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 위한 생물다양성

첫발 뗀 야생동물복지 강화, 지자체 집행력이 관건

2024-01-08 11:02:44 게재

허가권자 재량에 맡겨진 부분 상당수, 실제 삶이 나아졌는지 점검 중요 … 급증하는 온라인 학대 문제 등 대책 고민해야

"동물원 역할이 교육 등으로 더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물원이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바뀜에 따라 에버랜드도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지난해 12월 20일 정동희 에버랜드 동물원장(수의사)은 이렇게 말했다. 경기도 용인시 에버랜드 판다월드에서 만난 그는 "지난 2019년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미국 동물원 수족관 협회(AZA) 인증을 받는 등 국내에서는 동물복지 수준이 높은 곳으로 꼽히지만 생각보다 면적이 그렇게 넓지 않다"며 "허가제 기준에 맞추지 못하는 다른 시설의 동물들까지 품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교육 기능에 좀 더 중점을 두려고 한다"고 말했다.
에버랜드는 달라진 법에 따라 동물원 허가를 받기 위해 준비 중이다. 다른 동물원들에 비해 시설이나 운영 비법 등이 오랜 기간 축적됐지만 제한된 서식 면적 등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20일 에버랜드 판다월드에서 잠자는 푸바오. 사진 김아영 기자


지난해 12월 14일부터 동물원 및 수족관 설립 절차가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전환됐다. 앞으로 휴식처나 바닥재 등 야생동물 특성에 맞게 서식환경을 조성하는 등 강화된 허가요건을 갖춰야 한다. 또한 5년마다 시설 운영현황 및 동물복지 등의 실태조사 및 평가를 실시해 그 결과를 공개한다.

과거 동물원은 최소한의 전시 및 사육시설만 갖추면 쉽게 등록할 수 있다. 또한 각종 관리 규정은 선언적 수준에 불과해 전시 동물들이 학대를 받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4일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무분별하게 동물을 만지고 먹이를 주는 등 체험을 하는 행위 자체가 금지됐으면 좋았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며 "어떤 행위가 동물에게 해가 되고 아닌지 등이 허가권자 재량에 맡겨졌기 때문에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허가를 할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어렵게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전면 개정됐지만 이를 각 지자체별로 제대로 이행을 하지 않으면 법은 종잇조각에 불과하다"며 "동물들의 삶이 실질적으로 나아지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늑골이 드러날 정도로 마른 몸 때문에 '갈비사자'라는 안타까운 별명이 붙었던 수사자 바람이가 암사자 도도와 지난해 10월 23일 오후 3시부터 30분간 청주동물원 주 방사장에서 합사했다. 사진은 두 사자가 합사하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청주랜드동물원 제공


◆내년 시행 '백색목록' 준비 어떻게 = 동물원법 제8조에 따르면 동물원 또는 수족관을 운영하려면 △보유동물 종별 서식환경 기준 및 동물원 또는 수족관의 규모별 전문 인력 기준 △동물원의 휴·폐원 또는 수족관의 휴·폐관 시 보유동물 관리 계획 등의 요건을 갖춰 해당 시·도지사에게 허가를 받아야 한다. 단, 기존에 동물원으로 등록해 운영 중인 경우 2028년 12월 13일까지 유예기간 5년을 뒀다.

이러한 조치는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말라 '갈비사자'라는 별명이 붙었던 수사자 바람이와 같은 사례가 또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바람이는 청주랜드동물원으로 거처를 옮긴 뒤 살도 많이 붙는 등 눈에 띄게 건강이 회복됐다.

개정된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에 따라 동물원 또는 수족관으로 등록하지 않은 시설에서 야생동물의 전시도 금지된다. 기존에 운영하던 야생동물카페 등의 경우 유예기간 4년을 뒀다. 이 기간에도 야생동물을 만지거나 올라타는 행위는 할 수 없다. 또한 유예기간을 적용받기 위해서는 지난해 12월 13일까지 영업지가 소재한 시·도지사에게 야생동물 전시 현황을 신고해야 했다.

5일 환경부 관계자는 "전국에 240여개 야생동물카페가 있는 것으로 파악이 됐고 각 지자체별 신고 현황 자료를 집계 중"이라며 "이번에 폐업을 하는 곳들도 있어서 야생동물들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는지 등 꼼꼼하게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 대표는 "포유류만 금지하고 조류나 파충류는 모두 포함되지 않아 한계가 있다"며 "독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위험성이 아예 없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2025년 12월부터 시행되는 백색목록 제도 도입 준비도 시급한 상황이다. 국내 생태계에 무해하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종들의 도입을 허가하는 게 주요 골자다. 특정 야생동물 종의 목록을 작성해 이에 포함된 종을 제외한 다른 모든 야생동물 종의 수입 판매 개인소유를 금지한다. 최근 벨기에 네덜란드 등이 백색목록 제도를 도입했다. 아직 이 제도를 도입한 국가는 많지 않은 상황이다.

5일 환경부 관계자는 "어떤 방식으로 해당 종들을 나열할지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고라니 등 유해야생동물 관련 고민도 = 4일 김정호 청주랜드동물원 진료사육팀장(수의사)은 "동물원 허가를 받고 난 뒤 거점동물원 신청을 할 계획"이라며 "폐업하는 실내동물원들에서 나올 수 있는 동물들이 제대로 된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일정 부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우수한 관리역량을 갖춘 동물원을 거점동물원으로 지정한다. 거점동물원으로 지정되면 주변 동물원들의 교육이나 자문, 역량 강화 역할을 하게 된다. 영세동물원들이 야생동물 복지에 신경을 쓸 수 있도록 운영 비법을 전수하는 게 목표다.

김 팀장은 "유해야생동물 생태계교란종 등으로 지정된 생물들을 동물원에 데려올 생각"이라며 "사람들이 키우다가 아무 생각 없이 생명을 자연에 방사하면서 문제가 되는 점 등에 대해 전시·교육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달 중으로 고라니를 데려올 계획"이라며 "유관기관과 협의가 마무리 중"이라고 덧붙였다.

고라니는 일부 지역에 서식밀도가 너무 높아 농·림·수산업에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됐다. 사슴과인 고라니는 우리나라와 중국 동북부에 분포한다. 한반도에서는 흔히 볼 수 있지만 중국은 개체수가 1만마리 정도에 불과하다.

이처럼 야생동물 복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지만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으는 주제는 온라인 동물학대다. 소셜미디어에 동물학대 영상을 공유하거나 야생동물을 거래하면서 문제가 커지고 있다. 아시아 동물단체 연대체인 아시아동물연합이 유튜브 등에서 마카크원숭이가 등장하는 콘텐츠들을 분석한 결과, 온라인 학대 문제가 심각했다. 마카크는 전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분포하는 영장류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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