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방치된 가습기살균제 출연금 50억원

2023-12-11 10:46:51 게재

국회 등 지적에도 변화 없어

환경부 "개입할 방법이 없다"

# "환경부는 (가습기살균제)피해자들에 대한 피해구제 확대를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옥시 출연금 관련한 사항은 피해자단체 등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수렴하여 합리적인 활용방안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2019년 2월 20일 환경부 보도설명자료 중)

# "2014년 옥시레킷벤키저로부터 법적 근거도 없이 50억원도 기부받았잖아요.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쥐고 있는 것이고. 이것은 어떻게 처리할 겁니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노웅래 (더불어민주당·서울 마포갑) 의원)

"그것은 여러 가지 합의가 되어야 쓸 수 있는 돈이지요. 저희들이 일방적으로 쓸 수 있는 돈은 아닌 것 같고요." (조명래 당시 환경부 장관)

2020년 10월 7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나온 말들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아픔│지난 8월 31일 서울역 앞 계단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참사 12주기 캠페인 및 기자회견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들의 유품이 놓여있다. 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2014년 2월 28일 환경부와 옥시레킷벤키저, 당시 환경보전협회 등은 기금출연협약서를 작성하고 서명했다. 이 협약서 제1조에는 '출연기업은 본 협약서의 제3조에 따른 위원회의 설립 후 협회가 지정한 은행계자로 금 50억원을 기부한다'고 규정했다.

문제는 2014년 3월 옥시레킷벤키저가 해당 금액을 입금했지만 위원회는 꾸려지지 못했고 10년째 방치돼 있다는 점이다. 세월이 흘러 당시 환경보전협회는 한국환경보전원으로 조직이 달라지는 등 여러 변화가 있었지만 해당 금액은 여전히 잠자고 있다. 게다가 한국환경보전원은 수변녹지 조성이나 생태복원, 환경교육 등을 하는 기관이다. 가습기살균제와 직접적인 업무 관계도 없는 곳에서 해당 금액을 계속 가지고 있는 것도 적합하지 않은 상황이다.

5일 환경부 관계자는 "담당자도 바뀌었고 오래된 일이라 정확히 일정 등은 기억나지 않지만 위원회 자체가 아예 설립이 안 된 걸로 알고 있다"며 "지금 상황에서 문제제기를 하는 피해자들도 없고 딱히 개입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고 말했다.

2014년 당시 옥시레킷벤키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인도적 기부금' 형태로 50억원을 출연했다. 피해자들은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기부금 수령을 거부하는 등 위원회는 꾸려지지 못했다.

2011년 세상에 처음 알려진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2014년이 되어서야 첫 공식 피해가 인정됐다. 2017년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특별법'이 제정됐지만 여전히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2021년 10월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가 출범했고 옥시레킷벤키저 애경산업 등에게 피해 분담금 부담을 권고했지만 진전이 없었다. 이러는 중에도 피해 규모는 계속 늘고 있다.

지난 24일 환경부는 제37차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위원회를 열고 649명에게 구제급여를 지급하기로 했다. 이번 결정으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총 5417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시민단체나 피해자들이 주장하는 규모는 이보다 훨씬 많다.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발표한 '가습기살균제참사 종합보고서(2022)'에 따르면 가습기살균제 사용 추산 인구 규모는 약 627만명이다.

하지만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가 피해자에게 손해 배상을 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은 지난달에야 처음으로 나왔다. 소송을 제기한 지 9년 만에 나온 판결이다. 대법원 제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11월 9일 A씨가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인 옥시레킷벤키저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상고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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