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 칼럼

말라붙은 아랄해가 던지는 교훈

2023-12-12 11:46:31 게재
김수종 언론인, 전 한국일보 주필

21세기가 깊어가면서 지구환경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물 관리 문제, 특히 물기근이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기후변화에 의한 강수량의 변화가 원인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한정된 수자원을 무분별하게 마구 퍼다 쓰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아랄해(Aral Sea)의 소멸은 특히 교훈적인 사례다.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 걸쳐 있는 아랄해는 60년 전만 해도 남한 면적의 2/3, 즉 6만8000㎢의 세계 4대 염호였다. 내륙에 자연적으로 생성된 바다로 철갑상어를 비롯한 각종 어류가 서식하고 어선은 물론 여객선과 화물선이 왕래하는 이 지역 교류의 중심지였다.

그런데 그렇게 넓은 호수가 지금은 물이 말라버리고 소금을 품은 모래바람이 날리는 사막으로 변해버렸다. 1960년대 위성사진을 보면 아랄해는 그 서쪽에 위치한 카스피해(Caspian Sea, 면적 37만㎢)와 더불어 중앙아시아의 황색 사막지대에 박힌 두 개의 검푸른 눈처럼 뚜렷하게 보였다. 그러나 요즘 나온 위성사진을 보면 아랄해의 본디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가느다란 물줄기만 몇가닥 보일 뿐이다.

미국의 전 부통령 앨 고어가 상원의원이던 1980년대 말 물 빠진 모래벌판에 쳐박힌 녹슨 어선을 소개하며 환경재난을 경고한 이래 아랄해는 환경문제를 연구하거나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필수 답사코스의 역할로만 남아 있는 듯하다.

'아랄해'가 '아랄쿰사막'으로 탈바꿈

최근 뉴욕타임스는 아랄해의 참상을 사진과 함께 소개했다. 끝없는 사막의 모래밭 위에 녹슬고 허물어진 배들이 줄지어 서 있는 사진과 함께 한때 번창했던 어항 무이나크 주변의 황량한 변화 모습을 전했다. 호수의 넓이가 원래의 10%만 남아 있어 한때 아랄해 최대 어항 무이나크에서 호수 해안까지는 200㎞나 떨어져 있다. 이젠 이름도 '아랄해'가 아니라 '아랄쿰사막'으로 바뀌었다. 아랄쿰 사막은 세계에서 가장 어린 사막이라고 한다.

아랄해의 소멸은 그 주변 지역 약 3500만명의 주민들 삶에도 큰 변화를 일으켰다. 무이나크를 비롯한 어항은 캐비어 황금잉어 등 모스크바 식탁을 풍요롭게 했던 수산물의 집산지로 융성했으나 지금은 유령도시로 변했다. 넓은 호수 주변은 산림과 경작지가 발달했으나 이젠 사막화로 산림과 농업이 붕괴됐다. 고기가 헤엄치던 호수 바닥은 사막이 되어 염분과 각종 오염물질로 오염되었으며 모래바람이 몰아치면서 기형아 출산 등 주민들의 건강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많은 주민들이 먹고 살길을 찾아 주변국가나 모스크바 등지로 떠나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했다. 아랄해의 소멸은 일종의 환경난민을 만든 것이다.

아랄해의 비극의 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물 관리의 실패다. 아랄해는 중앙아시아의 사막지대에 고립된 호수다. 다른 어떤 호수보다도 증발이 심하다. 그 증발을 보충해주는 것이 중국의 텐산산맥 등 중앙아시아의 고원지대의 빙산에서 발원하는 두 개의 큰 물줄기 '시리다리야'강과 '아무다리아'강이다. 이 두 강줄기에서 흘러오는 유량이 아랄해의 증발량을 보충해주며 평형을 유지했던 것이다.

1960년대 소련정부는 이 강의 물길을 막아 대대적인 목화재배를 위한 관개사업을 벌였다. 소련정부는 목화재배에 성공하는 대신 물을 잃었다. 즉 담수를 공급받지 못한 아랄해는 결국 말라버린 것이다. 20세기 최대의 물관리 실패작이라 할 수 있다.

소련이 일찍 붕괴했기에 망정이지 소련공산당은 더 큰 물의 재앙을 불렀을지도 모를 담대한 계획을 수립하기도 했다. 아랄해가 말라가는 것을 보면서도 소련당국은 면화생산에 재미를 붙여 지구 최대의 담수호 바이칼호의 물을 3500㎞나 떨어진 아랄해 지역으로 보내는 거대한 관개시설 프로젝트를 계획했다가 소련해체로 중단했다.

"모두가 하류에 산다(Everyone lives downstream)." 1999년 유엔이 정했던 '물의 날' 표어다. 빙하와 같은 자연현상이든지, 댐이나 관개시설 등 인간이 만드는 물길은 하류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아랄해가 교훈적인 사례다.

물도 에너지도 물쓰듯 쓰면 대가 치러

근년에 물 문제는 정말 심각해졌다. 파키스탄 홍수와 같은 물이 많아서 생기는 문제도 적지 않지만 물부족으로 파생되는 문제들이 더욱 심각하다. 아프리카의 가뭄과 물기근은 말할 것도 없고, 남유럽 북아메리카에서 극심한 물부족과 산불이 기승을 부렸다. 산불은 물부족의 다른 모습일뿐이다.

미국 서부의 젖줄인 콜로라도강 수량이 줄어들자 미시시피강물을 퍼서 보내자는 아이디어가 나오는가 하면, 중국의 물부족을 메꾸기 위해 남극의 빙하를 끌어다 쓰자는 얘기도 나올 정도다. 기상천외한 발상이지만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은 물 문제가 견디기 힘들게 압박해 온다는 메시지다.

한국은 유엔이 분류한 물 부족국가이지만 아직 여유로워 보인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심해지면 한순간 이런 평정이 깨질 수 있다. 물이나 에너지나 물쓰듯 하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김수종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