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유혈사건에 중동정세 예측불허

2024-01-04 10:48:19 게재

이란서 대형 폭발 최소 103명 사망 … '반이스라엘 중심' 이란 개입 가능성 커져

가자지구 전쟁이 중동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할 조짐이다. '반이스라엘' 중심에 있는 이란의 개입 가능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3일(현지시간) 이란 케르만에서 열린 혁명수비대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 4주기 추모식에서 폭발이 발생한 현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이날 폭발물이 담긴 가방 2개가 약 10분의 시간차를 두고 터지면서 최소 103명이 사망했다. 이란 케르만 로이터=연합뉴스


3일(현지시간) 이란 혁명수비대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4주기 추모식에서 의문의 폭발 사고가 발생해 최소 103명이 사망하고 188명이 다쳤다고 이란 국영 IRNA 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날 오후 2시45분께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남동쪽으로 820㎞가량 떨어진 케르만주의 주도 케르만시 순교자 묘역의 솔레이마니 사령관 무덤을 중심으로 추모식이 진행되는 도중 약 700m 거리의 도로에서 큰 소리와 함께 폭발이 발생했다. 이어 10분쯤 뒤 묘역에서 1㎞ 떨어진 지점에서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났다. 첫 번째 폭발 현장에 도착해 부상자 응급조치 등을 하던 구조대원 3명은 두 번째 폭발로 숨졌다. 익명의 소식통은 "폭발물이 담긴 가방 2개가 원격 조종으로 폭발했다"고 전했다.

공교롭게도 바로 전날엔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쪽 외곽에서 이스라엘이 배후로 지목된 무장 드론 공격으로 모두 6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 중에는 하마스 정치국 부국장이자 전체 서열 3위로 알려진 살레흐 알아우리, 하마스 군사조직인 알카삼 여단의 지도자 사미르 핀디 아부 아메르, 아잠 알아크라아 아부 암마르 등 고위 인사가 포함됐다.

하루 간격으로 벌어진 두 사건의 배후를 자처한 집단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고 배후를 추정할 수 있는 물증도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란은 이날 폭발 사고를 외부세력에 의한 '테러'로 규정하고 그 배후에 대해 이스라엘에 무게를 두고 있다. 가자지구 전쟁에 직접 개입할 명분과 가능성이 더욱 커진 셈이다.

아흐마드 바히디 이란 내무장관은 방송에 출연해 "이번 폭탄 공격은 무고한 민간인을 죽이려는 여러 음모의 연장선에 있다"며 "범인들에게 곧 강력한 대응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골람-호세인 모흐세니-에제이 사법부 수장은 "솔레이마니 장군에 원한을 품은, 세계의 '오만한 세력'의 지원을 받는 테러분자들이 우리나라를 불안케 하려는 다양한 음모를 좌절당하자 이란 국민에 대한 복수를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 언론과 지도부가 언급하는 '오만한 세력'이란 미국과 이스라엘을 뜻한다.

이란 정부는 4일을 애도일로 선포하고 전국적으로 추모의 시간을 갖기로 했고,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이날 사고 현장을 찾을 예정이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역시 성명을 통해 "사악하고 범죄적인 이란의 적들이 또 재앙을 일으켰다"며 "비정한 죄인들은 사람들이 위대한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묘소를 참배하려는 것을 막으려 했다"고 밝혔다. 하메네이는 "이런 재앙은 반드시 강경한 대응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며 "이것이 신의 뜻"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폭발에 대한 조사결과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배후로 지목된다면 이란은 즉각 '키사스 원칙'(눈에는 눈, 이에는 이)에 따라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가자지구 전쟁을 치르면서 하마스 지도부에 대한 암살을 공공연히 밝힌 바 있는 이스라엘은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드론 공격과 폭발사고에 대해서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이는 하마스와 헤즈볼라, 예멘 반군 후티, 시리아 정부군과 이란 등 이른바 '저항의 축'으로 불리는 반이스라엘 움직임을 강화하고 개입 강도를 높여 중동 전역으로 전쟁이 확산한다는 의미다.

미국 고위 당국자들이 서둘러 폭발사건과 무관함을 강조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은 이번 일과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없다"며 "그와 반대되는 어떤 추정도 말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이스라엘이 폭발과 연계됐다고 믿어야 할 어떤 이유도 없다"며 "이스라엘과 연관됐다고 볼 어떤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도 브리핑에서 "우리는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고 누가 책임이 있는지 등에 대해서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한다"면서 "이스라엘이 어떤 식으로 관련돼 있다는 증거는 없다"고 답했다.

익명의 미 당국자는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의 소행일 가능성을 거론했다. 미국이 이처럼 단호하게 부인하고 있는 반명 이스라엘은 침묵하고 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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