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2024년 부동산 PF 지뢰밭 건너기

2024-01-02 11:34:54 게재

2024년 새해가 밝았지만 올해 한국경제 전망은 밝지 않다. 반도체산업의 미래가 불투명한데다 고금리 장기화로 부채문제가 수면위로 급부상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가총부채가 7700조원을 돌파했다. 1인당 1억5000만원이 넘는 규모다. 지난달 21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2분기 말 원화기준 국가총부채는 5956조9572억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가계부채는 2218조3581억원, 기업부채는 2703조3842억원, 정부부채는 1035조2149억원이다.

좁은 의미의 정부부채에 지방정부와 비영리 공공기관부채, 한전 등 비금융 공기업까지 포함하는 전체 공공부문부채는 2022년 말 기준 1588조7000억원이다. 여기에다 전·현직 공무원과 군인에게 지급해야 할 연금충당부채가 12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경제 3주체의 허리가 부러질 지경이다.

'본격적인 경기침체 시작됐다' 비관론 확산

지난해 초 정부가 낙관했던 '상저하고' 경제전망은 공염불이 됐고, '본격적인 경기침체가 시작됐다'는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다. 경기침체 비관론의 중심에는 금융권의 만기연장으로 버텨온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 올해부터 본격화할 것이라는 주장이 자리잡고 있다. 금융시장 위기의 뇌관을 꼽으라면 바로 이것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금융권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134조3000억원으로 2020년 말 92조5000억원과 비교해 45% 늘었다. 연체율도 2.42%로 2022년 말 1.19%와 비교해 2배로 올랐다. 업권별로 보면 증권사 PF 대출 연체율이 13.85%로 가장 높고, 저축은행권 5.56%, 캐피탈사 4.44%, 상호금융권 4.18%, 보험업권 1.11%, 은행권 0%대 수준이다. 총 55조8000억원 규모의 해외 부동산 대체 투자를 진행한 국내 금융회사들은 좌불안석이다.

부동산 PF 중에서도 특히 '브리지론'의 리스크가 가장 크다. 브리지론은 부동산 개발사업 과정에서 토지매입 등 초기 단계에 투입되는 자금 대출이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모든 금융권에서 약 30조원 규모의 브리지론이 만기연장으로 버티고 있다.

현재 브리지론 단계에 있던 토지가 경매나 공매로 나오면 30~40% 할인된 가격에 낙찰된다. 이마저도 어려우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절반 정도 가격에 매입한다. 지난 1년여 간 브리지론에서 착공 단계인 본PF로 진입한 사례가 거의 없다. 따라서 전체 브리지론에서 경·공매 할인가와 캠코 매입비율 30~50%를 고려하면 9조~15조원을 잠정 손실로 볼 수 있다. 이런 규모의 손실이 한번에 몰려 터지면 금융·경제 시스템은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일부 저축은행과 건설사에만 집중됐던 부실위험이 제2금융권을 거쳐 금융권 전체로 번질 수 있다.

최근 건설회사의 우발채무 증가는 부동산 PF 불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국기업평가(이하 한기평)에 따르면 2023년 8월 말 기준 건설사 부동산 PF 우발채무는 22조8000억원으로 2022년 6월 말 18조원 대비 29% 늘어났다. 이는 한기평이 유효등급을 부여한 21개 건설사의 우발채무를 집계한 결과다.

최근 워크아웃을 신청한 태영건설도 막대한 차입금과 PF우발채무가 문제가 됐다. '시공순위 16위' 태영건설의 부도는 인테리어 등 연관 산업과 581개 협력업체에 미칠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금년 4월 총선 이후 금융권에서 PF대출 만기연장을 거부하면 수많은 회사들이 무너질 것이라고 예상됐는데 그 시기가 당겨지고 있다. 대형 건설사들은 해외공사나 공공공사 등으로 사업구조가 다변화돼 있어 버틸 수 있겠지만 미분양 상가·주택사업에 집중된 중소·중견사의 경우 줄도산이 이어질 것이다.

4월 총선 전이라도 문제 사업장 옥석 가려야

이제 더 이상 버티기가 어렵게 됐다. 4월 총선 전에 문제 사업장의 옥석을 가려야 한다. 방만경영엔 가차없는 자구노력을 요구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과거 외환위기·카드사태·저축은행 사태 등을 극복했던 경험과 결단을 배워야 한다.

부동산 PF 위기는 낙후된 부동산 개발 방식에서 비롯됐다. 시행사가 토지매입자금의 10%만 자기자본으로 시작하고 나머지 90%는 대출로 조달한다. 선진국에선 시행사가 자기자본으로 사업을 시작하기 때문에 브리지론 단계가 없다. 자금력과 위기관리체계를 갖춘 시행사들이 PF 사업을 할 수 있는 규제가 필요하다. 주먹구구식 부동산투자로 돈 벌던 시대는 지났다. 금융권이 벤처·신기술에 눈을 돌려야 할 때가 됐다.

박진범 재정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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