있는가

2023-12-07 11:29:25 게재
김명전 칼럼니스트, 언론인

"한국은 사라지고 있는가." 지난 2일 자 뉴욕타임즈 사설 제목이다. 그 내용은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 수준으로 계속된다면 결국 인구붕괴에 가까운 상황이 올 것이라는 분석이다. 칼럼은 "낙관적으로 보아도 한국 인구가 수십년 간 이렇게 낮은 출생률이 계속된다면 수백만명 수준의 인구로 줄지는 않을지라도 2060년대까지 3500만명 이하로 급락한다는 추정은 신빙성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한국 사회는 위기에 빠지기 충분하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노인이 늘고 청년이 줄어 경제적인 쇠퇴를 피할 수 없고, 서유럽을 불안정하게 만든 이민자들을 (한국도) 대규모로 받아들이는 선택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빈곤 노인의 유기, 텅빈 유령도시, 퇴락한 고층건물, 은퇴자들의 부양을 떠안은 청년들의 대규모 이민 등이 불가피할 것이다. 또한 북한의 현재 출산율이 1.8명인 점을 고려하면, 청년의 급격한 감소로 인한 군사력 저하는 군사위기를 불러올 가능성도 높다"고 했다. 아픈 지적이다.

한국의 출산율 위기 경보는 2013년 시작되었다. 당시 출산율은 1.19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68명)에 못 미치는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8년에는 인구를 현상 유지하는 출산율 2.1명의 절반도 안 되는 0.97명으로 떨어졌다. 이미 5년 전에 세계 최하위권으로 추락한 것이다. 그 상황에서도 위기의식은 없었다.

2023년 현재 한국의 합계출산율 0.7명도 이런 추세라면 곧 0.6 명대로 추락할 게 분명하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1명이 평생에 걸쳐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수다. 출산율 0.7명이 무너지면 우리나라에서 1년 동안 태어나는 신생아수가 채 20만명이 안된다. 그 파장은 이미 유치원 초·중·고 등의 폐교로 나타나고 있다. 과연 이렇게 가도 되는가 싶다.

프랑스 스웨덴 출산율 정책이 본보기

인구감소는 경제가 선진국형으로 바뀌면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높아지고 노동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나타난다. 특히 선진국형 출산율 하락은 대체로 완만하게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면서 낮아지는 추세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한국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또한 별 위기의식이 없어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은행이 전국 25~39세 미혼·무자녀 기혼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출산율이 낮은 중요한 이유 두가지를 꼽았다. '높은 경쟁 압력'과 '고용·주거·양육 불안'이다. 경쟁 압력이 높은 집단은 희망 자녀수가 0.14명(16.1%)에 불과했다. 주거·교육·의료비의 부담이 결혼과 출산을 망설이는 주요인이었다.

인구학 분야의 권위자인 데이비드 콜먼(77)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의 지적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그는 한국처럼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에서 출산율이 낮은 원인으로 "가부장적 가족문화, 과중한 업무, 과열된 교육경쟁, 낮은 성평등 의식, 비혼 동거 문화와 출산에 대한 폐쇄성" 등을 들었다.

한국적인 배경도 지적했다. 혼인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출산에 대해 "도덕·비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너그러운 관점으로 혼전 동거 등을 바라보고 결혼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 등 선진국 경우 비혼 출생자가 30%에 달한다는 통계가 시사점을 준다.

한국이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까지 쏟아부은 예산은 무려 380조원 규모다. 그런데도 실패했다. 프랑스와 스웨덴 등 유럽의 출산율 정책이 본보기 사례다. 빈곤과 불평등 해소에 초점을 두고 있다. 출산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사회보장 정책을 제도화했다. 동시에 육아기간에도 임금소득을 100% 보장하는 보상정책을 마련했다. 한마디로 출산과 육아의 책임을 정부·기업·가정이 공동으로 지는 제도다. 그 결과 출산율은 크게 높아졌으며 현재 1.52명 수준이다.

부모 중심에서 아이 중심 지원체계로

한은이 OECD 35개국(2000∼2021년) 패널 모형 분석을 바탕으로 제안했다. 고용·주거·양육 등 출산여건 개선을 통해 출산율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층(15~39세) 고용률(현재 58%)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다. 출산 가족을 지원하는 정부지출(국내총생산 대비 1.4%)도 OECD 평균(2.2%)에는 맞추어야 한다고 했다.

그 밖에 실질적인 육아휴직 이용률도 OECD 평균(61.4주) 수준으로 높이는 것 등이다. 핵심적인 것은 "부모 및 정상가정(법률혼) 중심의 지원체계에서 '아이 중심의 지원체계'로 전환하는 한편, 다양한 가정 형태에 대한 제도적 수용성을 높여가야 한다"는 것이다. 옳은 제안이지만 정부의 수용력이 문제다.

한국은 사라지고 있는가? 뉴욕타임즈의 도발적 칼럼의 통찰력이 놀랍다. 정작 필자를 포함해 한국 언론은 그렇게 독하게 저출산의 문제를 짚지 못했다. '설마 사라지기야 할까'로 낙관할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울려 온 경종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

김명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