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고령화와 분배, 그리고 부채

2023-12-08 11:13:02 게재
유경원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고령화와 분배, 부채 세가지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이슈다. 모든 사회현상이 그러하듯 이들 역시 서로 연결돼 있다. 고령화가 가져온 소득분배 악화는 자산분배의 악화와 연결되고 고령층의 세대내 분배악화는 세대간 분배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 부채를 통해 이러한 분배문제가 보다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령화로 인한 불평등, 젊은층 빚 늘려

저출산과 기대수명 연장 등으로 야기된 고령화 영향이 우리 사회경제 각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고령화 영향 중 비교적 최근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 바로 고령화와 분배간 관계다. 그동안은 주로 저성장 이슈가 부각됐지만 최근 노년층의 빈곤문제와 함께 빠른 고령화에 따른 분배이슈도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고령화는 두가지 경로를 통해 소득분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먼저 일생주기에서 같은 연령대 안의 개인간 소득격차는 나이가 들면서 확대되고 이러한 불균등한 연령계층 비중이 고령화와 함께 불평등이 보다 악화되는 '연령내 효과'다. 다음으로 청년층의 소득이 크게 변화하지 않는 상황에서 중장년층의 소득이 상대적으로 커지면서 분배를 악화시키는 '연령간 효과'다.

한국은행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불평등의 원인을 두가지로 나누어 살펴본 결과 80% 이상이 연령내 효과에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연령간 효과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는데 이는 젊은층의 소득은 별로 늘지 않는 반면 중장년층의 소득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증가해 그 격차가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소득격차는 자산격차를 가져오고 고연령층의 자산격차는 자녀세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가난과 부의 대물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자료를 보면 학자금 대출 빚을 상환하지 못한 사회초년생들의 채무조정이 늘고 있다. 대학재학 당시부터 쌓인 대출이 사회 진출 후에도 쌓여 결국 개인파산이나 회생을 신청하는 젊은이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사회생활 시작부터 부모로부터 상당한 부를 상속·증여를 받는 반면, 그렇지 못한 청년들은 부채를 낼 기회를 사회로부터 제공받고 있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작한 청년들의 선택은 낮은 근로소득에 기반한 저축보다 자산가치 상승 기대를 반영한 투자다. 초저금리 시기 금융 접근성이 보장되면서 흙수저 그들에게 이는 하나의 기회로 간주됐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청년층은 자산취득이나 안정적인 주거확보를 위해 부채를 늘렸다.

사회 초년기에 소득격차가 크게 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산격차는 세대간 연계를 통해 보다 확대될 수 있다. 이러한 격차를 메울 방편으로 부채가 적극 활용된 것이다. 일정부분 자산을 늘릴 수도 있었고 이들 중 일부는 주거공간 확보, 즉 전월세 등을 위해 부채를 늘린 계층도 있다. 이것이 바로 최근 우리나라 가계부채를 세계 수위권으로 끌어 올린 젊은세대들의 '영끌'이다. 결국 고령화로 야기된 불평등이 젊은세대들의 빚을 증가시킨 주요 배경이 됐다.

청년부채 증가로 혜택 입은 고연령층

청년들의 부채는 자산시장의 붐을 불러왔다. '오늘이면 늦으리'라는 조바심, 혼자 뒤처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이들에게 자산시장에서 무엇인가 해야 하는 강박을 갖게 했다. 이를 뒷받침한 것이 바로 부채다.

이렇게 늘어난 부채가 자산가격과 전월세가격을 치솟게 했고, 부동산가격 급등은 또 다른 부채를 야기시켰다. 이 과정에서 치솟은 자산가격으로 혜택을 입은 이는 대부분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중장년 이상의 고연령층이다. 베이비부머들의 은퇴자산 가치를 젊은세대의 영끌을 동원한 부동산 매수세 합류가 키운 것이다. <그림> 에서 보는 바와 같이 순자산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50대 대비 20대의 순자산은 16% 정도이며 그나마 최근 5년 사이 그 격차는 14%p나 더 확대됐다.

고령화로 인해 소득분배 악화가 자산격차를 발생시키고 부의 격차가 자녀세대까지 연결되는 과정에서 젊은세대들의 선택은 부채였다. 이들의 늘어난 부채는 자산가격 상승에 불쏘시개 역할을 해 기존 부를 보유한 중고령층의 자산가치 상승을 가져와 연령간 격차를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또 자산가격 상승으로 쌓인 부를 자녀세대에게 넘겨줄 수 있게 되면서 이러한 상황은 보다 악화될 수 있다.

그 결과 청년들은 부채로 인해 재무건전성이 위협받고 있다. 영끌까지 동원한 이들의 원리금 상환부담이 경기침체기 어디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자산가치 상승을 기대하고 높아진 원리금을 납부하고 있지만 고물가 고금리가 유지되어 실질소득이 정체되거나 하락한다면 손절하는 순간은 보다 빨라질 수 있다. 더욱이 이들 이 부담해야 하는 사적부채뿐 아니라 미래의 사회보장 재원 부담까지 짊어져야 하기에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불평등 악화시키는 정부 정책들

고령화로 인해 이와 같은 세대내, 세대간 분배이슈가 최근에 급증한 가계부채로 심화되고 있음에도 정부의 정책 대응은 사뭇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듯하다. 먼저 소득분배 측면에서 그동안 누진적인 조세와 재정정책으로 시장 가처분소득 기준으로 분배는 지속적으로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으나 최근 들어 정부의 재분배정책 기능이 축소돼 우려를 자아낸다.

최근 도입 예정인 정책을 보면 정부의 재분배정책에 대한 기조를 확인할 수 있다. 종부세 대상자와 관련 세금이 대폭 준 것, 상속세 인하 움직임, 결혼 자녀에게 증여할 수 있는 금액을 2억원 추가해 유증금액을 확대시키는 방안 등 전반적으로 부의 대물림을 완화하는 기조로 변화하고 있다. 고령화로 인한 불평등의 심화, 그리고 부채의 증대로 인한 불평등의 악화 등을 고려할 때 이는 바람직한 정책방향과 거리가 멀다.

더 문제인 것은 젊은세대에게 지속적으로 부채를 권하는 정책이다. 최근 도입한 정책의 핵심은 젊은세대들이 장기부채를 통한 자산형성 기회를 잡으라는 것인데 이것은 그야말로 구성의 오류를 발생시킨다. 모두 빚을 지지만 이들 빚은 그들의 자산가치를 증대시키기보다 오히려 상대적인 자산격차를 더 확대시킬 수 있다. 젊음을 담보로 이들에게 이지머니를 공급해주고 이들에게 알량한 안도감을 주는 것은 우리 미래세대를 담보로 특정세대들과 특정계층의 부를 늘려주고 부의 대물림을 보다 강화시키는 결과만 가져올 뿐이다.

젊은층에게 빚을 권하기보다는 이들에게 부담가능한 주택을 공급해줘야 한다. 빚을 내어서 주택을 사고 자산형성 사다리를 올라타라는 것은 희망고문일 뿐이다. 부채보다는 주택가격의 하향안정화를 기하고 주택은 단지 주거를 위한 목적으로만 사용하도록 해야 우리 경제의 분배로 인한 갈등이 해소되고 부채가 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흙수저들의 인적자본 형성을 위해 부채가 아닌 다양한 지원을 통해 최소한 이들이 사회 출발선상에서부터 마이너스 인생을 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가안위까지 위협받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앞으로 더 귀해질 우리의 인적자산에 대한 투자를 사적부채로 조달하는 것이 아닌 일종의 공적투자로 생각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