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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정말 경제성장에 부정적인가

2023-12-29 11:21:29 게재
김영세 성균관대 교수, 경제학

경제성장은 평균적인 생활수준이 지속적으로 향상되는 것을 의미하며, 가장 중요한 거시경제의 장기목표다. 보다 높은 수준의 삶의 질을 달성하기 위해 경제학에서는 인구변화와 자본축적 사이의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경제성장의 원인과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어 왔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인구 자체 또는 인구구조의 변화가 초래하는 잠재적인 영향까지 구체적으로 고려하지 않았다.

18세기 경제학자 토마스 맬서스는 인구증가가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가장 위협적인 요인이 된다고 보고 도덕적 자제를 통해 인구를 줄여 빈곤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류가 영원히 빈곤상태에 머물 것이라는 맬서스의 예측이 잘못이었음이 이후 입증됐지만, 경제학적 관점에서 인구변화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생활수준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은 무시될 수 없다.

기술진보와 생산성향상이 부정영향 상쇄

1970년대 이후 선진국을 중심으로 합계출산율이 지속적으로 줄고 1990년대 들어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화가 본격화되면서 고령화라는 인구구조 변화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중요한 이슈로 자리잡았다. 최근에는 의료기술의 발전과 사회안전망 확충으로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더 높은 생활수준을 영위하고자 하는 합리적 유인으로 전세계적 인구고령화 속도를 높이고 있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저출산과 고령화는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트렌드이며 선진국에 비해 3배정도 빠른 개발도상국의 고령화 속도를 경고한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22년 기준 0.7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유일하게 1명 이하이며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국가로 지목되고 있다.

인구고령화와 관련된 대부분의 연구들은 고령화가 고용 소비 생산 등 거시경제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 것이라 예측한다. 그 이유는 경제활동참가율이 낮아지고 잠재 노동공급량이 줄면서 결국 평균 생산과 소득이 줄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구구조 변화로 인한 장기적 침체(secular stagnation)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대두됐다.

저출산 고령화가 경제여건의 부정적 요인임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같은 연구결과는 환경변화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대응을 고려하지 않은 채 사회가 현재 상태를 유지한다는 가정하에 도출됐다는 이론적 한계를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구구조 변화를 경험하는 가계와 기업은 합리적으로 경제행동을 바꾸며 최선의 대응을 할 것이고 정부 역시 변화속도를 늦추려는 제도개선과 정책대응을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같이 고령화가 부정적 효과만을 초래해 영속적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극단적인 추론은 맬서스가 인간의 지적능력 발전이 인구증가 영향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사실을 간과해 잘못된 예측을 한 것처럼 현재 여건과 인간의 대응방식이 불변이라는 단순한 가정에서 출발한 결과물일 가능성이 높다.

맬서스가 예상하지 못했던 농업분야 기술진보와 높아진 생산성으로 인구증가에 필요한 농업노동자수는 오히려 줄고 생활수준은 더 빠르게 향상됐던 것처럼, 새로운 인구구조 환경에서 경제주체들의 최선의 대응방식과 적절한 제도, 정책도입 효과는 경제성장 측면에서 고령화의 부정적 영향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크게 작용할 수 있다.

고령화는 통계적으로 경제성장과 무관

글로벌 고령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한 1990대부터 최근까지의 데이터를 이용한 거의 모든 실증분석연구에 따르면 놀랍게도 고령화는 통계적으로 경제성장과 관련이 없다고 보고하고 있다. 즉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국가의 경제성장률이 낮다는 과학적 근거가 매우 약하다는 것이다. 인구 또는 인구구조 변화와 경제성장 사이의 이론적 상호작용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통계적 상관관계는 현실에서 찾을 수 없다는 다소 모순된 결과다.

이에 대한 한가지 설득력 있는 해석은 고령화가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효과가 있지만 이에 대응하는 자발적인 경제활동의 변화가 오히려 평균적인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메커니즘이 존재하고, 이 두가지 상반된 효과가 서로 상쇄한다는 것이다.

기대수명이 늘더라도 저출산의 영향이 보다 커서 인구가 감소하는 경우 일인당 자본과 생산량이 증가해 평균적인 생활수준이 올라간다는 지극히 단순하고 산술적인 논리 외에, 최근 경제학에서는 인구구조 변화를 기반으로 경제주체들의 행태변화와 이를 초래하는 제도 정책 사회규범 등을 내생화시켜 고령화와 경제성장 간의 상호작용을 바라보는 다양한 연구가 시도됐다. 이러한 연구의 공통적인 결론은 경제활동인구 감소로 인한 고령화의 경제성장에 대한 부정적 효과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긍정적인 영향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고령화가 경제성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논리 중 하나는 저축증가를 통한 자본축적 메커니즘이다. 경제성장의 이론적 선결요건은 인구증가에 비해 자본이 더 빠르게 성장해야 하며 이는 지속적 기술진보나 충분한 저축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고령화 사회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상당부분의 부를 노년층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도 60세 이상이 가진 순자산이 전체의 46%에 달한다고 한다.

전통적인 생애주기가설에 의하면 은퇴 후 세대는 저축보다는 소비활동을 주로 담당하는데, 최근 고령층 가구의 가처분소득에서 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인 평균소비성향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노령세대의 경제활동 역할이 다시 설정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고령세대가 저축을 늘리는 이유는 기대수명 증가로 인한 불확실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노령인구 증가와 결과적으로 총저축 증가는 자본수익률이 너무 낮지 않은 경우 자본축적의 궁극적 자원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지속적 경제성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고령화가 경제성장에 필수적인 기술혁신을 오히려 촉진한다는 견해다. 고령화로 인해 희귀해진 노동자원에 대응해 노동절약적 기술진보가 급속히 진행될 것이고 노동생산성이 증가함으로서 생활수준의 향상돼 인구구조 변화로 인한 장기적 침체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이같은 기술의 내생적 대응(endogenous response of technology) 견해는 실증적으로도 강한 지지를 받고 있다. 예를 들어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된 사회는 산업용 로봇과 같은 자동화기술(automation technology)을 적극 도입해 보다 빠른 경제성장을 이뤘다는 것이다.

지난 20여년간의 자료를 이용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고령화를 먼저 경험한 서구국가들이 자동화로 노동력부족을 극복하고 더 높은 기술수준을 이룩해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특히 한국은 고령화가 어느 국가들보다 빠르게 진행됐지만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해 선진국들보다 거의 두배의 빠른 속도의 자동화를 이루어 경제성장을 도모한 점을 주목한다.

인구구조 변화 트렌드 전제한 정책을

지금까지 고령화와 관련된 대부분의 논의는 고령화의 부정적 영향과 심각성만 부각시키며 출산율을 제고하거나 대체노동력 공급을 늘리는 식의 실질적인 효과가 작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 정책제언이 대부분이다. 이제는 경제발전 단계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인구구조의 변화가 돌이킬 수 없는 새로운 글로벌 트렌드라는 것을 겸허히 인식해야 한다.

거시경제적 관점에서 경제주체들이 자발적으로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일 수 있는 고용구조를 모색하고, 전 연령대의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기술혁신이 이루어질 수 있는 유인체계를 개발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등 새로운 환경에서 평균적인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패러다임의 탐색과 적용이 우선시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