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철규 칼럼

2개의 한국경제와 김예지 의원의 물고기 '코이'

2024-01-03 11:48:22 게재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 경제학

또 한해를 그려보는 시기다. 현재와 미래를 겹쳐놓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대응과 비전을 찾고자 하는 때다. 기존의 경제전망은 대부분 대응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이에 근거해 어떤 이는 직업을 얻기 위한 준비를 할 수도 있고, 집을 사야 할지 아닐지도 구상한다. 투자자라면 투자전략을, 국가 정책을 담당하는 자라면 정책대응 계획을 세우고 실행방안을 준비하기 위해 전망이 필요하다.

전망의 또 다른 의미는 더 나은 개인 혹은 사회를 위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꿈이 된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시대과제나 사회적 비전을 발견하려는 것이고, 어떤 사회와 경제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첫번째 의미의 전망은 2023년 경제를 어떻게 평가하고, 현재의 모습을 어떻게 진단하는가에서 출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그 평가와 진단은 극과 극이다. 대통령은 2023년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역대 최고치의 고용률과 역대 최저치의 실업률"을 강조했다. 2024년에는 수출개선으로 인한 경기회복과 성장을 예상하기도 했다. 글로벌 경제위기에 한국이 잘 대처했다는 의미다. 추경호 경제부총리의 이임식에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이 전달한 재직기념패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하나된 기획재정부가 울려낸 연주로 전례없던 복합경제위기의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낙관과 비관 공존하는 한국경제 전망

그러나 약간만 눈을 돌려 보면 전혀 다른 진단을 볼 수 있다. 우선 경제부총리의 이임식과 같은 날 나온 한국무역협회의 보고서(2024년 글로벌 통상환경 전망)는 2개의 전쟁 등 "통상환경의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국내를 보면 서민경제의 파탄과 추락을 짐작할 수 있는 통계수치가 셀 수도 없다. 12월 28일 나온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는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가계대출의 취약차주(저소득, 저신용, 3개 이상 대출 보유자)의 연체율은 8.86%이며, 이를 비취약차주의 0.35%와 비교하고 있다. 한국경제의 주요 위기요인인 자영업자 대출잔액은 1052조원를 넘어 역대 최대규모이며 이미 연체율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생명보험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작년 9월 기준으로 전년동기대비 보험해약사례가 16.4% 증가했다. 보험 해약금환급이 갑자기 증가하는 경우는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시에 나타났다. 이른바 '카드돌려막기'의 지표인 신용카드 리볼빙잔액과 카드론 대환대출(카드빚을 갚기 위해 다시 받는 대출) 잔액은 작년 11월 말 기준으로 각각 7조5115억원과 1조5960억원에 이르는 등 역대 최대액수다. 작년 3분기 기준해서 개인파산으로 이어지는 회생신청 건수는 전년동기비로 40% 증가했다. 상호금융 저축은행 여신전문금융회사 등의 중소기업대출 연체율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낙관론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지는 지난달 셋째주 '2023년 최고의 경제성적을 낸 나라는 누구인가'라는 기사에서 2022년 4분기~2023년 3분기 기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 한국이 2위를 기록했다고 평가했다. 또 영국의 경제비지니스연구센터(CEBR)는 한국의 경제규모가 현재 GDP기준 13위에서 2028년 9위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치를 내놓기도 했다. 국제신용평기관 S&P는 한국의 신용등급을 일본보다 2단계, 중국보다 3단계 높게 매기고 있다. 영국보다도 높다.

한국경제의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으며, 통계지표상으로 보면 2개의 한국경제가 있다. 그래서 이 두 경제를 두루 살펴 통합적으로 정책이 운영되어야 한다. 나라 경제가 좋아지면 대다수 중소기업과 가계의 경제도 좋아지던 시대는 더 이상 없다. 정부의 역할이 과거와 달라져야 하는 이유다.

정부와 사회가 코이의 수족관 깨기를

더 나은 사회의 비전으로서 전망의 두번째 의미를 생각하자면 지난해 6월 14일 대정부질문에서 김예지 의원이 했던 마무리 발언을 떠올리게 된다. 이렇게 시작했다.

"코이라는 물고기가 있습니다. 환경에 따라 성장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코이의 법칙으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작은 어항 속에서는 10㎝를 넘지 않지만 수족관에서는 30㎝까지 그리고 강물에서는 1m가 넘게 자라나는 그런 고기입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기회와 가능성, 그리고 성장을 가로막는 어항과 수족관이 있습니다." 정부와 사회가 이 어항과 수족관을 깨고 강물을 열어달라는 주문이며 개인적 꿈이다.

예외적으로 여야 국회의원 전원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전 국민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정책대응을 위한 전망을 넘어 우리 사회의 비전이 될 만하다. 그것이 무엇이든 이와 같은 비전을 만들고 우리 사회가 공유할 때, 진정한 국민통합과 민생경제 회복의 길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