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은둔 지원 모색

"상처받은 고립은둔자 '원하는 것 지원'이 중요"

2024-01-09 11:06:21 게재

4월 청소년·청년 지원 시범사업 시작 … 주입·성과내기식 접근은 실패 요인

스스로 자신의 공간에만 머무는 고립·은둔 청년(청소년 포함)에 대한 지원이 시작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 결과 '고립청년'은 54만명, '은둔청년'은 24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청년재단은 고립청년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7조원으로 추정했다. 그간 몇몇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나름의 대책 마련이 있었고 전국적 차원에서 이들에 대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빗발쳤다.
정부는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범정부 대책을 내놓았다. 큰 진전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원스톱 상담창구를 마련해 고립·은둔 청년을 상시 발굴하고 전담 관리사를 통해 이들의 사회 적응과 취업 의욕을 돕는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예방에서 발굴, 사후관리에 이르는 전방위 지원체계를 구축한다. 특히 올해 4월 4개 광역시·도를 선정해 2년간 '청년미래센터'를 시범 운영한 후 전국으로 확대한다. 시작하는 시범사업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고립은둔청년 중심의 지원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들이 나온다. 국외 사례 등 전문가 의견을 담았다.

4월부터 고립은둔 청년을 지원하기 위한 시범사업이 시작된다. 전문가들은 주입식 프로그램 제공 방식으로는 고립은둔청년을 돕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청년이 원하는 것을 같이 만들어 나가는 사업방식이 필요하다. 사진 이미지투데이

 


정부가 올해부터 고립은둔 청소년·청년을 위한 다양한 지원방안을 추진할 예정인 가운데 사회와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은 고립은둔자들이 '원하는 것, 원하는 방식'으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학과 교수(별의친구들 대표)는 "고립·은둔자에게 '무엇이라도 해보자'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도움과 지원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며 "부모 가족, 사례관리자 등이 요청하기, 재촉하기, 무엇을 하자고 다가가지 말고 왜 고립 은둔 상황에 머물러 있는지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으로부터 지원이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4개 시도에 미래청년센터 설치 = 정부는 4월 고립은둔 청소년 청년 시범사업을 실시한다. 4개 시도지역에 (가칭)미래청년센터를 설치하고 학교 밖 청소년지원센터와 고립은둔 원스톱 패키지 지원을 시작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사례관리사가 고립 정도와 욕구를 파악한 후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할 계획이다. 청년 당사자에게 초기에 자기 이해, 심리상담 등 '자기회복 프로그램', 일상회복 회복단계로 신체·예술 활동과 독서 요리 등을 통해 대인관계를 형성하는 사회관계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같은 은둔청년들과 공동 거주하며 일상생활 관리방법을 배우는 '공동생활 프로그램' 등도 있다.

고립은둔 청년의 가족(부모, 형제자매 등)에게 청년 고립에 대한 이해와 소통 교육, 심리상담 및 자조모임 등을 지원한다. 2023년 조사에서는 본인과 가족이 '고립 은둔 상황에 대해 외부도움이 필요하다'고 인식한 비율은 59.1%, 아버지 형제자매와 관계가 좋지 않다고 답한 경우가 각각 20.2%, 15.0%로 나타났다.

나아가 사례관리사의 판단으로 일정수준의 탈고립된 청년을 대상으로 초기 파트타임 일자리 지원을 시작으로 이후 고용노동부 '청년성장 프로젝트' 등과 연계한 자립까지 지원한다.

김 교수는 정부의 이런 추진 계획에 대해 "청소년 청년들과 주입식 강요가 아닌 대화에 대화를 이어가면서 이들 마음속에 담긴 '억지로 시켜서 하기, 경쟁에서 이기기, 잘하지도 못하는 것을 잘하는 척하기, 놀림과 따돌림 당하기 등 폭력적 행태'로 생긴 상처를 걷어 내는 선행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이들이 가정 학교 직장 지역사회 등에서 경험한 부정적 경험에 대해 가족 의사 상담자 등이 먼저 이해하고 다독이지 않으면 언제든지 다시 자신의 공간으로 돌아 갈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히키코모리 지원, 당사자 내면 케어 부족 반성 =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먼저 사회적 고립자(히키코모리: 은둔형외톨이)에 대한 심각성을 경험하고 대책마련에 나섰다.

류황석 니혼대 예술학부 강사에 따르면 1990년대 후반부터 버블경제가 붕괴된 후 청년들이 교육-직업 간에 단절과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2008년 리먼 쇼크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청년층의 취업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그 중에 하나가 히키코모리다. 학교 가기를 거부하거나 집안에만 머무르는 현상이 문제시됐으며 주된 원인으로 따돌림(이지메) 등으로 인한 '학교공포증'이 지목됐다.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2016년 일본의 15∼39세 국민 가운데 1.57%인 약 54만1000명이 히키코모리 상태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2019년 40∼64세 국민가운데는 61만명으로 추정됐다. 히키코모리가 청년만의 문제가 아닌 것을 의미한다. 히키코로리 평균 연령은 36.8세, 평균 히키코모리 기간은 8.1년으로 조사됐다.

