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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지정학 리스크와 한중관계의 미래

2023-12-15 12:02:35 게재
조성렬 경남대 군사학과 초빙교수, 전 주오사카 총영사

미국이나 일본, 서유럽에 못지않게 한국인들의 반중정서가 매우 높다. 이처럼 세계 각국의 반중정서가 높은 것은 단지 전략경쟁하고 있는 미국의 선전·선동 탓으로 돌리기에는 너무 광범위하고 뿌리깊다. 특히 시진핑 체제가 들어서면서부터 중국이 취한 전랑(戰狼)외교 등 각종 공세적인 외교정책은 반중정서에 기름을 부었다.

중국으로선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빼앗겼던 영향력을 되찾으려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중국측 논리대로 한다면 국제질서는 약육강식의 대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중국측 주장은 주변국들이 볼 때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현상변경, 옛 중화체제의 부활 시도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한국과 관련, 중국은 주한미군 사드 배치에 대해 보복을 가했고, 문재인 대통령 방중 때의 홀대 논란 및 정부 입장을 밝힌 '삼불방침'을 '삼불합의'라 우기며 이행을 압박하는 등 오만함을 보였다. 또한 코로나19 종식 이후 시진핑 주석의 첫 해외순방지가 한국이 될 것이라던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브레진스키의 중국발 리스크 경고

미국 지전략의 대가인 브레진스키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전략적 비전'(2014)에서 미국이 글로벌 차원에서 쇠퇴했을 때 지정학 위기에 처할 나라로 한국과 대만 등 8개국을 꼽았다. 그가 꼽은 한국과 대만의 위기는 중국발이며, 특히 한국의 지정학 위기는 단순히 중국의 굴기 때문이 아니라 중국의 해양패권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은 선진통상국가로서 석유를 비롯한 원부자재 거의 대부분과 수출상품의 상당 부분을 한반도 주변 해역과 동·남중국해의 해상교통로를 통해 운반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도련전략과 구단선(九段線)의 영해선화, 배타적경제수역(EEZ) 정책을 통해 서태평양 해역에 대한 제해권을 강화하고 있어 우리의 해상교통로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먼저, 도련전략 추진에 따른 동·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해양통제력 강화다. 1982년 류화칭 제독이 연안방어를 넘어 근해, 원양으로 확대하는 적극방위전략을 제시했다. 2010년 목표의 제1도련선을 넘어 2020년 목표의 제2도련선도 이미 완성됐으며, 2035년까지 알류샨열도와 하와이·뉴질랜드 일대를 연결하는 제3도련선 통제는 추진 중이다.

다음, 구단선의 영해선화에 따른 남중국해 해상교통로 제약이다. 구단선은 중화민국 시절의 십일단선 설정에서 비롯됐으나 중화인민공화국이 이를 계승해 1953년 구단선으로 변경 발표해 오늘에 이르렀다. 시진핑정권에 들어와 남중국해 암초에 인공섬을 쌓고 군사기지를 건설해 주변국들과 분쟁을 빚고 있으며 우리 해상교통로도 중국 통제에 들어갈 위험이 있다.

본질적인 문제는 중국의 EEZ 정책에 따른 마찰이다. EEZ은 에너지자원 어업권뿐 아니라 해군의 이동통로로서 중요하다. 중국은 '형평원칙'에 따른 EEZ 획정과 EEZ 내 무해통항권 제한으로 갈등을 빚고 있다. 특히 이어도 주변수역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하며 한국선박의 퇴거 명령과 해양조사선·감시선 파견, 항공기 정기순찰로 우리 해양주권을 위협하고 있다.

끝으로, 중국이 대만 무력통일을 추진할 경우 한반도의 전쟁 연루 위험성이다. 2022년 10월 제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은 대만에 대한 무력사용을 경고했으며, 금년 11월 15일 샌프란시스코 미중 정상회담에서 2027년, 2035년 대만 침공계획을 부인하면서도 무력 사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한반도는 제2전선이 될 위험성이 높다.

