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국회합의 무시·입법절차 외면한 대통령실과 정부

2023-12-22 10:45:17 게재

기재부,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 기습 입법예고

대주주 주식양도세 부과기준 10억→50억으로

주저하던 기재부, 대통령실 강행의지에 '백기'

세수 부족에 또 부자감세, 여야합의 일방파기

단 이틀 입법예고 … '야당과 협치' 더 멀어져

정부가 주식 양도세를 부과하는 대주주 요건을 10억원에서 50억원으로 완화했다. 연말 증시 혼란을 막기 위해서란 설명이다.

국회에서 통과된 2024년도 예산안 | 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들이 자리한 가운데 2024년도 예산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올해와 내년까지 60조원대 세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또 부자감세냐'는 비판에 할 말이 없게 됐다.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결정한 내용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뒤집었다는 점도 파장이 크다. 앞으로 다수당인 야당과의 협치는 더 어려워지게 됐다. 유례없는 '이틀짜리 입법예고'로 '꼼수 행정'이란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입증수치도 제시않고 '무리수' 강행 = 2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21일 이런 내용의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상장주식 양도세 과세 대상 기준(대주주) 중에 종목당 보유금액(개인별)을 현행 '10억원 이상'에서 '50억원 이상'으로 조정했다. 올해 12월28일 기준 상장종목당 '10억원 이상∼50억원 미만'을 보유한 투자자도 내년부터는 주식 매도(내년 1월1일 이후 매도분)에 따른 양도차익 과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2022년 기준 종목당 대주주 양도세 과세대상은 약 7045명으로 고액자산가들이다. 과세 기준이 완화되면 양도세를 내야 하는 사람이 절반 이상 줄어들 전망이다. '세수펑크' 와중에 또 부자감세를 하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국회 기재위 강준현(더불어민주당·세종시을) 의원은 "정부가 겉으로는 건전재정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감세를 추진하는 표리부동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명분은 '시장 혼란 방지'다. 기재부는 "자본시장 상황을 고려하고, 과세 대상 기준 회피를 위한 연말 주식 매도에 따른 시장 변동성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결정을 내린 구체적인 판단 근거와 효과는 제시하지 못했다.

종목당 주식을 10억원 이상∼50억원 미만으로 보유한 이들의 양도세금을 면제해주는데도, 이에 따른 세수 감소액 추정치도 제시하지 못했다.

연말 주식시장 변동성을 완화하겠다는 정책 목표도 막연했다. 박금철 기재부 조세총괄정책관은 브리핑에서 "기준을 바꿈으로써 전보다 시장 변동성이 줄어들 거란 기대를 갖고 정책을 결정했다"면서도 "계량화된 숫자로 효과를 분석하는 건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협의 한번 없이 여야합의 번복 = 대주주 양도세 기준은 지난해 세법개정안 처리과정에서 한 여야합의와 연계돼 있다.

현행 대주주 기준인 '10억원 이상'은 지난해 여야 합의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도입을 2년 연기하는 대신 2024년까지 유지하기로 결정된 내용이다.

2025년 시행 예정인 금투세는 대주주에게 부과하는 양도소득세 제도를 없애는 대신에 모든 투자자의 주식 양도차익에 과세하는 법이다. 지난해 여야 협상 당시 기재부는 종목당 100억원으로 대주주 양도소득세 기준을 완화하자고 제안했지만, '부자 감세'라며 반발한 야당과 정부 여당이 협의한 끝에 10억원으로 유지됐다. 대주주 양도세 기준과 금투세 시행시기와 기준 등이 여야합의로 연계된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여야 합의를 번복하면서 야당과 협의 절차 한 번 거치지 않았다. 오히려 며칠전까지 추경호 부총리나 최상목 부총리 후보자를 비롯한 기재부는 "대주주 양도세 기준 완화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기재부는 야당에 입법예고 사실을 사후 통보했다. 국회 기재위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이날 성명을 통해 "지난주까지도 기재부 쪽에서 주식양도세 완화 추진 시 일방통행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물밑에서 했었다"며 "그러나 협의는커녕 사후 통보로 뒤통수를 쳤다. 당당하게 할 거라면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9일 인사청문회에서 계획을 밝혔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배병관 기재부 금융세제과장은 "(야당과) 협의해서 결정하려면 너무 지연돼서 (협의하지 않았다)"며 "기존에 여야가 합의한 부분을 고려해 (지난해 기재부가 제시했던 100억원보다 적은) 50억원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같은 무리수는 대통령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기재부는 최근까지도 '여야합의를 일방적으로 번복하면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란 이유로 유보적 입장이었는데, 용산(대통령실)의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토로했다.

◆"앞으로 법개정 어찌 하려고" = 대통령실과 정부의 무리수로 앞으로 법개정 등 야당과의 협치는 더 꼬이게 됐다. 국회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이 찬성하지 않으면 법 개정 자체가 안되기 때문이다.

실제 정부의 일방통행으로 인해 최상목 후보자의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여부를 논의하려던 기재위 전체회의는 취소됐다.

민주당 기재위 관계자는 "불과 일주일 전, 검토한 바 없다고 추경호 부총리가 밝혔다. 대통령실이나 정부는 이 문제를 국회와 논의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그동안 국회를 속여온 것"이라며 "지난해 국회에서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사안에 대해 국회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파기한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형식적인 입법예고'에 대한 비판도 크다. 기재부는 22일까지 입법예고를 마친 뒤 오는 26일 국무회의를 거쳐 연내 개정을 완료할 계획이다. 입법예고를 통해 이해관계자 의견을 듣는 기간은 단 이틀이다.

김대규 법무법인 티와이로이어스 변호사는 "입법예고는 법령 시행 이전에 이해관계자의 이견을 듣고, 이를 반영해 보완하기 위한 절차로 적어도 1~2주의 예고기간을 두는 것이 관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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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홍식 박준규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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