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할까 계속될까

빈용기보증금 소비자돈을 일회용컵보증금에 사용

2023-12-11 10:46:50 게재

제도 취지 무색, 3년간 약 238억원 투입 … 전국 시행 번복 등 오락가락 정책 속 관련 업계는 기다리다 속만 타

"글쎄요. 크게 문제가 없을 거 같은데요. 빈용기 미반환보증금에서 쓰긴 했지만 결국 규정에 맞춰 자원순환보증금에서 일회용컵 보증금 시행에 필요한 예산이 집행된 거잖아요.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가 설사 운영이 되지 못한다 해도 다시 갚아야 할 의무는 없을 거 같아요."

5일 환경부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란 커피전문점 등에서 음료를 사서 일회용컵(플라스틱컵 종이컵)에 담아 가져갈 경우 소비자에게 보증금을 받는 제도다. 사용한 일회용컵을 매장에 반환하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정부 예산이나 기업 돈이 아닌 소비자 돈이 주축이 돼 운영하는 제도다.
오락가락 환경정책에 관련 업계는 사업 지속 여부를 두고 시름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18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서울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시민·환경단체 회원들이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을 촉구하는 장면. 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논란이 있긴 했지만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지난해 12월부터 세종 제주에서 시범 실시 중이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기본적으로 소비자들이 낸 돈으로 운영한다. 빈용기 보증금제 역시 마찬가지다. 소비자가 부담하는 빈용기 보증금과 빈용기 재사용 생산자(제조업자)가 부담하는 취급수수료를 통해 빈용기 회수 및 재사용을 촉진한다.

환경부는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시범실시하면서 기본적인 체계 구축 등을 위한 돈이 없었기 때문에 자원순환보증금에서 미리 가져다 쓰는 형태를 취했다. 하지만 자원순환보증금은 사실상 빈용기 미반환 보증금에서 마련된 재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맥주나 소주 등을 사면서 소비자들이 낸 돈이 정작 전혀 다른 용도인 일회용컵 보증금제에 사용된 것이다.

9월 7일 서울의 한 프랜차이즈 카페에 포장용 일회용 컵이 쌓여 있다. 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다시 갚겠다는 계획, 실현 어려울 듯 = 11월 22일 환경부에 따르면 일회용컵 보증금제 관련해서 △2021년 약 11억원 △2022년 약 123억원 △2023년 약 104억원(예상치)을 사용했다. 3년간 약 238억원이 들어갔다.

11월 22일 환경부 관계자는 "제주 세종 등지에서 시행하는 일회용컵 보증금제 관련 미반환 보증금 규모는 미미한 상황이니 빈용기 미반환 보증금 등에서 대부분 가져다 쓴 걸로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본디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시행하면서 초기 금액은 빈용기 미반환 보증금 등에서 가져다 쓰기로 했다. 대신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장기적으로 운영되면 관련 미반환 보증금 등이 쌓일 테고 자원순환보증금에 이들 금액이 들어가면 궁극적으로 갚게 된다는 논리였다.

문제는 일회용컵 보증금제 전국 시행이 사실상 물 건너간 분위기라는 점이다. 환경부는 2022년 5월 20일 일회용컵 보증금제도 시행 시기를 2022년 6월 10일에서 2022년 12월 1일로 늦춘다고 밝혔다. 2020년 관련 법 제도를 만들면서 준비 기간을 2년 뒀지만 또다시 6개월 연장해 시민단체들의 반발을 샀다. 2022년 12월 시행에 들어갔지만 세종과 제주에서만 시범적으로 실시돼 논란이 일었다.

정부 정책이 새롭게 만들어지면 관련 유관 산업이 생겨난다. 일회용컵 보증금제 역시 마찬가지다. 일회용컵 회수기기 등 중소기업들이 새로운 시장을 바라보고 투자에 나섰다. 하지만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이 계속 번복되면서 업계는 두 손 놓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문제는 중소기업 특성상 장기간 버틸 재정적 여력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업계에서 "시행을 하지 않을 거면 차라리 빨리 그냥 못한다고 얘기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피가 마른다"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사진 이의종

◆환경장관 "지속 여부 말하기 곤란" = 11월 2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가진 차담회에서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처음 설계부터 좀 문제가 있었다"면서도 "(일회용컵 보증금제 지속 여부) 이 부분에 대해서 딱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현장 돌아가는 상황을 계속해서 모니터링하고 효과 부분도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물론 정책은 사회 여건 등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방향으로든 민간에 미칠 영향은 분명 있을 수밖에 없다. 사전에 정책 변화에 따른 영향까지 꼼꼼하게 고민하고 결론을 내려야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설사 잘못된 정책이라 판단해 전면 수정할 때라도 말이다.

환경부는 큰 문제가 없다고 말을 하지만 일회용컵 보증금제에 들어간 비용은 원칙적으로는 회수가 되는 게 적절하다. 환경부 예규인 '자원순환보증금 반환 및 취급수수료·처리지원금 지급관리 등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보증금 반환 및 취급수수료·처리지원금 지급 등에 관한 사항은 자원순환보증금 실무협의회에서 결정한다.

환경부는 이에 따라 집행이 된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다.

생산자책임재활용(EPR)제도와 보증금제도는 순환경제 활성화를 위한 중요 정책들이다.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는 제품 생산자나 포장재를 이용한 제품 생산자에게 그 제품이나 포장재 폐기물에 대해 일정량의 재활용의무를 부여해 재활용하게 한다. 아주 간단히 설명하면 재활용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생산자가 책임지는 구조다.

반면 보증금제는 소비자가 부담하는 빈용기보증금 등으로 운영된다. 물론 제조업자가 부담하는 취급수수료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미반환보증금은 소비자가 낸 돈을 찾아가지 않은 금액이다. 환경부가 맥주병 소주병 등을 구입한 사람의 돈을 다른 데 썼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보증금제도 관리 기관인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 회계 상에서도 두 보증금은 분리해서 운영·관리된다.


◆탈플라스틱은 세계적인 흐름 = 논란이 계속되는 일회용컵 보증금제 전면 시행 여부와 관계없이 탈플라스틱은 이미 세계적인 흐름이다. 유럽연합(EU)은 2021년부터 플라스틱세를 부과한데 이어, 2030년부터 EU 내에서 유통되는 모든 플라스틱 용기에 재생원료를 30% 이상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할 전망이다. 게다가 내년에는 유엔(UN) 플라스틱 국제협약까지 만들어진다. 플라스틱 국제협약은 전세계적으로 플라스틱 오염에서 벗어나기 위해 생산부터 폐기까지 전 생애주기에 걸친 규칙을 만드는 협약이다.

굳이 멀리 EU사례까지 찾지 않아도 대만 등지에서도 탈플라스틱 움직임은 활발하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의 해외시장뉴스에 따르면, 대만 정부는 제로 플라스틱 목표 달성을 위해 플라스틱 제품을 △비닐봉투 △일회용컵 △플라스틱 식기 △빨대 등 총 4가지로 분류했다. 2002년 비닐봉투와 플라스틱 식기 규제 정책을 한차례 시행한 뒤 제한 범위를 넓혀가는 상황이다.

2018년 7월 대만 환경서는 약 10년에 달하는 장기목표인 '대만해양폐기물 관리행동방안'을 발표했다. 2020년부터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 제한 범위와 대상을 확대하고 2025년까지 모든 판매점의 플라스틱 제공을 제한하고 판매 가격을 조정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나아가 2030년까지 플라스틱 제품 제공 전면 금지를 목표로 한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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