중국발 리스크 아직 현실화되지 않아

브레진스키는 미국 쇠퇴 이후 한국이 취할 수 있는 두가지 전략 옵션을 제언했다. 제1옵션은 중국의 지역패권을 인정하고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고, 제2옵션은 가치와 위협인식을 공유한 일본과 안보협력을 강화해 안전보장을 추구하는 것이다. 미국의 핵확산금지 정책 때문에 제3옵션이라고 할 수 있는 핵무장에 의한 독자 안전보장 방안은 언급하지 않았다.

제1옵션에 대해 브레진스키는 한국민들이 옛 중화체제로의 회귀를 원치 않기 때문에 이 옵션을 채택하기 어려울 것으로 평가한다. 특히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과 만났을 때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속국"이라는 인식을 드러낸 이상, 한국이 이 옵션을 선택할 가능성은 없다.

제2옵션의 채택도 과거사문제로 인해 한일 안보협력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문재인정부 때는 일본군 위안부 및 강제동원피해자 문제로 한일 안보협력이 거의 진전되지 못했다. 윤석열정부는 제3자 변제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해 과거사 갈등의 봉합을 시도했다. 일본과의 안보협력을 위한 걸림돌 제거의 의도로 보인다.

제3옵션이 있다면 그것은 한국의 자체 핵무장이다. 국내에서 간헐적으로 제기됐던 자체 핵무장론은 작년 9월 북한이 핵사용 가능성을 담은 '핵무력정책법' 제정 후 다시 힘을 얻어 올 1월 초 윤 대통령 발언으로 최고조에 달했다. 그 뒤 한미 핵협력그룹(NCG) 창설과 핵전략자산의 수시전개를 약속한 '워싱턴선언'을 채택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제1옵션은 한국민에게 옛 중화체제의 부활이라는 악몽의 재현이 될 수 있다. 윤석열정부는 한일 군사협력과 자체 핵무장을 모두 외치다 금년 3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제2옵션의 길을 열었고,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워싱턴선언'을 통해 제3옵션을 포기했다. 마침내 8월 캠프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최종적으로 제2옵션을 채택했다.

해상교통로 보장이 한·중 협력의 관건

전직 외교관과 국제정치학자들 가운데 윤석열정부의 선택이 과정은 서툴렀으나 결론은 옳았다고 평가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과정도 서툴렀을 뿐 아니라 결론도 성급했다. 브레진스키 제언의 배경이 된 '미국 쇠퇴'라는 전제가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쇠퇴'는 장기적으로 그렇게 될 수 있겠지만 아직 실현된 게 아니다.

미국은 경쟁국들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경제력이나 군사력 등 종합국력 면에서 상당 기간 세계 1위를 유지할 전망이다. 단·중기적으로 중국이 미국의 패권을 대신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미 미국은 안보 소다자주의를 조직하고 글로벌공급망 재편을 통해 중국의 굴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윤석열정부의 성급한 제2옵션 선택은 현실의 국익과 현실화되지 않은 장기 리스크 대비를 혼동한 것이다. 중국은 여전히 우리의 가장 큰 시장이고 희토류 등 자원의 주요 공급처이자 한반도 평화통일과 비핵화를 위한 안보협력 대상이다. 지정학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한미일 안보협력 제도화,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참여하더라도 단·중기 국익을 놓치는 건 오판이다.

현 단계 한국의 외교방향은 한미동맹에 기반하면서도 중국에 유연하면서 원칙있는 접근이 돼야 한다. 중국-대만문제에 대해 당사자에 의한 평화적 해결이라는 원칙적 입장을 취하는 정도가 바람직하다. 최근에도 충돌을 빚었던 동·남중국해 해양영유권 문제는 무력이 아닌 대화를 통한 외교적 해결을 촉구하는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족하다.

하지만 중국에 의한 해상교통로 위협이 현실화된다면 한국으로선 국익 수호를 위해 한미일 안보협력의 강화로 맞설 수밖에 없다. 이미 '캠프데이비드 공동성명'은 '한미일 해양안보협력 프레임워크'를 만들고 여기에 아세안과 태평양도서국들을 끌어들여 중국의 해양패권 도전에 맞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반중연대만으로 지정학적 충돌을 피하기 어렵다. 중국이 참여하는 다자 해양협력안보체로 새로운 해양질서를 구축해 어떤 상황에서든 항행의 자유를 보장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됐을 때 한국의 합리적 안보우려가 해소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 한중관계도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성렬 경남대 군사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