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추부터 잘못 낀 태영건설, 자구계획 요구 더 커져

2024-01-03 11:20:23 게재

워크아웃 진정성 의심받아 채권단 설득 더 어려워져

금융권 "절박한 심정으로 모든 걸 내려놔야 가능"

'SBS 지분 매각 없다' 선긋기도 채권단 동의에 불리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 신청을 놓고 채권단들이 모여 논의하는 첫 자리가 3일 마련됐지만 워크아웃 개시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금융당국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태영건설이 만기도래 상거래채권을 일부 갚지 않으면서 워크아웃 신청 과정에서 한 첫 약속을 어긴 것으로 보고 있다. 또 태영그룹 계열사인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자금을 태영건설 지원에 쓸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자금 일부를 TY홀딩스의 보증채무를 갚는 데 사용했다.

태영건설을 살리기 위해 채권단 공동관리인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도 태영그룹이 가용 가능한 최대한의 지원을 하지 않고 채권단에 손을 벌리겠다는 의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 금융당국과 채권단의 실망은 커졌다.

3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태영그룹 지주사인 TY홀딩스는 계열사인 태영인더스트리를 매각해 1133억원을 확보했다.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회장의 아들인 윤석민 회장은 지분매각으로 416억원, 윤재연 블루원 대표는 513억원을 받았다.

채권단은 윤재연 대표가 받은 금액을 제외한 1550억원 가량을 태영건설 지원에 쓰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일부 자금이 TY홀딩스 보증채무를 갚는데 사용됐고, 나머지 자금도 태영건설로 전부 넘어가지 않았다.

태영건설은 지난달 29일 만기가 도래한 1485억원 규모의 상거래채권 가운데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외담대) 451억원은 갚지 않았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전부 상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가 뒤통수를 받았다는 반응이다.

태영건설은 2일 공시를 통해 "TY홀딩스와 태영건설은 1133억원을 한도로, 기간을 1년으로 한 차입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또 "당사가 필요한 금액을 요청할 시, 양사 간 협의에 의해 차입하기로 계약되어 있다"며 "따라서 2023년 12월 29일 당사는 상거래 채권상환을 위해 TY홀딩스에 400억원을 요청해 차입했고, 향후 733억원에 대한 부분은 당사의 필요 상황에 따라 차입이 실행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외담대 일부를 상환하지 않은 것은 은행에 갚아야하는 금융채권이라서 기업구조조정 촉진법에 따라 워크아웃 통지된 시점부터 금융채권이 유예되기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같은 태영건설의 조치가 워크아웃 개시를 앞두고 발목을 잡고 있다. 워크아웃을 위해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기 보다는 결국 그룹의 이익을 위한 선택을 하고 있어서 금융당국과 채권단 입장에서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과 채권단 전반적인 분위기는 태영건설이 보다 강도 높은 자구계획과 실행력 있는 보완장치를 마련하지 않는 한 워크아웃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팽팽하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태영건설이 공시를 통해 1133억원을 일시에 대여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조금씩 대여하겠다고 밝힌 것도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과 금융권에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채권단을 설득해야 워크아웃 신청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는데, 너무 안일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현재 태영건설에 대한 손실이 불가피하더라도 워크아웃 이후 추가로 신규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채권단 입장에서는 우호적인 상황이 아니다.

TY홀딩스가 "SBS의 주식 매각이나 담보제공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SBS 경영과 미래가치에 영향을 주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 확고한 입장"이라며 SBS 지분매각에 선긋기를 한 것도 채권단의 동의를 얻는 데 불리하게 작용될 전망이다. 특정 자산의 매각을 예외로 해놓고 자구계획안을 내놓는다는 것 자체가 진정성이 의심되기 때문이다.

3일 산업은행이 개최하는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 관련 채권단 설명회에서는 태영측이 내놓을 자구계획안에 관심이 쏠리고 있으며,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면 채권단이 수용 여부를 놓고 검토를 진행할 예정이다. 기대에 못 미친다는 판단을 내리면 추가 자구안을 요구할 수도 있다.

한편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 회장은 1일 임직원들에게 보낸 신년사에서 "채권단은 물론 우리와 함께하는 현장의 협력업체와 그 가족, 수분양자와 입주예정자 등 모든 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워크아웃을 성공적으로 조기에 졸업하도록 창업자인 저부터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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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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