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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사랑기부제, 고향납세 교훈 제대로 배우길

2023-12-20 11:35:44 게재
하동현 전북대 행정학과 교수, 공공갈등과 지역혁신연구소 소장

사회에서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할 때 대안이나 해결책을 어디에서 탐색해야 하는가? 때때로 외국의 경험이나 사례에 주목한다.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외 국가들이 어떻게 풀어갔는지를 살펴본다.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의 경험을, 선진국은 비슷한 성숙도를 자랑하는 국가의 유사 경험을 조사하거나 모델로 삼아 처방전을 찾는다.

타국의 아이디어 제도 정책 등을 활용해 자기 나라의 정책이나 제도를 발전시키려는 현상을 정책이전(policy transfer)이라 부른다. 이것은 해법을 구할 때 발생하는 불확실성이나 리스크를 감소시키고 시간비용을 줄여 준다. 도입의 논리적 정당성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정책이전은 해외의 사례를 그대로 복사하는 것만은 아니다. 국가별로 처해진 환경적 맥락이나 해결하려는 행위자들의 의도나 목적, 가용자원이나 시간 등에 따라 이전되는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 원산지의 재료나 물건이 수출되는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첨가되거나 변형 혹은 새로운 버전으로 탄생되기도 한다. 선택적으로 모방하거나 혼합되거나 합성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타국 사례를 어떻게 인식하고 학습하느냐, 문제해결에 어떤 방식으로 적용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합리적이고 적합한 교훈을 도출해야 타당한 정책을 마련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정책입안자들은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선진국의 제도나 정책들에 관심이 많다. 그만큼 대상에 대한 정확한 학습과 교훈도출, 토착화된 제도적 변용이 필수적이다.

일본의 고향납세에서 배워야 할 것들

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 첫해를 맞았다. 급여생활자들이 사회적 기부를 활발히 해 지방정부의 재원 부족이나 지역 활성화에 다소나마 도움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우리나라 제도의 모델인 일본의 고향납세는 2008년 5월부터 시작됐다. 소멸위기에 처한 지방정부가 재원을 확보하고 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설계됐다.

일본 또한 초기 몇년 동안 모금액이 저조했다. 2008년 약 81억엔, 2013년 145억엔 등 별다른 성장세를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점차 모금액수가 급증해 2014년 약 389억엔, 2019년 약 4875억엔, 2022년 9654억엔 등 첫해와 비교해 100배 이상 확대됐다. 무엇보다 주민들의 기부 건수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는데, 2008년 약 5만건에서 2022년에 약 5200만 건을 기록했다.

고향납세는 지방정부가 스스로 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자신들의 노력으로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자율성과 책임성을 전제로 분권시대의 원리를 기반으로 운영된다고 볼 수 있다. 기부금을 모으고 이에 대한 답례품을 제공하는 것도 그러한 취지의 소산이다.

지방의 자율적 의지를 키운다는 차원에서 세부적인 제도보완이 꾸준하게 이루어졌다. 세금 확정신고를 하지 않아도 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했고(원스톱 특례제도), 지방정부가 필요한 사업에 목표금액을 설정하고 기부금을 모을 수 있게 했다(크라우드펀딩). 지역에서 지원하고 싶은 창업자에게 투자할 수 있게 한다(고향창업가 지원프로젝트). 기부 홍보 답례품 등은 일정한 공간과 절차에 따라 실시된다. 플랫폼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방정부의 상황과 전략에 맞게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는 민간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기부 편리성이 좋아지면서 2015년을 전후로 기부액이 급증했다.

모금 경쟁력 키울 역량 구축의 제도를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이러한 제도적 핵심을 잘 간파해 우리 실정에 맞게 구현하고 있는가? 최근 고향사랑e음이라는 플랫폼이 쟁점이 되고 있다. 복수의 민간 플랫폼이 구축되어 있는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플랫폼 한 곳에서만 홍보와 모금을 진행하고, 답례품을 제공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정부 산하 기관인 한국지역정보개발원이 이를 독점적으로 운영한다.

플랫폼을 구축하는 비용을 지불하고 모금행위를 하는 주체는 지방정부다. 그럼에도 운영의 의사결정에는 자율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고 전략에 맞는 선택권도 제약되고 있다. 자신의 상황에 맞는 모금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역량구축의 제도설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공공이 하느냐 민간이 하느냐의 플랫폼 운영 주체의 논란은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 일본의 고향납세가 시사하는 교훈을 잘 파악해 토착화된 우리의 제도로 새롭게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