히키코모리에 대해 대책은 먼저 민간에서 시작됐다. 1990년대 프리스페이스 혹은 대안학교 운동이었다. 하지만 집에서 나오지 않는 청년들을 효과적으로 지원하지 못했다. 이에 제3자가 가정 방문상담 혹은 치료하는 지원이 생겼다.

공적지원은 2000년대 시작됐다. 2009년 전국 광역지방자치단체에 히키코모리 지원에 특화된 지역지원센터를 설치했다. 2020년 전국 67개 지자체에 75개 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센터는 상담지원, 지역관계기관과 연계한 포괄적 지원, 정보 발신, 지역의 지원기관을 대상으로 한 조언과 상담지원을 진행한다. 2013년에는 히키코모리의 장기화 고령화 그리고 본인과 가족들의 필요에 맞춘 구체적인 상담지원을 목표로 지원 종사자 육성과 연수 사업이 추진됐다. 또한 서포터를 양성, 파견하는 지원이 이뤄졌다.

하지만 특정 지원시설을 전제로 한 지원방식으로 지원이 필요하지만 물리적으로 올 수 없는 당사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이 부족했다.

취업지원 등 형식상 특정 목표가 설정됨에 따라 당사자에 대한 내적 돌봄이 부족하며 당사자가 바라는 지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됐다.

일본 당국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사회적 고립과 고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자 '고독 고립 대책 추진법'을 만들었다. 올해 4월부터 시행된다. '당사자성'과 중앙정부 주도하에 대책 마련이 강조됐다.

류 강사는 '청년의 사회적 고립에 관한 일본의 지원정책과 현황'보고서에서 "일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 차원의 고독 고립대책이 각 분야별로 흩어진 기존 정책의 반복에 그치거나 당사자 필요성과 내면적 케어보다 외면적 지표나 물질적 인프라 구축에 몰두하는 등 한계를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핀란드 아웃리치 청년사업, 청년 자율 강조 = 핀란드는 고립·은둔 청년을 '사회적으로 배제된 청년'이라는 개념으로 정책 대응한다. 지방정부와 민간조직인 청년워크숍을 중심으로 아웃리치 청년사업을 적극적으로 실시해 사회배제 청년을 찾아 통합적인 서비스와 훈련을 제공하고 있다.

신영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빈곤불평등연구실 부연구위원에 따르면 핀란드는 사회 배제 청년을 예방하기 위해 청년법에서는 모든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청년사업가(youth worker)를 고용해 아웃리치 청년사업(outreach youth work)을 시행해야한다고 규정한다.

아웃리치 청년사업은 '교육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직업도 없는 상태에서 어떠한 사회서비스나 복지급여도 제공받지 않는 29세 미만 청년'을 대상으로 그들이 사회 속에 미래를 준비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핀란드 정부는 교육문화부를 중심으로 아웃리치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교육기관과 민간단체는 자율적으로 아웃리치청년사업에 필요한 인력 양성과 역량 증진을 위해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아웃리치 청년사업은 대상 청년들을 찾아 그들에게 다가가는 활동에서부터 시작된다. 받드시 대상 청년이 자율적으로 참여를 결정해야 한다. 고립 은둔 청년의 가족 친구 지인이 아웃리치 사업가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해당 청년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전반적인 아웃리치 청년사업의 방향과 계획을 세운다.

사업이 시작되면 참여 청년의 웰빙개선과 장래 희망을 이루기 위한 활동들이 추진된다. 웰빙개선을 위해 청년사업가는 청년의 심리상태, 식생활, 인간관계 등을 확인해 개선할 부분을 제시하고 이를 위해 함께 노력한다. 청년이 흥미를 느끼거나 관심이 가는 분야에 관해 이야기하며 장래 희망을 구체화하고 이루는 방법을 함께 탐색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각종 정보 수집, 서류 준비, 행정 처리 등을 청년이 주체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아웃리치 청년사업의 계획은 청년 개인의 상황과 욕구에 맞춰 다르게 세워진다. 그 내용에 따라 청년사업가와 청년의 만남은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몇 년에 걸쳐 이뤄질 수 있다. 청년이 설정한 목표를 이룸으로써 아웃리치 청년사업이 끝나더라도 이후 그 청년에게 새로운 문제가 생기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다시 청년사업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다.

청년워크숍은 주로 10∼30대가 이용하는데 아웃리치 청년사업을 통해 사회로 나온 청년들에게 개인 상황과 욕구에 맞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500여명의 청년사업가 등 2500명 직원이 근무한다. 아웃리치 청년사업 사례 수는 2012년 이후 증가해 1만3868명에서 2020년 2만명이상 기록했다.

신 부연구위원은 '핀란드의 사회 배제 청년을 위한 지원' 보고서에서 "청년워크숍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아웃리치 청년사업은 지자체에 예산과 서비스 기획 권한을 부여하고 지자체 역량을 강화한 점이 성공의 배경이 됐다"고 밝혔다. 이어 신 부연구위원은 "청년법에 따라 공공기관과 민간조직이 사회 배체 위험이 큰 청년의 정보를 공유해 이를 사업에 활용한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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