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건설 '강도 높은 자구계획' 없으면 채권단 동의 못 구해

2024-01-02 10:42:30 게재

사재출연 주목, 상거래채권 일부 상환 안해 '논란' … 워크아웃 부결시 법정관리

부동산PF 사업장 대대적인 사업성 재평가 … 당국, 채안펀드 10조원 증액 검토

태영건설이 채무부담을 견디지 못해 워크아웃(채권단 공동관리)을 신청했지만 강도 높은 자구계획 없이는 수백여곳에 달하는 채권금융기관을 설득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태영건설이 지난해말 워크아웃을 신청했고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3일 채권단을 소집해 설명회를 개최한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태영건설 본사 모습. 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금융권에서는 워크아웃을 통한 건설사 구조조정이 예전보다 훨씬 복잡해지고 난이도가 높아졌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금융당국도 부동산PF 사업장 확대로 채권기관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서 이번 태영건설의 구조조정을 '가보지 않았던 길'로 여기는 분위기다.

2일 금융당국과 산업은행 등에 따르면 태영건설의 직접 차입금은 1조3007억원, 대출 보증규모는 9조1816억원으로 집계됐다. 부동산PF 사업장에 대출을 해준 단위 새마을금고와 신협 등 상호금융기관을 포함하면 태영건설의 채권금융기관은 400~600곳에 달한다.

금융당국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태영그룹 대주주 일가의 사재출연 등 강도 높은 자구노력에 따른 고통 분담이 워크아웃의 전제 조건이라는 방침을 세웠다. IMF 사태 이후 기업 구조조정에 있어서 금융당국의 일관된 방침이기도 하다.

하지만 태영건설은 지난달 29일 만기도래한 1485억원 규모의 상거래채권 중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외담대) 451억원을 상환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오히려 금융당국과 채권단으로부터 기업 회생을 위한 자구 노력의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또 태영그룹은 계열사 매각 자금을 태영건설의 유동성 지원에 사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자금 일부를 아직 대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티와이홀딩스는 태영인더스트리를 2400억원에 매각했다. 지분 40%를 보유한 티와이홀딩스는 960억원을, 지분 60%를 보유한 대주주 일가는 1440억원을 챙겼다. 티와이홀딩스는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자금을 태영건설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자금의 지원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태영건설에 대한 신뢰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이 받아들여지려면 신용공여액 기준 채권단 75%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워크아웃 신청이 부결될 경우 법원 회생절차(법정관리)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태영그룹 대주주 일가의 사재 출연 규모와 SBS 주식 매각 여부에 채권기관들의 관심이 쏠리 고 있다. 산업은행은 3일 태영건설의 경영 상황과 자구계획 등을 논의하기 위한 채권자설명회를 개최한다.

워크아웃 개시라는 1차 관문을 넘더라도 이후 진행될 실사 과정을 통한 기업개선계획 마련, 부동산PF 사업장 구조조정이라는 어려운 난제들이 남아있다.

태영건설이 참여한 PF사업장 60곳은 브릿지론 18개, 본PF 42개 등으로 구성돼 있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사업성과 공사진척도 등을 고려해 태영건설이 시공을 계속할지, 시공사를 교체할지, 공·경매로 넘길지 등 재구조화를 계획하고 있다. 브릿지론과 비주거 본PF 사업장 35곳은 최소 대주단이 사업성 판단을 다시 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사업장별로, 대주단 내에서도 채권금융기관들의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점이 어려움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부는 새해 첫날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참여하는 'F(Finance)4'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는 시장 안정을 위해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규모를 현재 20조원에서 30조원까지 늘리는 내용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사태로 부동산PF 시장의 자금조달이 더욱 어려워지고 불안감이 2금융권으로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신년사에서 "그간의 시장안정조치를 필요시 시장상황에 맞춰 탄력적으로 확대·보완하고, 금융산업별 건전성 관리를 강화하며 기업구조조정 역량 확충과 선제적 위기대응체계 정비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부실기업에 대해 자기책임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되 질서 있는 구조조정과 사업재편을 유도함으로써 '금융시장 안정'과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조화롭게 추진해 나가겠다"며 "금융시장 리스크의 전이·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컨틴전시 플랜을 개편하고 시스템리스크 예방에 전력을 다하는 동시에, 금융회사의 손실흡수능력을 제고해 위기대응능력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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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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