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성탄절 공습에 250명 사망

2023-12-26 10:54:54 게재

유엔 안보리 결의안 채택 무색 … 네타냐후 "전쟁 끝나려면 멀었다"

지난주 유엔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인도적 지원을 확대하는 결의를 가까스로 채택한 것이 무색하게 성탄절에 이어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하루 사이에 250여명이 추가로 숨졌다. 이미 2만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고 국제사회의 전쟁 중단 압력이 거세짐에도 불구하고 하마스 제거를 명분으로 한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습은 계속되는 상황이다.
25일 가자지구 남부 데이르 알발라의 알아크사 병원에서 대규모 장례식이 열렸다. 장례식에서 이스라엘의 밤샘 알마가지 난민촌 공습으로 사망한 팔레스타인인들이 그들의 친척을 애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 보건부는 25일(현지시간) "지난 24시간 사이 250명이 숨지고 500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이로써 10월 7일 개전 이후 총사망자는 2만674명(부상자 5만4536명)으로 늘었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가자지구 중부 알마가지 난민 캠프가 24일 밤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파괴돼 최소 70명이 숨졌다.

아시라프 알쿠드라 가자지구 보건부 대변인은 "이번 공습이 주거 지역을 대상으로 이뤄졌으며 많은 가족이 그곳에 살고 있었던 만큼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수 있다"면서 "희생자 중 상당수가 여성과 어린이"라고 밝혔다. 성탄절 몇 시간 전에 시작된 공습은 25일 새벽까지 계속됐다.

뿐만 아니라 알마가지 인근 알부레이즈와 알누세이라트에서도 이스라엘 공습으로 8명이 숨지고 남부 칸 유니스에서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23명이 숨지는 등 곳곳에서 사상자가 속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성탄 메시지에서 가자지구를 포함해 전쟁에서 죽어가는 어린이를 "오늘날의 작은 예수들"이라고 부르며 개탄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군은 "보고를 확인하는 중"이라며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성탄절 연휴 간 이스라엘 군인 17명도 전투 중에 사망해 이스라엘군이 8주 전 지상전을 시작한 이후 전사자는 156명으로 늘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여당인 리쿠드당 의원들에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며칠 안에 전투를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싸울 것"이라며 "전쟁은 오래 걸릴 것이고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고 덧붙였다.

네타냐후는 이날 의회 연설에서도 "군사적 압박이 없었다면 100명 넘는 인질의 석방은 어려웠을 것"이라며 "남은 모든 인질의 석방 역시 군사적 압박 없이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가자지구에는 129명의 인질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스라엘 정부는 이들 중 27명 정도가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스라엘 전쟁 내각이 이집트가 제안한 가자지구 전쟁 종식을 위한 3단계 해법을 검토할 예정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사우디아라비아 아샤르크TV가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이집트의 중재안은 총 3단계에 걸쳐 가자지구에서의 적대행위를 끝내고 하마스 등 무장세력에 붙잡힌 인질들을 모두 풀어주는 방안을 담았다. 특히 하마스가 이스라엘 인질 가운데 여성과 노약자 등 40명을 석방하고 2주간 전투를 중단하는 1단계는 이스라엘이 앞서 하마스에 제안한 내용과 일치해 협상에 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루살렘포스트 등은 전했다.

이에 대해 네타냐후는 가자지구 평화를 위한 선결 조건으로 하마스의 파괴와 가자지구 비무장화, 급진주의 포기 등 3개 항목을 제시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첫째로, 이란의 대리인인 하마스는 파괴돼야 한다"며 "그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국제법을 완전히 준수하는 행동을 지속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는 특히 도전적인 과제인데 그 이유는 하마스가 민간인을 인간 방패로 삼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민간인 희생의 책임을 하마스에 돌렸다.

네타냐후는 이어 "가자지구는 비무장화돼야 한다"라면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가자 지구를 비무장화할 것이라는 기대는 몽상"이라고 말했다. 또 "가자지구는 급진주의 포기가 이뤄져야 한다"며 "학교는 아이들에게 죽음보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도록 가르쳐야 하고, 성직자는 유대인 살해 설교를 중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가자지구 통치권을 넘기지 않고 전후에도 가자지구에 군을 주둔시키겠다는 가능성을 언급한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유엔 안보리는 지난 22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의 인도주의적 지원을 확대하기 위한 결의를 채택했다. 안보리 결의안을 반대해 오던 미국이 수차례 표결을 연기하며 내용을 수정한 끝에 반대 대신 기권을 해 결의안이 채택됐다. 하지만 성탄절 공습으로 또 다시 민간인이 대량 살상당하면서 이마저도 무색하게 됐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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