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채권단 좁혀지지 않는 입장 차 … 법정관리 가능성 커져

2024-01-05 10:59:11 게재

채권단 설득할 만한 자구안 도출 쉽지 않을 듯

이복현 "태영, 남의 뼈 깎는 자구계획" 비판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을 위한 자구안(자체 정상화 계획)을 놓고 태영그룹과 채권단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법정관리(회생절차)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4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태영건설에 대한 강도 높은 자구안 마련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금융당국은 워크아웃 무산에 따른 태영건설의 회생절차 신청에 대비한 시장 안정 조치 확대를 준비하고 있다.

4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신년 간담회에서 태영측에 추가 자구안을 이번 주말까지 내라며 강도 높은 압박을 가했지만 채권단을 설득할 만한 자구안 도출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날 태영그룹 지주사인 TY홀딩스는 "태영건설 워크아웃과 관련해 주채권은행(산업은행)에 약속한 태영인더스트리 매각대금의 태영건설 지원이 3일 모두 이행됐다"고 밝혔다.

태영인더스트리 매각대금 1549억원 중 400억원은 워크아웃 신청 직후 태영건설 협력업체 공사대금 지급에 사용됐고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에 따라 TY홀딩스에 청구된 연대채무 중 리테일 채권 상환에 890억원을 투입했으며 나머지 259억원은 태영건설 공사현장 운영자금 등으로 지원됐다는 것이다.

TY홀딩스는 "인더스트리 외의 나머지 자구계획에 대해서도 약속대로 이행해 태영건설 정상화에 사용할 것"이라며 "다만 리테일 채권 외 나머지 태영건설 연대보증채무가 TY홀딩스에 지급청구될 경우 태영건설 워크아웃 진행에 차질이 없도록 이를 상환하는데 일부 사용될 가능성은 있다"고 밝혔다.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의 태영인더스트리 지분 매각 대금 416억원을 전액 태영건설에 지원한 만큼 대주주 일가의 사재출연도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매각 자금이 TY홀딩스 연대채무를 갚는데 사용된 것과 관련해 태영건설 지원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연대보증 채무는 TY홀딩스가 부담해야 할 빚인데 지주사 채무를 갚아놓고 태영건설을 지원했다는 게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이날 TY홀딩스의 자구안 이행 관련 발표는 태영측과 채권단의 입장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태영건설을 살리기 위해서는 태영그룹과 대주주 일가가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데 TY홀딩스와 SBS를 지키는 것을 대전제로 두고 가능한 범위에서 하려다보니 채권단이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태영건설의 상황이 그만큼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이날 "채권단 입장에서는 태영건설 자구계획이 아니라 오너일가 자구계획"이라며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뼈를 깎는 자구노력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남의 뼈를 깎는 노력"이라고 비판했다.

이 원장은 태영건설이 지난달 29일 만기가 도래한 1485억원 규모의 상거래채권 가운데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외담대) 451억원을 갚지 않은 것과 관련해 "이 문제를 정리하지 않고는 기초적인 신뢰 축적이 어렵다"며 "외담대가 망가지면 앞으로 채권 형태의 자금 유통이 불가능해진다. 워크아웃의 대전제인 신뢰를 첫 시작 단추부터 무너뜨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태영그룹이 SBS 지분 매각 대신 TY홀딩스 지분을 활용해 태영건설을 지원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당국이 아닌 채권단의 의견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원장은 "태영이 방송법상 제약을 핑계로 SBS 지분 매각이나 추가 담보 제공이 어렵다는 것에 대해 수긍되는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다"며 "SBS 지분이 아니더라도 TY홀딩스는 상장법인인 데다 가치평가도 쉽고, 오너 지분이 있으니 이 지분을 활용한 유동성 제공, 채무 부담 등은 어떠냐는 채권단의 입장을 전달받았다"고 말했다.

태영건설에 대한 워크아웃 개시 여부는 오는 11일로 예정된 제1차 채권단 협의회에서 결정된다. 이 원장은 채권단이 납득할 수 있을 수준의 자구안을 이번 주말까지 요구했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자구안을 바탕으로 채권단을 설득할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11일이 지나더라도 이 이슈가 계속될 것이라고 누군가가 기대한다면 그건 아닐 거라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태영과 채권단의 입장 차이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을 오래 끌어봐야 의미가 없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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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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