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건설 추가 자구안 마련 … 당국, 이번엔 채권단 역할 강조

2024-01-09 10:55:07 게재

"워크아웃 계열사와 그룹 전체 유동성 종합 고려해야"

이복현 "구조조정 미루기만 하는 금융사 좌시 않을 것"

태영그룹이 윤석민 회장 등 오너일가의 TY홀딩스(지주사) 지분을 활용해 마련하는 유동성을 태영건설에 지원하는 내용의 추가 자구안을 채권단에 제시했다. 그동안 버티기로 일관해온 'TY홀딩스와 SBS 지키기'가 더 이상 어렵다고 판단, 태영건설을 살리기 위해 모든 지원을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부실 기업구조조정 관련해 발언하는 이복현 금감원장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9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신년 금융현안 간담회에서 부실 기업구조조정과 기업 워크아웃 관련한 채권단의 역할을 강조했다. 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9일 태영그룹은 오너일가의 TY홀딩스(지주사) 지분을 담보로 자금을 마련해 태영건설에 지원하기로 했다. TY홀딩스의 오너일가 지분은 윤석민 회장(25.2%)과 배우자 이상희씨(2.3%), 장학재단(5.4%), 윤세영 창업회장(0.5%) 등 33.7%다. 이와 별개로 TY홀딩스의 자사주 비율은 29.2%다. 8일 시가총액 기준으로 오너일가의 지분 가치는 806억원, 자사주는 698억원이다. 경영권 프리미엄과 자회사인 SBS(시가총액 5769억원)에 대한 TY홀딩스의 지분율 36.32%를 고려하면 담보 제공시 시장가보다 높은 평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은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개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워크아웃 진행 과정에서 필요한 신규 자금 측면에서 태영측이 제시한 4가지 자구안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TY홀딩스와 SBS의 지분 매각이나 담보 제공, 대주주 일가의 사재출연 등을 추가 자구안에 요구했다. SBS 지분 매각이 방송법상 어렵다면 담보로 제공해서 TY홀딩스로 들어온 유동성을 태영건설에 지원해줄 수 있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이 같은 취지의 채권단 요구를 태영그룹에 전달했다.

태영그룹이 내놓은 추가 자구안에 대해 금융당국은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경영권 등의 문제로 지분을 얼마만큼 담보로 제공할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태영건설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내놓을 수 있다는 의지를 보임에 따라 진정성 있는 자세로 받아들여 진다"고 말했다.

태영그룹의 자구노력을 강하게 압박했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오전 금융지주사 회장들을 만나 이번에는 채권단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 원장은 "워크아웃은 채무자와 채권단이 중심이 돼 상호 신뢰와 양보를 바탕으로 합의해 나가는 것이 원칙"이라며 "채권단은 워크아웃 신청 기업에 대한 금융채권을 유예해 유동성 여유를 주고, 채무자는 상거래채무와 같은 비금융채무 상환에 필요한 운영자금을 부담하는 것이 기본 구조인 만큼, 자력이 있는 대주주가 워크아웃 중 필요한 자금을 최대한 지원한다는 상호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고 밝혔다.

채무자와 대주주에 대해서는 '강도 높은 자구계획 제시'를 언급했고, 동시에 채권단에 대해서는 "채무자 측의 회사를 살리려는 의지가 확인될 경우 기업개선을 위해 불가피하다면, 채무자의 직접 채무 뿐만 아니라, 직간접 채무 또는 이해관계자에 대한 지원 등도 폭넓게 고려하는 것이 워크아웃의 본래 취지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그룹 내 일부 계열사의 워크아웃 과정에서 모회사를 포함한 그룹 전체의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피할 수 있도록 워크아웃 신청기업 뿐만 아니라 모기업 등 연관회사의 유동성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와 관련한 태영그룹 전반의 유동성 상황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워크아웃의 기본 취지에 따라 채권단의 의사결정에 대해 감독당국이 비조치의견서 발급 등을 통해 해당 담당자에 대해 사후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점도 밝혔다.

이와함께 이 원장은 취약기업에 대한 금융회사들의 선제적 구조조정을 강조했다. 그는 "채권금융회사가 보다 엄중한 상황 인식을 바탕으로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구조조정 노력을 당부드린다"며 "만에 하나라도 향후 1~2년 내에 다시 저금리 환경에 기반한 부동산 호황이 올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를 근거로 예상되는 손실 인식을 지연하고 구조조정을 미루기만 하는 금융회사가 있다면, 감독당국에서 이를 좌시하지 않고 엄중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부동산PF 사업장에 대한 신속하고 엄정한 사업성 평가도 요청했다. 이 원장은 "부동산 PF 문제는 작년부터 채권 금융회사들의 적극적인 협조에 힘입어 대주단 협약을 가동하는 등 연착륙 유도가 이뤄지고 있어 시스템리스크 발생 등의 문제가 없다는 견해가 많지만, 그 정리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며 "PF대주단은 보다 면밀한 사업장 평가 등을 통해 신속하게 사업장 구조조정 및 재구조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속도를 내 주시길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이 원장이 마련한 '신년 금융 현안 간담회'는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렸으며 7개 금융지주(KB, 신한, 하나, 우리, 농협, 한투, 메리츠) 회장, 산업은행 회장, 기업은행장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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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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